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거듭해 지나가고, 나보다 작았던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나보다 훨씬 커졌다. 키뿐만이 아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들은 이제 더 큰 세상을 나가기 위한 준비가 끝나간다. 이런 시기가 안 올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오지 않길 바랐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아쉬운 마음과 적적한 마음은 숨기려야 숨겨지지 않는다. 유독 아이들이 많이 나가는 시기엔 퇴근 후 씻고 앉아 술 한 잔을 하며 생각에 잠긴다. 어쩔 수 없는 시기란 걸 알면서도 내가 그간 못 해줬던 것들만 떠올라 후회가 되기도 하고, 머물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남는다는 게 외롭기도 하다.
나는 이곳에 머무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던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나아가는 사람이 이곳에 나와 머물기 바라는 건 머무는 사람의 욕심이라는 걸 잘 알지만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건 천지 차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떠나가는 아이들에게 "그만뒀다고 무시하지 마라!!"라고 평소처럼 웃으며 얘기하지만 내심 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남이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직접 와서 얼굴 보며 그동안 재밌었다며 그만두는 게 아쉽다고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저 문자 한 통으로 이별을 고하는 상황도 생각보다 많았다. 그만두고 나서도 종종 지나가며 만나면 밝게 인사를 해주는 아이들보다는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도망가거나, 돌아가거나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sns 팔로우를 끊는 것도 뭐 한두 번이 아니다.
10년, 이 한자리에서만 10년이다. 20대였던 나는 30대가 됐고,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됐다. 아이들이 자라가는 걸 보는 건 정말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때론 아이들에게 친구이기도 때로는 부모이기도 했다. 친구처럼 놀고, 부모님처럼 잔소리하며 10년을 지내온 아이들이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며 이별을 고한다. 익숙해질 만도 한 이별에 나는 늘 마음 한구석이 쓰리다. 다 커서 집을 나서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싶다가도 부모는 보고 싶다, 보러 와라 연락이라도 할 수 있고, 이러니저러니 평생 보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쉽사리 보고 싶다는 마음도 보러 오라는 투정도 하기 애매한 이도 저도 아닌 위치에 있다는 사실에 괜히 울컥하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술도 어찌나 단지, 쉬지 않고 술술 들어간다. 그리고 술술 들어간 술은 괜히 추억을 뒤적거리게 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찍은 사진, 주고받은 메시지를 뒤적이다 보면 떠나갔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닿곤 한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와 연을 쌓은 아이들은 정말 많다. 그중엔 내가 이름도 잘 기억 못 하는 아이도 있고, 나는 기억하지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반대로 언제 어디서 봐도 떠오르는 아이들도 있고, 나를 기억해 줬으면 하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도 가끔 차량 운행을 하다가 마주치면 "저 기억하세요 사범님??!!"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릴 적 얼굴이 그대로 있지만 나보다 훨씬 커진 키와 어릴 때와는 다르게 두꺼운 목소리를 하고 있기도 하고, 어느새 화장까지 하고 다니는 아이들에게 낯선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끔 기억도 안 나는데 "알지 알지~ 학교 잘 다니지? 학원으로 놀러 와! 공부 열심히 하고!!"라고 지나가며 이름이 뭐였는지 한참 머릿속을 뒤지기도 한다. 아는척해 줄 때 이름이라도 불러주면 더 좋아할 텐데, 영 쉽지 않다. 떠나가는 아이들에게 아쉬움을 느끼면서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모순적인 선생님이 된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찾아와주는 아이,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잊지 않고 찾아와 이러쿵저러쿵 한참 이야기하다 가는 아이, 왜 요즘은 안 놀아주냐며 투덜거리는 아이 모두 나를 잊지 않음에 늘 감사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나와 함께 추억을 만들어가고 성장해가는 아이들에게도 나와 그런 시간을 보낸 아이들에게도 나는 어떤 어른으로 남을까?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될까? 그저 한철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큰 쉼터가 되고 싶었다. 그저 그런 사람으로 아이들에게 기억되길 바란다.
나는 이곳에 머무는 사람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너희가 힘들 때면 언제든 찾아와 기대 쉴 수 있는 그런 쉼터처럼 나는 이곳에 머문다. 부담 없이 찾아와주길, 너희가 잘 하든, 못 하든 그저 언제든 따뜻하게 안아주고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쉼터가 될 테니 그저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