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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몇 층에 있든, 창문을 내다보세요.

우리 인생에서 다시 안 올 아름다운 오늘에 감사하며

by 윤지아

2025. 5. 23.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공동현관에 들어서자 어째 로비가 낯설게 느껴진다.

아파트라기보다는 복합 쇼핑몰처럼 넓고 밝은 느낌이다.

그러나 꿈이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 집인 13층을 누르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듯 올라간다.

당황함도 잠시 멈춰 선 층은 133층이다. 숫자 앞부분만 보고 도착했다고 생각한 나는 엘리베이터에 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내린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 집도, 우리 아파트 복도도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안내 데스크를 중심으로 양 옆 아치형 복도에는 레드카펫이 깔려있고, 사람들은 서둘러 본인의 방을 찾아 자연스레 레드카펫을 밟아 사라졌다.

나는 낯선 이곳을 둘러보기로 한다.

양쪽으로 나뉘어있는 복도의 한쪽을 선택해 거닐자, 원형건물인 듯 가운데를 지나 다른 쪽 복도의 출구로 이어진다.

그 복도 가운데서 파노라마 통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 맑고 깨끗하고 푸르른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이런 뷰를 보고 있자니, 꿈이지만 꿈만 같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에도 비슷한 풍경을 꿈에서 본 적 있다.

그때는 영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에서 나온 투명 엘리베이터 같은 것을 타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었는데. 그때 본 풍경은 지금처럼 도시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자연에 가까운 풍경이었더랬다.

꿈임에도 황홀하다는 기분이 들었고, 투명 엘리베이터 속에 갇혀있음에도 바람을 느끼며 자유로운 기분을 느꼈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세상의 풍경.

그리고 꿈에서 느낀 그 자유롭고 황홀한 기분.

그러나 내가 느낀 꿈속 감정은 그러한 장면을 보고자 동경하는 갈망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내 상태에 대한 만족스러움, 그대로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런 안정감이 빚어낸 무의식이다.


그 층수는 내 사회적 위치였을까. 내 나이였을까. 여러 날들 중 하루인 날짜였을까.

무엇이 되었든, 내 의지로 도달한 곳은 아니었다.

그저 저절로 올라 문을 열어 준 엘리베이터처럼, 시간이 데려다준 곳일 뿐.

현실 속 내가 몇 층에 도달해 있든, 잠시 그곳에 멈춰 서서 주변의 풍경을 감상함이 마땅하다.

다른 층에서는 볼 수 없는 이 풍경은 지금만 볼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꿈에서의 황홀했던 기분이 아침 내내 은은하게 퍼져 기분 좋은 금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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