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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Aug 29. 2024

모든 면접은 소개팅이다.

망한 소개팅이라도 시간낭비는 아니다.


소개팅 전날을 생각해 보자.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1. 새로운 만남에 그냥 설렘
2. 새로운 만남에 그냥 걱정됨
3. 뭘 입고 나가고, 어떤 모드로 대화를 임해야 하는지 고민
4.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나올까 걱정됨
5. 상대가 나를 맘에 들지 않아할까 봐 걱정됨
6. 에프터를 받지 못할까 걱정됨


소개팅과 면접은 굉장히 많은 유사점이 있다.

일단 서로가 처음이라는 점.

그리고 서로를 알고 싶어 하는 점.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점.


걱정과 설렘이 공존한다.

면접이든 소개팅이든 약속장소로 가는 길은 떨리는 법이다.



첫인상이 반은 잡아먹는다.


외모, 복장, 말투, 표정이 절반은 결정한다.

내가 가진 이력과 스펙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내 이미지는 어떻게 조절하거나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는것이다.

긍정적 이미지를 풍기는 사람이 되도록 평소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자신감이 지나쳐 확신에 찬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프로답지는 못하다.

과유불급이라고 적당한 포커페이스에 여유 있는 웃음 포인트를 장착해 보도록 하자.



상대에게 차였을 경우에도 여러 소개팅 중 하나라는 점을 잊지 말자.


물론 이만큼 맘에 드는 회사도 없다.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세상은 넓고 남자는 아니 회사는 많다.


브랜딩을 기가 막히게 하는 회사 면접을 다녀왔다.

면접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입사하는 게 목표였다. 잡 플래닛 평점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광고 이미지도 참 좋았다. ESG 경영방식도 그렇고, 입사하게 되면 많은 새로운 도전 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면접에서의 이미지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아이가 있으신데 아이는 어떻게 하실 거죠?”
“아이에게 급하게 가줄 사람은 있나요?”
“육아휴직은 왜 쓰셨나요?” 


세상 트렌디하고 편안함을 강조하는 회사에서 “아이” 타령을 세 번이나 듣게 된 불편한 경험을 했다.

심지어 육아휴직을 왜 썼냐는게, 이게 질문인가? ( 욕이 나오지만 참는다)

그럼 너는 이 면접을 왜 보고있는거냐? 라고 묻고싶다.

사실 큰 회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민감한 질문들도 서슴지 않는 것은 중소기업에서는 흔한 일이라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지만, 저렇게 애 타령하는 기업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 없다.

차여도 그만이다. 좋은 회사는 많다.

아니 이 경우는 내가 먼저 찼다고 말하고 싶다.



망한 소개팅이더라도 시간낭비는 아니다.


괜히 여기까지 왔네. 괜히 연차를 썼네. 내 시간이 아까웠다 등등 불만은 금지다.

오늘 이 시간 이곳에 이 회사를 방문한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믿고 감사하자.

회사에서 몰래 시간차를 내고 빠져나와 면접을 가는 길에서 왜인지 모를 바람피우는 기분을 느껴보았다면,

면접이 끝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면서, 이상하게 내 오래된 회사의 내 안락한 의자가 편안히 느껴지게 되었다면,

이 면접을 계기로 지금 회사에서 조금 더 해 낼 마음이 생겼다면, 그 또한 그 면접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낸 것이다.

 


한번 면접 간 곳도 인연이다.


오늘 다녀온 회사와 다시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면 안 된다.

삼성 다닐 때의 명언이 있다.

 “무조건 세 번은 만나게 되어있다.”

아무리 별로였더라도, 돌고 돌아 언제 어디서 또 마주칠지 모르는 인연이다.

망한 소개팅이라도 분명 그 의미가 있음을 잊지 말자.


법적 리스크가 큰 회사였다.

면접 질문 또한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고, 법무팀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의 건들이 아니었다. 면접관들도 비변호사인 나보다는 라이선스가 있는 변호사를 채용하겠다고 하였고 탈락한 후 그 회사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몇 달이 지난 후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그 회사가 업무제휴 요청을 했고, 사업팀에서는 나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어디서 본 듯한 이름의 회사인데’라고 기억을 더듬어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 회사 사업의 불법적 가능성을 알고 있던 나는 제휴 검토 기안을 반려시켜 버렸다.

몇 달 후 그 회사는 그 불법적인 부분이 기사화되어 여러 이익단체의 표적이 되었고, 세무조사를 받았다.

그 면접이 아니었다면 그 회사의 깊은 부분을 알 수 없었을 테니, 그 회사와 제휴를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우리 회사도 분명 직, 간접적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망한 면접.

지금 죽인 시간.

쓸데없는 짓만 했다고 생각한 모든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큰 계획 중 하나이다. 그분의 뜻 아래 쓸데없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

언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를 뿐이다.


망한 면접이라도 감사하자.

이 또한 중요한 경험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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