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소개팅이라도 시간낭비는 아니다.
소개팅 전날을 생각해 보자.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1. 새로운 만남에 그냥 설렘
2. 새로운 만남에 그냥 걱정됨
3. 뭘 입고 나가고, 어떤 모드로 대화를 임해야 하는지 고민
4.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나올까 걱정됨
5. 상대가 나를 맘에 들지 않아할까 봐 걱정됨
6. 에프터를 받지 못할까 걱정됨
소개팅과 면접은 굉장히 많은 유사점이 있다.
일단 서로가 처음이라는 점.
그리고 서로를 알고 싶어 하는 점.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점.
걱정과 설렘이 공존한다.
면접이든 소개팅이든 약속장소로 가는 길은 떨리는 법이다.
외모, 복장, 말투, 표정이 절반은 결정한다.
내가 가진 이력과 스펙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내 이미지는 어떻게 조절하거나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는것이다.
긍정적 이미지를 풍기는 사람이 되도록 평소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자신감이 지나쳐 확신에 찬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프로답지는 못하다.
과유불급이라고 적당한 포커페이스에 여유 있는 웃음 포인트를 장착해 보도록 하자.
물론 이만큼 맘에 드는 회사도 없다.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세상은 넓고 남자는 아니 회사는 많다.
브랜딩을 기가 막히게 하는 회사 면접을 다녀왔다.
면접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입사하는 게 목표였다. 잡 플래닛 평점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광고 이미지도 참 좋았다. ESG 경영방식도 그렇고, 입사하게 되면 많은 새로운 도전 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면접에서의 이미지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아이가 있으신데 아이는 어떻게 하실 거죠?”
“아이에게 급하게 가줄 사람은 있나요?”
“육아휴직은 왜 쓰셨나요?”
세상 트렌디하고 편안함을 강조하는 회사에서 “아이” 타령을 세 번이나 듣게 된 불편한 경험을 했다.
심지어 육아휴직을 왜 썼냐는게, 이게 질문인가? ( 욕이 나오지만 참는다)
그럼 너는 이 면접을 왜 보고있는거냐? 라고 묻고싶다.
사실 큰 회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민감한 질문들도 서슴지 않는 것은 중소기업에서는 흔한 일이라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지만, 저렇게 애 타령하는 기업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 없다.
차여도 그만이다. 좋은 회사는 많다.
아니 이 경우는 내가 먼저 찼다고 말하고 싶다.
괜히 여기까지 왔네. 괜히 연차를 썼네. 내 시간이 아까웠다 등등 불만은 금지다.
오늘 이 시간 이곳에 이 회사를 방문한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믿고 감사하자.
회사에서 몰래 시간차를 내고 빠져나와 면접을 가는 길에서 왜인지 모를 바람피우는 기분을 느껴보았다면,
면접이 끝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면서, 이상하게 내 오래된 회사의 내 안락한 의자가 편안히 느껴지게 되었다면,
이 면접을 계기로 지금 회사에서 조금 더 해 낼 마음이 생겼다면, 그 또한 그 면접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낸 것이다.
오늘 다녀온 회사와 다시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면 안 된다.
삼성 다닐 때의 명언이 있다.
“무조건 세 번은 만나게 되어있다.”
아무리 별로였더라도, 돌고 돌아 언제 어디서 또 마주칠지 모르는 인연이다.
망한 소개팅이라도 분명 그 의미가 있음을 잊지 말자.
법적 리스크가 큰 회사였다.
면접 질문 또한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고, 법무팀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의 건들이 아니었다. 면접관들도 비변호사인 나보다는 라이선스가 있는 변호사를 채용하겠다고 하였고 탈락한 후 그 회사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몇 달이 지난 후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그 회사가 업무제휴 요청을 했고, 사업팀에서는 나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어디서 본 듯한 이름의 회사인데’라고 기억을 더듬어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 회사 사업의 불법적 가능성을 알고 있던 나는 제휴 검토 기안을 반려시켜 버렸다.
몇 달 후 그 회사는 그 불법적인 부분이 기사화되어 여러 이익단체의 표적이 되었고, 세무조사를 받았다.
그 면접이 아니었다면 그 회사의 깊은 부분을 알 수 없었을 테니, 그 회사와 제휴를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우리 회사도 분명 직, 간접적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망한 면접.
지금 죽인 시간.
쓸데없는 짓만 했다고 생각한 모든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큰 계획 중 하나이다. 그분의 뜻 아래 쓸데없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
언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를 뿐이다.
망한 면접이라도 감사하자.
이 또한 중요한 경험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