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그놈이다
오빠, 나 플래너 없이 결혼할거야
사실 오빠는 내가 플래너를 쓰던 안 쓰던 1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준비할 때, 남자의 선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건 모든 예랑과 예신이 알 테니까. 드레스샵을 가도 예복을 맞추러 가도 한복을 대여하러 가도 사장님들이 신랑은 쳐다보지도 않고, 신부의 표정에만 집중기에 내가 플래너를 쓰던 안쓰던 모두 내 선택에 달린 일이었다.
돌아보면 내 친구들 중에 90% 이상은 플래너와 함께 결혼식을 준비했다. 결혼식장부터 예물, 스드메, 청첩장, 부케까지.. 결혼은 수많은 선택지 중 나에게 맞는 정답을 고르는 일이기에, 요즘같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플래너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매일 야근하는 나는 무슨 악과 깡으로 플래너 없는 결혼을 선택한 걸까.
1. 우선 자금이 없었다.
2.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결혼식을 원했다.
3. 그놈이 그놈이다(?)
결혼 준비 요이땅! 을 하고 나서 바로 깨달은 게 있다. 알아볼수록, 욕심날수록, 예뻐지고 싶어질수록 결혼 비용은 두배, 세배 많게는 열 배까지도 달라질 수 있겠구나. 마냥 좋아 보이는 것만 선택하다가는 거덜 나겠구나. 다행히(?) 그렇게 할 만한 자금이 없었던 오빠와 나는 수박 겉 핥기 하듯이 조금만 알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저렴한 선택지들로 하나하나 클리어해나갔다. 그렇다고 티 나는 가성비 결혼을 한 건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남들 하는 거에 반값이면서도 [있어빌리티]는 놓치지 않은 결혼식이었다고는 자부할 수 있다.
스몰웨딩이니 야외 웨딩이니 이런 건 모두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로망이다. 그러나 수많은 결혼식을 가보고 느낀 진리가 있다. [결혼식은 평범하게 하는 게 가장 좋다]라는 것. 조금만 욕심냈다가는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수많은 하객들이 불편할 수 있기에, 나는 우리보다 부모님과 하객들에게 조금 더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물론 나도 어릴 때는 내가 예쁜 게 가장 중요했다.) 코로나가 심해지던 2022년 2월 식이었기에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 부부를 축하하러 오신 분들이 "이 결혼식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꼭 들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내 발품이 중요했다. 플래너가 추천해주는 예쁘고 좋은 거 보다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나갔다.
본식 드레스를 고르기 전에 [드투]라고 불리는 드레스투어는 선택이지만 필수다. 왜? 누구나 드투를 하니까. 그렇지만 난 인터넷 검색만 하고 드투 없이 샵을 지정했다. 그곳에서 4벌의 드레스를 입었는데 세상에 공주가 따로 없었다. 이름만 말하면 알만한 유명한 드레스샵의 1/5 가격으로도 공주가 될 수 있었다. 음, 내가 명품 드레스를 입는다고 더 예뻐질까? 아니, 내 생각은 달랐다. 드레스는 다 예쁘기 때문에 가성비든 명품이든 드레스는 죄가 없다. 그걸 입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결국 그놈이 그놈이다. 당연히 드레스뿐 아니라 오빠의 예복, 2부에서 입을 한복, 부케까지 "내가 예쁘고 자신감 있음 됐다"라는 생각으로 그놈들을 선택해 나갔다.
나의 플래너 없는 결혼(식)은 대만족이었다. 며칠 전에 가장 유명한 웨딩카페에 [가성비로 결혼했어요]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가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앞으로 결혼식에 엣지 한 방울을 추가하는 나만의 팁들을 대방출해보려고 한다. 모두의 아름다움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