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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Sep 05. 2024

내 자신감의 원천은 근거 있다. 근자감이 아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_빌 4:13

고등학교 시절 난 그야말로 꿈 많은 여고생이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대외 백일장도 자주 참여했다.


인하대 백일장에 써서 입상했던 시가 떠오른다.

주제는 "청소년"이었는데, 어떤 내용을 쓸까 고민하던 나는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물고기를 빗대어 청소년기를 표현해 내고자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민물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물고기 종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 거다. 하나 확실히 아는 녀석은 연어였다.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다시 강 상류로 돌아온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기억이 났던 것이다. 다만 청소년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것이 포인트여야하는데, 연어는 바다에서 다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것이 더 주된 특징이라 주제에 좀 맞지 않아보였지만, 다른 어종이 생각이 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거침없이 난 연어의 일대기를 시로 써 내려갔다. 조금은 서투르지만 바다의 꿈을 품고 사는 연어의 이야기를 쓰고 제출하기 전 연습장에 옮겨 적어왔다.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대회에서 쓴 시를 보여주려고 연습장을 꺼내 확인한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연어"라고 생각한 모든 부분을 "숭어"라고 쓴 것이었다. 머리로는 연어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고 하고 실제로 제출한 것은 숭어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내가 숭어에 대해 알고 있던 지식은 이름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연어 대신 숭어라고 적었는지 미스터리였다.

모처럼 시가 술술 잘 써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이런 중요한 부분을 틀리게 썼다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재빨리 숭어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숭어(영어: flathead grey mullet)는 숭어과의 민물고기이다. 하지만 바닷물에서도 살 수 있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바다에 내려간다.  연안이나 강의 하구에서 무리를 이루며 생활한다. 어린 물고기는 바닷물과 민물이 서로 섞이는 곳이나 담수역에 살다가 몸길이 25cm 내외가 되면 바다로 내려간다.
- 네이버 위키백과 참조-

어린 물고기는 바닷물과 민물이 서로 섞이는 곳에 살다가 크면 바다로 내려간다니.

이보다 더 청소년기를 잘 비유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숭어는 오히려 바다에서 민물로 다시 돌아오는 연어보다 더 청소년기를 비유하기 좋은 소재의 물고기였다. 내가 청소년기에 대하여 비유하고 싶은 정확한 물고기종이였던 것이다.


난 왜 연어를 쓴다는 것을 숭어라고 썼을까.

분명 내 손으로 썼지만, 그건 하나님이 하셨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며칠 뒤 난 그 백일장에 장려상으로 입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입상은 인하대 문창과로 특별수시입학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입시시험은 백일장과 동일하게 창작 시를 쓰는 것이었고, 수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던 백일장과 달리 수상자만 치를 수 있는 시험이라 열댓 명이 전부였다.  

그 수시입학시험을 치르기 전, 엄마는 홈쇼핑에서 보고 내 생각이 나 샀다며 참깨 다이아몬드가 콕콕 박힌 네 잎클로버 목걸이를 내게 선물하셨다.

"지아야 난 네가 그냥 너무 잘될 것 같아. 앞으로 그냥 다 잘될 것 같아. 그래서 주는 선물이야."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려서인가, 수시 입학시험에서 난 형편없는 글을 썼고, 당연히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후 가, 나, 다군 모두 국문과를 지원한 정시모집에서도 전부 떨어져 4년제 진학에 실패했다.  

반에서 3등이었던 나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원하지 않는 2년제 전문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졸업 후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 이른 사회생활이 내게 도전을 하고자 하는 에너지를 주어, 퇴사 후 법대로 편입을 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난 내 적성인 법무를 찾았다.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닌, 돌고 돌아서 말이다.


고등학교 때 내 책상 상단에 매직으로 크게 적어두었던 성경구절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내 휴대폰 뒷번호로 지금까지도 쓰고 있는 이 말씀은 내 인생의 좌우명이자 내 자신감의 원천이다.

연어를 숭어로 바꾸어 표기했던 내 손길도

인하대 문창과 수시를 떨어지게 했던 그 형편없던 시도

4년제의 모든 국문과를 떨어지게 했던 정시지원도

적성에 맞지 않던 삼성에 입사하게 했던 것도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정말 원하는 길로 인도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였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조차 하나님께서는 그 방향으로 날 인도해 주신 것이다.

사람의 머리로는 실패라 생각한 모든 일들은 그 섭리를 보여 주시기 위한 필요한 과정이었다.

"난 그냥 네가 잘 될 것 같아."

나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벅차오르던 엄마의 그날 표정을 기억한다.

학교에서 돌아와 신발도 채 벗지 못한 상태로 현관에 서서 받았던 그 목걸이.

그때 엄마가 목에 걸어주셨던 그 네잎클로버 목걸이는 지금도 나에겐 그런 의미이다.

결코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게 아니다.

이미 그 한참 전부터, 아니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내 모든 길을 이끌고 계셨기에.


원하지 않았던 대학에서도

힘들게 출근하던 회사에서도.

그 모든 정체된 듯 보이는 시기에도 내가 항상 희망차있던 이유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가 내 모든 일을 계획하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내가 항상 자신감에 넘치게 면접에 임했던 이유는 내 든든한 빽 때문이다.

아무 걱정 할 필요가 없다.

연어를 숭어로 고쳐주신 작은 기적들은 아직도 내 삶에서 계속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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