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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주는 분실물센터

잃은 물건과 잃게 된 시점을 알아야 CCTV라도 돌려볼 수 있습니다.

by 윤지아

기다란 테이블이 2열로 길게 뻗어있는 급식소 같은 식당이다.

나는 복도를 누비며 아까 놓아둔 내 가방을 찾고 있다.

이상하다. 분명 이쯤에 둔 것 같은데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 가져갔을까?

아닐 것이다. 카페에서도 자주 가방과 소지품을 두고 화장실을 다녀왔지만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럴 리가 없다.

그런데 정말로 없다. 아무리 찾아도.

잃어버린 내 가방은 루이비통 네오노에 백으로, 명품백이라 할 수 있지만 하도 많이 들고 다녀 가죽끈이 벗겨진 조금은 낡은 티가 나는 가방이었다.

안에 뭐가 들었었더라, 구찌 홀스빗 지갑이 들었고 현금은 거의 없었다.

가지고 있었을 때에는 크게 비싼 건 아니라며 막 들고 다녔지만, 잃어버리고 나니 추산 400만 원 이상은 날린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 온다.

식당을 한참 누빈 나는 관리실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 CCTV열람 신청을 해 두고 가게를 나왔다.

빈손으로.

어깨에 메고 있을 땐 몰랐던 허전함.

가벼운 어깨와 텅 빈 마음으로 가게를 나온 나를 맞이한 건 남자친구였다.

키가 크고 마르고 그리 짧지 않은 머리에 가벼운 펌이 잘 어울리는 그 사람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촐싹촐싹 거리며 나를 정신없게 만든다.

그러나 내 기분을 풀어주고자 함이 아니라, 그저 본인 성격이 활발할 뿐이다.

주변에 금세 다른 남자애들이 몰려와 남자친구는 잠깐 다녀오겠다며 무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농구코트로 보이는 넓은 장소에 이른 난

잃어버린 가방과, 사라져 버린 남자친구의 상실감을 온전이 느끼며 텅 빈 농구코트 한가운데에 서있다.

주변엔 아무도 없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다시 나에게 와달라고 하려다가,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왜인지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래 그냥 친구들과 놀게 두자.'

농구코트에서 나와 좁은 찻길을 건너자 한강고수부지가 나온다.

시간대는 저녁인 것 같다.

한강노을이나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려다, 상실감만 부각시키는 짓이라는 생각에 그만두고 발길을 돌렸다.




잠에서 깬 나는 일단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루이비통 가방도 구찌 지갑도 서재에 그대로 있다.

꿈에서와는 다르지만(다른 사람이지만) 남편과 딸도 방에서 잘 자고 있다.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상실감은 여전하다.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 골똘히 생각했다.

가장 강력하게 남은 꿈속 장면은 농구코트 한가운데 서있던 내 모습이다.

꿈속 남자친구는 실제로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조차 나를 혼자두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 마음, 상실감을 나누고 싶었던 그 마음, 그러나 결국 자존심상 그조차 드러내지 않은 내 태도.


무엇을 상실했는지 금방 깨달았다.

마음을 터 놓을 곳이 없구나.

마음을 잃었고, 말을 잃었구나.

이 꿈은 내 마음속 분실물센터에서 간곡히 보낸 신호였다.

내 기억 속 CCTV를 돌려 어디서부터 내 마음을 잃었는지 봐야겠다.

답답한 회사라던가, 진지하게 논의해 주지 않는 남편이라던가, 티 내고 싶지 않은 내 자존심이라던가

그런 외부적이고 포장된 가짜 요소들 말고

진짜 잃어버린 내 마음이 궁금하다.

잃어버린 내 마음과 말들은 루이비통 가방과 구찌 지갑처럼 특정되지는 못하지만, 분명 그보다 더 값진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아야 찾으려고 노력이라도 할 수 있다.

지금 난 그걸 먼저 알아내야 한다.


- 2025. 8. 13. 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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