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픈 건 전부 사랑이 많아서야

by 랑새

"내가 아픈 건 전부 사랑이 많아서야"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랑이 많아 슬프다는 말이 종종 어렵게 들린다는 친구에게 나는 그저 슬쩍 웃어만 보였다.



어릴 때 뒷 집 할머니 집에는 암소가 살았다. 여물을 이미 많이 먹었으니 더 주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크고 영롱한 눈을 보다 보면 짚을 한 움큼 더 주게 돼버렸었다. 암소는 송아지를 낳았다. 송아지는 정말이지 순해서 손을 내밀면 이마를 대어주고는 했었다. 자주 밥을 챙겨주어서 나를 보면 음메 음메 울었다.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학교를 마친 후 송아지를 보러 놀러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었다.


하루는 뒷 집에 놀러 가 외양간을 보니 소가 한 마리뿐이었다. 송아지가 없었다. 뒷 집 할머니는 작은 외양간이라 송아지를 팔았다고 말씀하셨고, 외양간 창문으로 보이는 어미 소의 눈동자는 여전히 크고 영롱했지만 슬퍼 보였다. 소는 며칠을 울어댔다. 울음소리는 멎어갔지만 왜인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나를 몇 달간 괴롭히는 듯했다. 송아지는 잘 있을까? 동 떨어진 환경에 불안하지는 않을까?

적어도 나는 불안했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네에서 밤을 보내게 됐을 때 나는 내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알만큼의 나이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 돌아가겠지라는 생각으로 한 밤, 한 밤 손가락을 접었었다. 그러니 송아지가 가고 난 후 나의 밤은 슬펐다. 그 어린 송아지를 나는 나처럼 사랑했다. 내가 부모님을 사랑해서 시골이 즐겁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송아지도 어미소를 탓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은 줄 곧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자신보다 사랑할 것들이 세상에 차고 넘쳤다. 우리 조부모님은 나에게 최선을 다해주셨다. 공무원 정년 퇴임으로 받는 작은 연금으로 그들은 황혼의 나이임에도 어린 손녀를 키워냈다. 어린 손녀와 황혼의 노부부의 시간은 너무 다른 속도로 흘러가 노부부는 아픈 곳이 많아졌다. 나는 놀고 싶었고, 무언갈 소비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나의 존재로 너무 많은 소비를 하고 있는 조부모님에게 더 이상의 요구를 할 수 없었다. 그들도 나를 위해 어떠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마음이 부서짐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미안함을 느꼈다.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더 도움이 되지 못해서 혹은 그런 마음을 황혼에 느끼게 했다는 자체로

사랑함에 속상해하는 밤이었다. 나의 집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밤, 내 마음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고등학생 때 등교를 하다 쓰러졌었다. 난소에 혹이 매우 크게 자라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단지 그냥 살이 쪄서 배가 나온 줄 알았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속상해할 얼굴들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미안한 마음이었다. 아프다는 말에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매우 놀랐고, 어떤 이는 울었다. 다행히도 악성종양은 아니었지만 그 크기가 수박만 하다 하여 바로 수술일을 잡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수술당일에 올 수 없었다. 당시에 몸이 좋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는 수술 전 일, 홀로 밤을 보냈다. 불 꺼진 병실 안 반짝이는 핸드폰 액정엔 이혼 후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엄마의 전화번호가 떠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내 마음이 부서졌다. 아마 그녀는 마음이 소멸될 것처럼 아팠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아픈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님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우리는,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슬픈 밤을 보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