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내 룸메이트

by 랑새

애석하게도 내 우울증은 나보다 타인에게 먼저 이해받았다.




대학 4학년쯤 되었을까? 나를 사랑으로 키우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 우울감을 더욱 거세졌다.내 우울감이 거세질수록 나는 티를 내려하지 않고, 에둘러 외면하며 넘어가기에 바빴다. 하지만 어떠한 일로 누군가에게 긍정을 강요받을 때면 내 안에서 분노가 생겼다.


터진 분노에 하루는 속수무책으로 휘둘러졌다. 긍정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바라본 SNS에서 다뤄지는 긍정은 무언가 눈을 뜬 시각부터 눈을 감는 시간까지 밝음, 덤덤함, 넘어감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족쇄 같았다. 게다가 난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애초에 사람이 한 가지의 무늬만 띌 수 있었던 건가?





탱탱볼처럼 통통 튀는 내 성격도 나였고, 차분히 늘어지는 성격도 나였다. 그런데 부정적인 것들은 전부 감정적으로 치부되어 버린다는 게 난 너무 억울했다. 이런 이유로 자칫 누군가와 설전을 버릴 때면 정신병자가 된 기분이었다. 분노했다. 변호하고 싶었다. 긍정 그까짓 거 나도 있다고, 그냥 지금은 슬픈 것뿐이라고, 감정적으로 뱉고 있지 않다고 내 두 가지 모습을 그리 받아들이기 힘드냐고 분노할수록 나는 슬퍼졌다.



알고 있었다. 그때 당시 나에게 긍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루에도 서른 번은 차도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말로는 그 무엇의 모습도 정상이라고 뱉어대도 긍정이 사라진 내 모습이 비정상 같아 스스로 화를 내며 꼬리표를 만들어 달았다. 인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대학 생활을 마치고 자취방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언니는 나에게 카톡으로 이런저런 말을 해주었다. 나의 분노가 커진 데에 자신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는 사과와 함께 그런 나의 모습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밝고, 명량하고 쾌활했던 모습만이 나인 것 같아 변했다고 생각했다며, 깜깜한 겨울밤과 같은 모습도

전부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다짐과 함께 언니는 나의 이런 모습이 겨울지나 봄이 오듯, 계절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말하며 사과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직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 우울을 타인이 먼저 인정해 주었다. 눈에서 눈물이 마구 흘렀다.

어디서 오는 눈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 이해받고 싶었나? 아니면 지금 억울한 걸까? 하루아침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이 된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울었다. 목이 찢어지는 건지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 느낄 새도 없이 엉엉 울었다.






내가 나의 우울을 받아들인 지는 몇 년 안 되었다. 그때 즈음 집안은 어려워졌고, 원하던 회사에 취업한 후 고생길 훤한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고, 3년을 의지했던 남자친구와 사형선고 같은 이별을 맞이했다.( 아주 회피형이라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충격이 컸기에 이건 또 다른 에피소드로 적을 예정이다.) 뭐 이러한 이유를 핑계로 구토를 심하게 했고, 과호흡이 왔다. 회사 화장실에서 헐떡이다 직장 상사분이 약을 사다 주셨을 때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0년을 미뤄둔 정신과를 가겠다고 그때 마음먹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나 이렇게 울어 본 적이 있나? 짧은 인사말이 방 안을 채우기도 전에, 소리도 없이 울었다. 혹시 나에게 최면을 걸었나 싶을 정도로 부끄러움은 어디 갔는지 또 울었다. 선생님은 하루 이틀 있던 일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레 휴지를 내미셨다. 첫 만남에서는 약간의 호구 조사와 함께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2주 후에 와서 들으면 된다고 하며 선생님은 추측건대 관계와의 이별에서 오는 상실감일 수 있다고 하셨다.





두 번째로 내가 그 방문을 열었을 때 선생님은 나를 반갑지도, 냉랭하지도 않게, 판타지 속 말하는 고양이처럼 젊잖고 묘한 다정함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들으나마나 나는 또 울었다. 묵혀둔 슬픔이 어디선가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검사 결과를 토대로 선생님은 나에게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저는 제가 우울증인지 잘 모르겠어요. 약 먹을 정도도 아닌 것 같아요."늘 그렇듯 나는 또 부정하기 바빴다.

"오랜 슬픔이 굳어져서 성격이 되어 버렸어요. 이 슬픔은 아주 오래되었어요."선생님은 당신이 처음 추측한 부분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라고 하셨다.


그래, 내 슬픔은 오래되어서 내가 돼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객관적인 점수를 알려달라고 했고 정신과 특성상 공개하지 않는 내용도 선생님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 말씀해 주셨다. 고위험자. 약물 사용 시기를 지남. 자살충동이 매우 크며, 모든 게이지가 평균값의 상위권이라고 하셨다.( 성적 상위권은 못해봤는데 굳이 이런 곳에 상위권일까) 나의 고집으로 아주 약한 용량의 약만을 받은 채 진료실을 나왔다.


울지 않았다. 그런데도 받아 온 검사지 속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계절이 여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느낄 수 없었다. 다만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온몸으로 느껴졌다. 어찌할 줄 모르다 병원 옆 빵집에서 초코가 묻은 빵을 하나 샀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빵을 받아 나와 물끄러미 빵을 바라보다 달달한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라고 생각했다. 울었다. 처음으로 나의 우울에게 주는 애정이었다.


잘 살아보자 이 한 몸으로 둘이서.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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