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옆자리 소라님에게서 DM이 왔다. 우리는 지금 위클리 미팅에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새 팀리더가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한 달쯤 전에 원래 있던 리더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 우리한테는 이직한다고 했는데 회사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성과가 안 좋아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커머스 파트리더가 급하게 패션 팀리더 자리를 겸직하고 있었다. 워낙 바쁜 분이셔서 그동안 팀 분위기가 붕 떠있었던 게 사실이다. 덕분에 그 사이에 칼퇴도 하고 휴가도 몇 번 썼다.
C사 창업 초기부터 계셨던 분이라서 비즈니스를 스케일 업해보신 경험도 있고 여러모로 여러분이 지금까지 일했던 분위기랑은 다를 거예요. 삼고초려해서 모셔오는 분이니까 이 기회에 여러분들도 개인적으로 많이 배우고 팀적으로도 올해 KPI를 달성하는 데 힘써봅시다.
스타트업에서 유니콘으로, 최근엔 미국 증시에 상장까지 한 엄청나게 잘 나가는 C사에서 오는 사람이다. 다들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이긴 하지만 들어가면 사람을 갈아 넣는다(…)고 하는 곳. 그런 데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니 분명 팀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고 대하기 어려운 팀장일 거라고 소라님은 걱정을 하는 것이다.
2.
내일 11시 미팅에 초대되었다고 알림이 왔다. 오늘 첫 출근하신 민재님 – 새 팀장님 – 이 팀원들과 1:1로 미팅을 잡고 있는 중이다. 내가 다른 2명보다 먼저 입사해서인가? 제일 빨리 미팅이 잡혔다. 팀장님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들어가게 생겼다.
네 지수님, 들어와요. 오늘은 별건 아니고 지금 하고 있는 업무는 어떤지, 앞으로 회사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건지 이야기하려고 잡았어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귀 밑에서 똑 떨어지는 칼단발머리의 민재님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은 뒤에 바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보니까 작년 하반기랑 올해 상반기 연속으로 신규 브랜드 영입 수 커머스 전체 1등이 지수님이네요. 대단한데요, 비결이 뭐예요?
만나자마자 칭찬을 해주는 민재님 덕분에 긴장이 좀 풀린다. 의외로 우리가 걱정했던 것보다 따뜻하고 좋은 분일지도?
아하하, 비결이랄 것까지는 없고요. 다른 분들보다 좀 더 전화도 많이 돌리고 직접 나가서 대면미팅도 많이 하고 한 덕분인 것 같아요.
네에, 컨택 자체를 많이 하셨군요. 전화 돌리고 만나고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지수님이 그만큼 열심히 해주신 덕분에 패션팀 브랜드 수가 1년 동안 거의 2배가 늘어났네요. 그럼 보통 일주일 동안 지수님이 하는 업무 중에 가장 시간을 많이 차지하는 게 신규 영입 업무예요?
네네, 타깃 업체 리스팅하고 연락처 찾고 콜드콜이랑 콜드메일(cold call/mail: 잠재고객에게 사전 약속 없이 직접 전화나 메일로 연락하는 것) 돌리고, 회신 오는 데는 미팅하고 하니까 제일 시간이 많이 들긴 해요.
보통 한 주에 몇 개 업체를 리스팅 하고 실제 피치(pitch: 고객에게 판매나 홍보 목적으로 설명이나 제안을 하는 것)까지 진행되는 곳은 몇 군데나 돼요?
피치라는 단어는 내가 3년 동안 여기서 일하면서 처음 들어봤다. 대충 대화 맥락으로 뜻을 추측해 보면 연락이 닿아서 상담을 진행한 업체가 몇 군데인지를 물어보시는 것 같았다. 사실 한 주에 몇 개를 리스팅 하는지는 세어 본 적이 없는데 – 그때그때 다르기도 하고 – 하지만 최대한 많이 한다고 말하는 게 좋겠지.
한 주에 50개 정도 찾아놓고 연락하면 피치는 10군데 정도 진행하는 것 같아요.
20% 정도네요. 그럼 이제 매주 10개 업체만 타기팅해 보세요. 대면미팅 진행하더라도 한 주에 한 번 또는 두 번까지만 하는 걸로요. 그럼 지수님 업무 비중에서 영입 업무는 좀 줄어들겠죠?
내가 이 팀에서 제일 잘하는 것의 비중을 줄이라니 얼떨떨해져서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내 얼굴에서 마음을 읽은 듯이 민재님이 덧붙여 말했다.
지금까지 커머스 파트의 목표가 최대한 셀렉션(selection: 고객이 선택하여 구매 가능한 상품들의 집합)의 수를, 양을 늘리는 것이었다면 이번 3분기부터는 전략의 방점이 지금까지 확보한 셀렉션을 기반으로 GMV(Gross Merchandise Value: 이커머스의 총 거래액 지표, 현업에서는 매출의 의미로 사용)를 확대하는 것으로 옮겨갈 거예요. 지난 1년 간 셀렉션 수의 증가가 GMV 성장에 기여를 못한 것으로 분석되었기 때문에 회사 전체의 비즈니스 방향성이 상품 운영, 관리에 집중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그럼 할인행사를 더 많이 하는 건가요?
신규 업체 영업과 더불어 내가 제일 많이 하는 일은 할인행사가 있을 때 담당 브랜드에 연락해서 참여 여부를 확인하고 할인가를 정하는 것이었다. 영업은 내가 말을 잘한 덕분에 입점하겠다고 하면 그에 따라오는 성취감이 있지만, 할인가격 협의하는 것은 딱히 재미가 있는 일은 아니다.
할인행사도 전략 중에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단순히 할인행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거예요. 고객과 상품을 딥다이브(deep dive: 특정 대상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하는 것)해서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실행할 거기 때문에 지수님은 앞으로 고객 데이터와 상품 데이터를 더 많이 들여봐야 해요.
데이터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다시 긴장감이 몰려왔다. 이전에도 주간회의 때나 팀장님이 따로 요청할 때 태블로(스타트업 등에서 사용하는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 툴)에 나와있는 숫자를 그대로 붙여 넣을 줄만 알지, 자세한 건 알지 못해서 대충 넘어간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데이터를 더 많이 들여다봐야 한다니, 대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보라는 걸까?
앞으로 한 달 동안 매주 같은 시간에 여기에 미팅 잡아둘게요. 지수님이 담당하고 계시는 업체들, 저랑 원온원(1 on 1: 리더와 팀원의 일대일 미팅)으로 같이 보고 필요한 액션 정해봐요. 먼저 다음 주에는 2분기 GMV 상위 20개 업체 지표 정리해서 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하고 일단 대답은 했지만 사실 잘 알지 못하겠다. 민재님이 잡아놓은 내 미팅 시간이 다 되어서 회의실 밖에 다음 타자인 소라님이 이미 서성거리고 있다. 머릿속으로 ‘2분기 GMV 상위 20개.. 2분기 GMV 상위 20개..’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되뇌며 민재님과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소라님이 ‘어땠어?’라는 뜻을 담아 눈썹을 올렸다 내린다. 나는 민재님이 혹시 볼까 봐 아주 살짝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소라님은 입을 삐죽거리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3.
지수님, 제가 이걸 왜 정리해 오라고 했을까요?
다시 돌아온 민재님과의 원온원 시간. 회의실 대형 모니터에 내 노트북을 연결하고 엑셀파일을 열었다. 민재님은 내가 엑셀로 만든 - 만들었다기보다는 태블로에서 붙여 넣은 - 표를 잠깐 말없이 보더니 입을 열었다.
2분기 GMV 상위 20개 어떤 업체인지 보시려고..
단순히 업체가 어디인지를 알고 싶었다면 제가 바로 태블로에서도 볼 수 있죠. 지수님이 가져오신 자료로 그럼 일단 이야기해 봐요. GMV 1위 ‘ㅅ’ 브랜드는 전년 2분기에도 1위였나요? 전년에는 실적이 어땠어요?
‘ㅅ’ 브랜드는 항상 매출이 잘 나오는 브랜드이기는 한데, 작년에도 1위였는지 그리고 그때 GMV가 얼마였는지는 잘 모른다. 아니, 민재님은 작년 매출도 알고 싶으셨으면 지난주에 말씀해 주셨어야 되는 거 아니야?
네, 작년에도 1등이었고 GMV는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비슷한 수준이라는 건 전년 대비해서 GMV가 성장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작년 지표 보셨나요? 여기 보여주시는 파일에도 내용이 있나요?
민재님이 내 눈을 쳐다보며 질문을 연달아 던진다. 따뜻하고 좋은 분인 것 같다고 한 말 취소다. 소라님이 지난 주에 첫 미팅 끝나고 와서 좋은 듯 무서운 분이야. 라고 단언한 게 귓가에서 맴돈다.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날 것 같다. 아니 이미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음, 아니요, 작년 실적은 따로 정리해두지는 않았는데..
네, 그럼 같이 한번 봐요. 태블로에서 'ㅅ' 브랜드 작년 2분기 실적 조회해 주세요.
'ㅅ' 브랜드는 작년 2분기에는 1등이 아니었고 1년 동안 GMV가 많이 늘어났다. 얼렁뚱땅 얼른 답해버리고 나면 그 질문을 넘어갈 줄 알았지, 이렇게 바로 확인해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발설한 대가로 민재님한테 혼이 나는 건 아닐까.
전년 대비해서 GMV가 약 40% 성장했네요. 뭐 때문에 이렇게 성장했을까요? 이번 분기에 특별한 이슈가 있었어요?
그전에 내가 했던 말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민재님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아, 'ㅅ' 브랜드가 이번 시즌에 출시한 원피스 상품이 초반부터 판매가 잘 됐는데 4월에 하객룩 기획전하면서 매출이 크게 올랐던 기억이 난다. 이것만큼은 확실했기에 나는 자세하게 당시의 기억을 풀어놓았다. 민재님이 원피스를 잘하는 브랜드군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ㅅ' 브랜드 말고 한두 개 업체를 마찬가지로 태블로에서 전년 실적을 조회해서 비교하면서 보고 나니 벌써 회의실 예약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지수님, 이제 화면 끄셔도 돼요. 제가 오늘 GMV 상위 업체를 같이 보자고 한 건, 어떤 업체들이 있는지 뿐만이 아니라 이 업체들이 전년, 전분기 대비해서 실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변화요인은 무엇인지, 그럼 이 상위 20개 업체들부터 어떤 액션을 취하면 더 실적을 개선할 수 있을지 지수님과 같이 논의해보려고 했어요. 이번 분기에 지수님은 새로운 브랜드를 들여오는 것보다 이 20개 업체를 제대로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 업무예요.
노트북을 닫으려다가 지금 말씀하시는 것들은 적어놔야겠다 싶어서 급하게 다시 노트북을 열어 메모장을 켰다. 타다닥, 민재님이 말하는 그대로를 키보드로 옮겨 적어 놓는다.
오늘 같이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2분기 GMV 숫자만 봐서는 이게 잘한 건지 못한 건지 판단할 수가 없어요. GMV 같은 실적 지표는 전년, 아니면 전분기처럼 이전 기간과의 비교를 통해서 정확한 의미를 분석해 낼 수 있거든요.
지금까지 일하면서 어느 자리에서나 GMV를 제일 많이 이야기하긴 했어도, 일십백만천 읽어내기도 어려운 큰 숫자라서 나에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미팅하면서 민재님이 각 업체별로 전년 대비 GMV 신장률을 같이 계산해서 알려주시니까 이 브랜드가 잘했는지 못했는지가 바로 느껴졌다.
저랑 지금 했던 방식으로 업체별로 올해 2분기 GMV, 전년 2분기 GMV, 그리고 올해 1분기 GMV 3개 실적을 비교하고 각각 신장률은 얼만지 다시 표로 정리해서 팀 슬랙 채널에 올려주세요. 아까 보니까 업체별 실적 로데이터(Raw data: 가공하지 않은 원본 데이터)로 분석하신 것 같던데 2분기 상품별 전체 판매실적 데이터 뽑으셔서 그 데이터 기준으로 표 다시 만들어보세요. 하시면서 잘 모르시겠는 건 저한테 바로바로 슬랙 주시고요.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목요일까지 작업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