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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Sep 12. 2024

무조건 버티다가 내 삶도 버터처럼 녹아 사라져 버린다

그만 둘 결심! 그만 둘 용기!

내 첫 직장 삼성 동기들은 거의 6-70% 그대로 근속하고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동기가 벌써 15년 차로 접어들었다고 했을 때, 나는 “ 와 진짜 대단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물론 그 동기는 그 일이 정말 잘 맞기도 했고, 삼성 내에서 결혼상대까지 만나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에서, 업무까지 적성에 맞는 것도 복인데, 남편까지 얻었다니! 이건 정말 축하할 일이고, 부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한 곳에만 있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 같아.”

물론 그 말도 맞긴 하지만, 좋은 우물 안에 만족하며 사는 개구리에게 다른 우물의 궁금함 정도는 책이나 나 같은 친구의 삶을 통해 간접 경험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단지 행복한 투정이자, 이직이 잦은 나에 대한 배려로 한 말일 것이다.   



문제는 표정 없이 그냥 버티는 사람들이다.


사람 좋은 총무팀 차장님이 떠오른다.

두 아이의 좋은 아빠였던 그분은, 5월 21일 부부의 날을 챙길 정도로 애처가셨고, 가정적이셨다.

그 답답한 회사에서 무려 20년을 버틴 그분은 정말 한결같이 회사 욕을 하셨다. 상대가 신입이든 인턴이든, 다른 곳에서 이직 온 사람이 있다면 전에 있던 회사의 시스템에 대하여 묻고는 이 회사의 낡아빠진 시스템에 대하여 불만을 늘어놓으셨다.

말투는 언제나 투덜 투덜이셨고, 언제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계셨다.

성격 좋고 정이 많은 스타일이셨던 그분은 타 팀에서 도움을 청하면 친절하게 도와주시다가도, 조금만 친해지면 무조건 회사 욕으로 모든 대화가 끝이 났다.

한 번은 너무 궁금해서 차장님은 이직 생각이 없냐고 물었는데, 갈 곳이 없고 나이 때문에 써도 떨어질 것 같아서 이력서조차 내지 않는다고 하셨다. 다만, 꿈이 있다면 가족들이 다 같이 이민을 가서 다른 나라에서 새 출발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난 막연해 보이지만 그래도 그 꿈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차장님이 정말 행복해지기를 바랐지만, 그분은 끝내 도전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몇 년을 더 투덜대며 버텼고, 회사에서는 그분을 정리해고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그 회사에서 나온 후 베트남으로 온 가족이 이민을 가서 정말로 새 출발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차장님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경우는 타의적으로라도 움직이긴 했지만, 정말 끝내 도전하지 못하고 표정 없이 살아가는 동료들의 얼굴이 한두 명씩은 모두 떠오를 것이다.



나쁜 방법으로 버티는 사람도 있다.


- 회사가 날 이런 사람으로 만든 거지,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니야
- 아니~ 넌 원래 그런 사람이 맞아!

내가 다녔던 최악의 회사에서 만난 인사팀장님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분은 언제나 웃는 얼굴 가면을 쓰고 직원들을 대한다. 그 회사가 첫 직장이자 20년 차 근속이었던 그분은 사람 좋은 언니처럼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고는, 자연스레 수다를 유도한다. 주말에 뭐 했냐는 시시콜콜한 수다 속에 진심은 전혀 없다. 회사에 대한 약간의 건의나 불만 같은 것도 그분에게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 곧바로 소문이 퍼지고, 상대를 매장시킨다.

언듯 보면 실세처럼 보이지만, 그분은 그저 인사팀장 연기 중인 능력 없는 아줌마에 불과했다.

인사팀 직원들은 계속해서 바뀌었고, 그들이 퇴사하며 하나같이 했던 이야기는 그 능력 없는 팀장이 회사에 끼치는 나쁜 영향력 때문이라고 했다.

인사업무 경력이 전혀 없던 일반 데스크 직원이었던 그분은 여러 회사의 합병 이슈에도 살아남아 해 본 적 없는 인사 업무를 익혀 팀장까지 올랐다.

자수성가한 듯 보이지만, 그 승진에는 단순 야근, 보여주기식 아부, 남을 깔아 내리고 밟고 올라가는 근성들이 뒷받침되었다.

그분에게는 초등학생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침 일찍 나가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에 평일에는 엄마 얼굴도 못 보았을 그 아이가 괜히 불쌍했다.

인사팀장님은 도대체 왜 저러고 사시냐는 질문에 내 팀장님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갈 데가 없으니 있는 거지. 경력도 여기뿐이고 마흔 넘은 기혼녀가 이직하는 건 쉽지 않아”

자신이 가진 업무적 능력, 자신만의 카드가 없다면, 이렇게 갖은 수단을 써서 버텨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다소 비겁하고 남을 밟아 뭉개는 일이더라도

심지어 자신의 개인의 삶조차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 옳지 못한 방법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사람

- 그런 사람을 인정하는 회사


둘 다 최악이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그냥 버텨서 얻는 것은 돈뿐이다.


그냥 버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갈 곳이 없다

그리고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다른 곳으로 이직할 능력이 없다.

마지막으로 팩트폭격을 한다면

도전을 할 용기가 없다.

이다.


에픽하이 _ 빈차(Feat. 오혁)
내가 해야 할 일, 벌어야 할 돈 말고도 뭐가 있었는데.
내가 가야 할 길, 나에게도 꿈같은 게 뭐가 있었는데.


이 가사 두줄로 요약된 메시지.

보람 없이 그저 버티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면,

제발 용기를 내자.


용기 내어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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