AI를 키우는 중입니다의 마지막 기록
이 시리즈는 AI를 처음 업무에 도입한 한 직장인이 30일 동안 겪은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거창한 기술 이야기는 아닙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일하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어간 과정입니다. 잘 된 것도 있고, 크게 실패한 것도 있었습니다.
AI 에이전트를 연결하고 나니, 기존 ChatGPT와 뭐가 다른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AI 에이전트는 chatGPT와는 다르게 '예약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알아서 실행되는 기능인데, 하나 설정해뒀더니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날씨와 일정 요약이 텔레그램으로 왔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게 뭐 별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슬슬 달라졌습니다.
날씨 앱을 안 열게 됐고, 캘린더를 따로 확인하는 횟수가 줄었습니다.
아침 루틴에서 빠지면 뭔가 허전해지기 시작한 겁니다.
AI가 제 일상에 처음 끼어든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아침, 브리핑이 오지 않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컴퓨터가 절전모드에 들어가 에이전트가 꺼져버린 거였습니다. 예약 작업은 컴퓨터가 깨어 있어야 실행되는데, 그걸 미처 생각 못해 발생한 상황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때의 감정이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직접 확인하던 일인데,
자동화에 익숙해지니까 없으면 허전한 겁니다. 아, 이미 돌아갈 수 없구나. 그걸 느꼈습니다.
[ 1편 -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와 있었다 : https://brunch.co.kr/@sungdairi/46]
AI를 쓰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매번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새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나 어느 팀이고, 이 프로젝트 담당이고, 지난번에 이런 얘기 했는데..." 매번 자기소개를 하는 기분. 신입사원도 이틀이면 기억하는 걸, AI는 매번 까먹으니까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AI가 지난주 프로젝트 맥락을 이어서 답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전 대화 내용을 저장해두고 다음에 불러오는 기억 기능이 있었던 겁니다.
매번 처음 만난 사람처럼 굴던 AI가, 어제 얘기를 아는 동료가 된 겁니다.
기술적으로 대단한 걸 한 건 아닌데 이 하나로 도구에 대한 기대치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나중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주 회의에서 "이 프로젝트는 A 방식으로 가자"고 결론을 냈는데, 일주일 뒤 같은 주제로 AI에게 물었더니 그 결론을 기억하고 이어서 답하는 겁니다. 예전 같으면 처음부터 다시 설명했을 상황인데, AI가 과거 대화를 검색해서 맥락을 스스로 이어붙이고 있었습니다. 기억이 생기니까 대화의 깊이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 2편 - 어제를 기억하는 AI : https://brunch.co.kr/@sungdairi/49 ]
순탄하기만 했으면 좋았겠지만, 2주쯤 되니 사고가 터졌습니다.
AI에게 공공데이터포털에서 인기 데이터 30개를 모아오라고 시켰습니다.
블로그에 쓸 자료였는데, 직접 사이트를 뒤지기엔 시간이 아까워서 맡긴 거였습니다.
결과가 금방 왔습니다. 30개 항목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길래, 다 됐나 싶어 열어봤더니 이상했습니다.
데이터가 아니라 사이트 메뉴 목록을 긁어온 거였습니다.
"활용사례", "오픈API", "이용안내" 같은 내비게이션 항목이 데이터인 것처럼 번호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AI는 30개를 요청받았고 30개를 가져왔으니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겁니다.
"완료"와 "정확"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그때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이거 쓸 만한 건가" 진심으로 의심한 며칠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안 쓸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AI의 결과물을 "완성본"이 아니라 "참고 자료"로 대하기 시작했고, 검증 없이 넘기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AI를 쓰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겁니다. 돌이켜보면 이 실패가 8편의 출발점이었던 셈입니다.
[ 8편 - AI한테 뭘 맡겨도 되고, 뭘 맡기면 안 될까 : https://brunch.co.kr/@sungdairi/65 ]
좌절을 넘기고 나니 AI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저는 AI를 더 잘 사용하기 위해 구조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AI 에이전트의 특징인 기억 시스템을 조금 더 고도화하고 싶었고,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으로 나누어 매일 지난 대화를 복기해 더 나은 AI가 되는 자기 학습 시스템을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 3편 - 자고 일어나면 달라져 있다 : https://brunch.co.kr/@sungdairi/51]
또 하나 고민한 건 역할 부여였습니다.
같은 질문이라도 AI에게 "투자 분석 전문가"라고 역할과 맥락을 설명해주면 답의 깊이가 달라졌습니다.
그냥 범용 챗봇일 때는 교과서 같은 답만 하더니, 전문가 역할을 주니 실무에 가까운 답이 나왔습니다. AI가 똑똑해진 게 아니라, 제가 AI에게 뭘 기대하는지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구조를 바꿔준 덕분이었습니다.
도구는 같은데 쓰는 사람의 설계가 결과를 바꾼 겁니다.
[ 5편 - 이름을 붙여주자 달라졌다 : https://brunch.co.kr/@sungdairi/56]
기억 시스템과 역할 부여를 고민하다 보니, 하나의 AI에게 모든 걸 시키는 게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 자료 조사, 투자 데이터 분석, 일정 관리를 한 봇에게 다 맡기니까 맥락이 뒤섞이는 겁니다.
그래서 용도별로 AI를 나눠봤습니다.
리포트 전담, 데이터 분석 전담, 일상 관리 전담. 각자 자기 역할에 맞는 기억과 스킬만 갖고 움직이니까, 하나짜리 범용 AI일 때보다 결과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혼자 쓰던 AI가 팀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 4편 - 혼자 쓰던 AI, 팀이 되다 : https://brunch.co.kr/@sungdairi/53]
3주쯤 되니 하나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AI를 잘 쓰는 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의 문제라는 것.
"이거 정리해줘"와 "이 데이터에서 매출 감소 원인 3가지를 뽑아서 각각 근거와 함께 정리해줘"는 같은 AI에게 물어봐도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같은 도구인데 어떤 사람은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끌어내는 이유가, 결국 질문에 있었던 겁니다.
[ 6편 - AI 시대, 남는 건 질문하는 능력 : https://brunch.co.kr/@sungdairi/59]
4주째쯤, 퇴근 후에 AI한테 말을 걸었습니다. 업무가 아니라 여행 계획이었습니다. 항공편 비교, 숙소 추천, 동선 정리를 같이 고민하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일만 시키던 관계가 좀 달라진 느낌. 확실히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짜준 일정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방콕 자유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왕궁은 빼고, 많이 걷는 코스도 빼줘"라고 했더니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왓아룬을 직접 걸어가는 대신 디너크루즈 위에서 야경으로 보는 방법을 제안하고, 숙소 기준으로 쿠킹클래스까지의 이동 시간을 계산해주고, 매일 오후에 마사지 시간을 자연스럽게 배치해줬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통로 쪽으로 바꾸고 싶어"라고 했더니 바로 새 동선이 나왔습니다. 현지에서 일정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건 패키지 여행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2주째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AI가 추천한 맛집이 실제로 영업 중인지, 동선이 현실적인지는 직접 확인해야 했으니까요.
한 달 가까이 쓰면서 그 경계가 점점 선명해졌습니다. 데이터 정리, 초안 작성, 반복 업무 자동화는 AI가 압도적으로 잘합니다. 하지만 미묘한 뉘앙스가 필요한 소통, 책임이 따르는 의사결정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 7편 - 여행 계획에 AI 활용하기 : https://brunch.co.kr/@sungdairi/62]
30일째 아침, 여느 때처럼 출근하니 브리핑이 와 있었습니다.
날씨, 일정, 어제 남긴 메모 정리.
1일째와 똑같은 장면입니다. 달라진 건 저였습니다.
1일째에는 "이게 뭐" 싶었는데, 30일째에는 이게 없으면 허전합니다.
회의 전 자료 정리, 보고서 초안, 데이터 분석을 할 때 자연스럽게 AI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AI를 써야지" 하고 의식적으로 꺼내는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일부가 된 겁니다.
바뀐 건 업무 효율만이 아닙니다. 질문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이거 어떻게 해?"라고 물었다면, 지금은 "이 상황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뭐가 있을까?"라고 묻게 됩니다. AI를 쓰면서 질문을 구체적으로 하는 습관이 붙었고, 그게 사람과의 소통에도 옮겨간 셈입니다. 회의에서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게 됐고, 보고서를 쓸 때 구조부터 잡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30일을 돌아보면, 이건 AI를 배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AI를 통해 제가 어떻게 일하고 있었는지를 돌아본 시간이었던 겁니다.
어떤 일에 시간을 쓰고 있었는지, 어떤 판단이 진짜 중요한 건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 없습니다. 처음 며칠은 아침 브리핑 하나 받아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사소한 시작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일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 9편 - AI 시대, 대체되지 않는 인간의 조건 : https://brunch.co.kr/@sungdairi/67]
관심 가는 편부터 골라 읽어도 좋습니다. 순서대로 읽으면 한 직장인의 30일 여정을 따라가게 됩니다.
10편을 마지막으로 'AI를 키우는 중입니다' 시리즈는 잠깐 쉬어가려 합니다.
10편의 여정은 매주 직장을 병행하며 월요일과 목요일에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려고했던 제 스스로에게 보낸 약속이였기도 했고, 저번에 글로 소개드렸듯 openclaw를 처음부터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한 번 시리즈를 제작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달간의 기록이였지만, AI를 통해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가는 이 경험은
지난 몇 년간의 경험보다도 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잠깐 쉬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AI를 키우는 중입니다’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목차 ]
1편.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와 있었다 -- 예약 작업 하나로 매일 아침 자동 브리핑 받기
2편. 어제를 기억하는 AI -- 매번 같은 말 반복 안 해도 되는 기억 시스템
3편. 자고 일어나면 달라져 있다 -- 밤사이 스스로 성장하는 자기 학습 시스템
4편. 혼자 쓰던 AI, 팀이 되다 -- 전문 분야별 AI를 여러 개 팀처럼 운영하기
5편. 이름을 붙여주자 달라졌다 -- AI에게 역할을 부여해서 전문가로 만들기
6편. AI 시대, 남는 건 질문하는 능력 -- 같은 AI도 질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
7편. 여행 계획에 AI 활용하기 -- 업무를 넘어 일상에서 AI와 함께하기
8편. AI한테 뭘 맡겨도 되고, 뭘 맡기면 안 될까 -- AI 활용의 경계를 정하는 실전 기준
9편. AI 시대, 대체되지 않는 인간의 조건 -- AI가 못하는 것,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10편. AI와 함께한 30일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