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아 Aug 22. 2024

누가 "갑"인가? 면접관인가 면접자인가?

이것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내 대답은 " 면접관도 면접자도 둘 다 갑은 아니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실상 둘 다 "을"에 가깝다.




오랜만에 가게 된 면접.

면접 장소는 여의도의 한 고층 빌딩이었다.

나름 이름 있고 탄탄했던 그 회사는 소위 '핫플'이라는 여의도 더현대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다른 회사를 구경 가는 기분으로 즐겁게 면접을 나섰다.

매일 같은 길로 같은 발걸음을 해야 하는 출근길이 아닌, 낯선 곳으로의 발걸음.

그러나 합격하는 순간 이 낯선 길도 매일 다녀야 하는 익숙해져야 하는 길이다.

이 길이 오늘 한 번으로 끝나냐, 매일 반복되느냐는 1시간 뒤에 정해질 것이다.


난 언제나 면접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는 편이다.

회사 건물에 도착하고 나면 면접 보는 층으로 올라가기 전 1층 로비 화장실을 들른다.

용모도 다듬고, 잠깐 한숨을 돌리기 좋다.

볼일을 끝내면 출입증을 받고 면접 보는 층으로 향한다.

낯선 회사의 방문은 면접이 아니라, 미팅 때문이라도 자주 하는 편이라, 크게 긴장하지는 않는다.

단지 난 이 '남의 회사 건물 구경하기'에 집중한다.

대기하는 회의실은 평범했지만, 면접을 보러 들어간 회의실은 면접관 뒤 통창으로 한강의 전경이 펼쳐진다.

MBC 뉴스데스크 뒷 배경만큼이나 웅장하다.

'이런 걸로도 면접자들을 쫄게 할 수 있겠군'

온화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면접관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다.


면접은 다른 면접들보다 훨씬 수월했다.

면접관과 편하게 수다를 떨다 나온 기분.

그러나 그 '편안한 수다' 속에서 면접관과 나는 서로 얻어 내야 하는 대답을 많이도 유도했다.

1시간 안에 서로 원하는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 캐내야 하니까.


면접관은 그 기업의 경영관리팀 팀장.

원하는 포지션의 역량에 대하여 나열하고 내 경력과 대비하여 질문한다.

물론, 나도 내 경력에 대비하여 그 포지션에 맞는 부분과 더불어 특별한 업무적 경험담까지 늘어놓는다.

쓸데없게도.

사실 상대가 관심 없는 카드는 아무리 좋은 패여도 버려진 전단지만큼이나 무관심할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오늘도 난 그 패를 조금 더 강조해 본다.


면접관은 끝으로 기업의 문화와 팀 구성에 대하여 설명한다. 이제 내가 역공할 차례이다.

생각보다 기업문화가 지나치게 활발하다. EEEE가 아니면 다닐 수 없을 정도의 대학교 동아리 문화가 펼쳐질 수 있겠다.

야근에 대해 물었다.

“대부분 일찍 가요~ 야근은 거의 저 혼자 하죠. 호호”

최악의 대답이다.

이로서 난 마음을 접었다.

다행인지 뭔지 저쪽도 내 잦은 이직의 이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잘 되었다.


기왕 온 거 업무 사례를 더 나누며 웃고 떠든다.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끼리 만나 1시간 동안 떠들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회사의 같은 포지션인 사람과 비슷한 업무 고충에 대해 나누는 것은 참 좋은 경험이다.

1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는 면접관의 말에 나 또한 즐거웠다고 말한다.


면접이 끝나자 면접관은 사원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배웅까지 나와주었다.

정중히 인사 후 로비로 내려와 출입증을 반납했다.

이곳으로 왔던 길과 반대로 걸어가며, 오늘 이 발걸음은 반복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나의 가장 최근 면접 사례이다.

오랜만의 여의도였다. 7-8년 전즈음 이곳이 나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여의도를 벗어나 을지로로 가보니, 그곳이 더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을지로, 명동, 시청 부근에서 회사생활을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와본 여의도였다.

그래서인지 이곳도 많이 바뀌었다. 하긴 거의 10년의 세월이니 바뀐 것도 당연하다.

그 당시 나는 정장차림이 강제되었고, 나뿐 아니라, 여의도 다른 직장인들도 거의 같은 착장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자유로운 복장도 쉽게 눈에 띄는 거 보면 많이 달라졌다.


이 회사에 대해서는 사실 오래전부터 들어와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포지션의 적합성이나 기업문화, 회사의 건물 상태, 사람들의 태도 등은 직접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다.

기회가 되어 이렇게 가 보았지만, 결국 나와 맞는 곳은 아니었다.

아쉽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나와 맞지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여의도까지 출근하는 그 길이 복잡하고 힘들어서 각오가 서지 않았다.

예상대로 일주일 뒤 나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저 그랬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같은 포지션이 다시 공고로 오픈되었다.

누군가 붙은 사람이 그곳에 가지 않았거나, 다닌 지 한 달 안에 관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면접관의 표정이 어떨지 예상이 되었다.

해당 포지션이 빈 상태로 또다시 채용 절차를 거쳐 누군가를 채택하려면 고생 꽤나 할 것이다.

물론 다시 뽑은 그 사람이 몇 달을 다닐지도 사실 또 모르는 것이고 말이다.



결국 면접관도, 면접자도 모두 "을"이다.


누구도 "갑"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건, 서로의 태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면접관 또한 잠재적 직원인 면접자에게 갑질을 할 수 없다. 오히려 잘 보이려 절절매게 된다.  

면접자 또한 잠재적 상사인 면접관에게 내 역량이 더 뛰어나다 갑질할 수 없다. 마찬가지이다.


면접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둘 다 이기거나 둘 다 지는 게임이다.

그저 이번 게임이 서로에게 윈윈이었는지 아닌지는, 1시간 안에 결정되므로, 그 1시간 동안 서로 알아내야 할 부분을 최대한 알아내야 한다.

그 1시간이 1년을 결정하고 10년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그 누구도 갑은 아니다.

면접관에게 당신은 귀한 잠재적 직원일 수 있다.

그러니 일부러 "을"처럼 쩔쩔맬 필요는 없다.






이전 02화 나는 왜 지금 이 회사를 다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