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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다 May 29. 2019

아홉. 견딜 만큼의 아픔이라 괜찮아?!

'가슴이 콕콕' 아려오던 수많은 아픔들과의 조우

작가는 어쩜 이런 감성을 잡아낼 수 있었을까?

친구와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에서 한 참을 기다리다 도무지 오지 않는 친구 리리에게 전화를 건 주인공은 자신이 장소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핀잔을 듣는다. 아마 리리도 기다리다 많이 화나 났을 테지.

주인공은 자신도 억울한 면이 있는데 그 말은 미처 하지 못했고 집에 와 혼자 도시락을 울며 먹는다. 

나는 이 장면의 그림을 보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된 걸 테지. 


소소한 아픔과 절망이 모이면?

살면서 참 많은 일들이 우리를 기쁘게 혹은 슬프게 만든다. 생각해 보면 아주 작은 일들인데도 나는 그것들에 의해 기분이 널뛰기를 하며 내 시간들을 장악한다. 어릴 때일수록 더 그랬던 것 같다. 청소년기는 정말 말할 것도 없다. 친구의 미세한 표정 변화에도 조마조마하며 보냈던 학창 시절은 지금 생각하면 웃프다고 할까? 

나이를 먹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아마 나의 타고난 성격이 그럴 테고 정신수양(?)을 게을리해서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 고요하게 살고 싶다.

사소한 감정 변화를 겪지 않고 나만의 뚝심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소소한 것들에게 기쁨과 감사를 느끼는 대신 소소한 것들로 아프고 절망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큰 아이의 비수 같은 말 한마디, 무심히 양말을 벗어던지는 남편의 행동, 나름 용기 내어 베푼 작은 친절을 무시하는 주변 사람들, 내 잘못인지 알지만 그걸 굳이 핀잔주는 누군가....

그저 가슴을 콕콕 찌를 뿐인 일들이 하루에도 수 차례 일어난다. 때로는 이 '콕콕'이 눈물바다가 되기도 하고 미움이 되기도 하고 원망이 되기도 한다. 주로 잊히지만.

이 그림책에서처럼 다시 친구 리리와 화해를 하고 좋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럼 이런 소소한 아픔과 절망들은 내 안에서 다 무엇이 되었을까? 미움, 원망, 자책 뭐 이런 부정적인 것들로 응집되어서 계속 가슴을 콕콕 찌르고 있을까? 아니, 꾸꾹 누르고 있을까? 


오래 토닥토닥해주기

기억하지도 못할 수많은 '콕콕'들을 겪었고 앞으로도 쭈욱 겪을 게 분명하다. 타인이나 외부에 의한 '콕콕'도 있을 것이고 내 안에서 생기는 '콕콕'도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아프게 할 것이다. 

그럼 이제 어쩔까? 이 '콕콕'을 말이다.

나는 요즘 기쁨이나 즐거운 감정보다 아프고 슬프고 창피한 감정 즉, 남들이 말하는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하려고 노력 중이다. 

며칠 전 내가 길거리에서 가방을 뒤지다 쓰레기를 흘린 것을 모르고 그냥 자리를 뜨려다가 그걸 본 한 아저씨가 핀잔을 주며 지나간 일이 있었다. 어찌나 민망하고 창피하던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따지고도 싶었지만 이미 아저씨는 저만큼 가버렸고 나는 쓰레기를 주워 들고 여러 가지 감정들과 싸우며 안절부절못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내 실수고 쓰레기는 주웠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일을 오래 생각하려고 애썼다. 진짜 내가 쓰레기가 떨어지는 걸 몰랐을까? 이미 나는 '쓰레기'라고 생각했으니 내 가방에 없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이걸 왜 가방에 넣고 다녔을까? 버릴 기회가 없었을까?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저 아저씨를 왜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까? 창피함의 대상은 누굴까? 나는 도덕적인 사람일까? 

한 가지 사건에서 오는 수많은 질문들을 잡아보았다. 사실 이 많은 질문들이 모두 떠오른 건 아니다. 그래도 난 아무렇지 않고 싶지는 않았다. 

자꾸 생각하다 보면 무엇으로든 어디로든 결론을 짓게 마련이다. 잘잘못을 떠나 그때의 감정은 자연스럽다고 여겨지게 된다. 

가슴이 '콕콕' 찌르는 통증을 느끼는 건 살아있다는 거다. 나의 양심이, 감정이, 이성이, 생명이 숨 쉰다는 거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놀랍고 아름다운 일 아닐까? 콕콕 찔려 상처 난 나의 가슴을 오래오래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괜찮을 거라고, 괜찮아진다고, 더 좋은 내가 될 거라고.

-- by gguda


하세가와 슈헤이 글그림 <가슴이 콕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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