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말보다 한 장의 차트

by 엠디언니

1.

벌써 한 달이 됐네요, 지수님.


오늘은 좀 늦으시나, 하고 노트북으로 시간을 보는데 미팅 시간 정각이 되자 민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 그땐 그런 것도 몰랐지만 - 표를 가지고 민재님과 숫자 하나하나 뜯어봤던 첫 번째 원온원 이후 이제 네 번째, 마지막 미팅이다.


네, 오늘이 마지막 시간이네요. 민재님 오신 지도 한 달이 훨씬 지났어요, 시간이 너무 빨라요.


그러게요. 7월 전체 기간 보기로 했죠? 어때요, 주간 단위로 봤던 것보다 새로운 인사이트가 있나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민재님과 친해진 것 같아서 긴장이 풀렸다가도, 더 이상의 잡담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한 분위기에 다시 얼어붙는다.


아, 네네. 7월 전체 분석을 해 보니까 확실하게 보이는 트렌드들이 있어요. 6월보다 GMV가 많이 오른 업체들은 티셔츠에서 매출 신장을 많이 했는데, 7월에 티셔츠 신상품을 많이 등록한 업체들일 수록 그만큼 신상품에서 매출이 더 나오면서 총매출 상승에 기여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원래 2분기 1위였던 'ㅅ' 브랜드는 원피스 위주라서 순위가 떨어졌고 오버핏 티셔츠 비중이 높은 'ㅁ' 브랜드가 7월 1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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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온원 때 분석하는 지난 2분기 상위 20개 업체 실적 표가 새로 분석한 내용들이 추가되면서 가로로 더 길어졌다. 전체 상품 수 지표에 기존 상품과 7월에 신규로 등록된 상품 수를 나눠서 추가했고, GMV도 마찬가지로 기존 상품과 7월 신상품 실적을 세부로 표현해 두었다.


7월 GMV 전월 대비 전체 증가분이 8.8백인데 신상품 티셔츠에서 13.3백 증가했다는 거죠? 지수님, 7월 GMV, 전월 GMV, 전년 GMV 카테고리별 비중 열 추가해서 계산해봐 주실래요?


손이 좀 버벅거려서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요청사항에 맞게 표를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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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전월은 당연하고 전년 대비해서도 티셔츠 GMV 비중이 +4%p 높아졌네요. 지수님은 티셔츠 신상품 위주로 매출이 오른 원인을 추측해 보면 어떤 게 있을 것 같아요? 가설을 세우자면요.


음, 안 그래도 저도 고민을 해보긴 했는데요. 어떤 데이터를 봐야 할지 몰라서 확인해 보지는 못 했는데, 티셔츠가 정가도 낮은 편이고 사이즈 고민도 많이 안 해도 돼서 비싸고 착용후기 없는 다른 카테고리 신상품들보다는 구매전환이 쉬운 카테고리인 것 같구요. 그리고 최근 트렌드가 원피스 한 벌 입는 것보다는 티셔츠랑 뭐 와이드한 팬츠, 버뮤다나 파라슈트 팬츠 입는 그런 스타일이어서 그 영향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민재님이 내 얘길 듣고 지금 현재 둘이 입고 있는 옷차림을 본다. 검지손가락으로 빠르게 나를 한 번 가리켰다가 본인을 한 번 가리키고는 그렇네요. 라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둘이 딱 내가 말한 스타일로 입고 있다 – 맹세코 내가 노리고 말한 건 아니다.


네, 충분히 가능성 높은 가설이네요. 간단하게만 검증해 보시죠. 카테고리별 ASP와 PV 대비 구매전환율(상품페이지 조회 수 대비 실제 구매 수) 확인해 보시고요. 전년과 전월 대비 카테고리 키워드 검색량 추이, 주요 경쟁사 상품 랭킹 20위 내 카테고리별 비중 비교해서 우리랑 경쟁사 고객 트렌드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추가로 분석하신 뒤에 지수님이 말씀하신 키 메시지(Key message) “상위 20개 업체의 전월 대비 7월 GMV 신장은 티셔츠 신상품이 견인했다” 요 내용은 지금 보고 있는 표 말고 차트로 만들어보실래요? 위클리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 지금까지는 한 적 없었던 월간 리뷰를 커머스 파트의 모든 팀이 모여 파트리더 배석 하에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카테고리별 실무자가 2-3분 내로 자기 카테고리 리뷰를 발표해야 된다 - 7월 리뷰를 다음 주 금요일에 진행할 거예요.


다음 주 금요일? 몇 시였지? 초대를 못 받은 것 같아서 확인해 보려고 내 캘린더를 보니 아무 스케줄도 없었다.


아직 인비(invitation, 인비테이션의 줄임말로 일정 초대를 뜻한다)는 안 보냈어요. 지수님은 이 내용으로 간략하게 공유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다만 저는 계속 이 표를 봐 왔기 때문에 빠르게 지표를 골라볼 수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많은 숫자 중에 뭘 봐야 할지 모를 수 있어요. 그래서 중요 메시지만 따로 차트로 시각화해 보죠. 추가 분석도 그렇고 차트도 그렇고 도움이 필요할 수 있으니 혼자 해 보시고 나서 리뷰 전에 같이 봐요. 화수목 일단 작업해 보시고 금요일에 빈 시간에 스케줄 잡을게요. 30분이면 될 것 같아요.


2.

같은 날 오후 주간회의 시간. 민재님이 크라프트 쇼핑백 안에서 똑같은 책을 세 권 꺼내서 팀원들에게 나눠준다.


세 분께 이번 주에 공통으로 차트 과제를 내드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다들 고민이 많으신 것 같아서요. 먼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고 작업하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끝까지 다 읽으실 필요는 없고 섹션 1만 꼼꼼하게 읽으시고 섹션 2에서 각자가 준비한 메시지와 비슷한 내용의 차트가 있는지 찾아보고 따라 해보세요.


'맥킨지, 차트의 기술’이라는 책이다. 안 그래도 차트 작업이 막막해서 오늘 퇴근하고 유튜브로 엑셀 그래프 만드는 걸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신 이 책을 읽으면 되겠다. 어려운 책은 아니겠지?


3.

파트 리더님이야 민재님이 오기 이전에 잠깐 우리 팀을 맡기도 하셨고, 워낙 성격이 좋은 분이라서 같이 리뷰를 한다고 해서 어렵거나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다른 팀들까지 다 모여서 내 발표 – 뭐 2분도 안 걸리지만 – 를 듣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발표에는 자신이 있다. 대학교 때부터 팀플 하면 프레젠테이션은 내 담당이었고 여기에 들어오고 나서도 2번 정도 전체 직원 앞에서 피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숫자와 비율을 중심으로 말해야 하는 건 처음이라, 데이터에 대해서 발표하는 건 처음이라 떨리기 시작한다.


민재님이 가장 먼저 패션팀의 전체 실적 리뷰를 깔끔하게 끝냈다. 다음 차례는 역시나 나로 정해져 있다. 이 정도면 고유지수라고 불러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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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20개 업체 7월 리뷰 결과 발견했던 포인트는 다른 카테고리의 매출 정체 상황에서 티셔츠 신상품으로 GMV가 개선되었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왜 티셔츠 신상품은 매출이 높았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내가 세웠던 가설은,

1) 다른 카테고리 대비 티셔츠의 판매가격이 낮기 때문에 신상품이어도 구매 전환이 높았을 것이다.

2) 다른 카테고리 대비 티셔츠는 사이즈 제약이 크지 않기 때문에 – 상품별로 실루엣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원래 입는 사이즈를 구매했을 때 실패할 확률이 적다. 그리고 사이즈 옵션이 ‘Free’ 원사이즈인 상품 비중이 높다 – 실착 정보가 포함된 후기가 없어도 구매 전환이 잘 되었을 것이다.

3) 전월, 전년 동월 대비 티셔츠 상품을 탐색하는 고객 수요가 늘어났을 것이다.


카테고리별 신상품의 ASP와 구매전환율, 검색량, 경쟁사 인기상품 등의 데이터를 추가로 확인하고 카테고리별로 비교 분석해 본 결과, 내가 세운 가설들이 적중했음을 검증할 수 있었다.

1) 신상품 평균 ASP 52,000원 대비 티셔츠 ASP는 21,500원으로 40% 수준이다.

2) 신상품 평균 구매전환율 1.8% 대비 티셔츠 구매전환율은 3.2%로 +1.4%p 높다.

3) 티셔츠 연관키워드 검색량은 전월 대비, 전년 대비 모두 10% 증가하였다.


한 장의 차트를 띄워놓고 6월 대비 7월 실적 리뷰의 중요 포인트, 즉 키 메시지를 전달한 후에 추가로 분석한 증가 요인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마무리했다.


전사적으로 비수기인 7월에 신상품으로 GMV가 증가했다는 게 아주 고무적이네요. 그 요인에 대한 분석도 이해가 잘 됐어요. 리뷰에서 끝나지 말고 지수님이 가을에 후드, 스웨트셔츠까지 쭉 매출을 끌고 나가는 방법을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파트리더님이 나를 쳐다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예전 같았으면 서론부터 결론까지 이야기가 많았을 텐데 차트 한 장만 띄워놓고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발표가 잘 끝났다. 원님한테서 슬랙으로 엄지척 이모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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