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눈치가 꽤 빨랐다. 그리고 종종 슬픔을 숨겼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나라도 조금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는 타고나길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자주 슬펐다. 열일곱, 친구들과 헤어진 후 하굣길을 혼자 걸었다. 차가 쌩쌩 다니는 대로변 길거리였다. 문득 그냥 저기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은 슬프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의문이 들었던 때쯤 내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고층 건물에 올라갔던 순간에도, 은색의 번뜩이는 그 긴 것을 가지고 방에 들어갔던 때에도 무서웠다. 슬펐다. 근데 그날은 슬프지 않았다. 무언가 잘 못되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아, 나 죽는 게 더 이상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구나. 그때 내 모든 감정이 소멸됨을 느꼈다.
하지만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학교에 갔고 웃었고 밥을 먹었다. 졸업 후에도 자주 웃었다.
학교에 갔고, 친구들과 밤 산책을 하고 자취방에 들어왔다. 그날은 유서를 썼다. 쓰다 보니 할 말이 너무 많았다. 나는 딱 두장만 적으려고 했는데, 한 사람에게 할 말이 두장씩이나 되었다. 웃었다. 나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못 죽겠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까지 나는 우울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소멸되다. 그래 나는 소멸되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처럼 전원이 꺼져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기를 바랐다. 정말 솔직히 고하자면 어디서부터 시작된 슬픔인지를 찾을 수 없어 버거웠다.
정말 어렸을 때 알게 된 부모님의 이혼이었을까? 혹은 넉넉지 못한 집안사정에 생에 첫 핸드폰을 살 때 느낀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엄한 할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아픈 조부모가 걱정돼 인문계열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특성화고에 가면서였을까? 반따를 당하면서 사이버 불링을 당했을 때였나?
부모님은 이혼했지만 재혼해서 멋진 새아빠를 얻었다. 조부모님과 살면서 엇나가지 않을 수 있었고 그분들은 어려워도 최선으로 나를 사랑하셨다. 핸드폰도 일찍 사주셨다. 할아버지는 엄했지만 나를 유독 예뻐하셨다. 나는 원래 공부에 큰 재능이 없었다. 나에게는 좋은 스승이 있었고, 반따를 당해도 나는 당찼고 당당했으며, 주변에 항상 좋은 친구들이 있어주었다.
아, 내 안에는 사랑이 너무 많아 슬프구나. 내 안에는 나에 대한 사랑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슬프구나.
이제 나는 내가 사랑을 노래하게 되던 날들을 기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