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0 동아일보 당선작 해가 지기 전에 / 서장원 리뷰
한 줄 정리
기선과 남편이 아들을 보러 가는 이야기.
인물 소개
아들은 정신과의사이고 남편은 수의사다.
기선은 어느덧 나이듦을 실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남편을 통해, 다른 늙은이를 통해.
좋았던 장면들 정리
1.
차라리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소변을 참겠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게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 사이 기선은 빠르게 늙었다. 이제 기선은 예순여섯이었고 볼일을 조금만 참아도 요로에 통증을 느꼈다.
-> 세 문장으로 단편소설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몇 년 사이에 기선은 빠르게 늙었고,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빠르게 캐릭터에 이입하게 해주었다.
2.
아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기선은 바다 냄새를 맡으려 차창을 내렸을 것이다. 남편에게 음악을 좀 틀어 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들의 입원 수속에 동행하던 날에도, 한 달 전 아들을 면회하러 가던 때에도 기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은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에는 면회가 아니었다. 노부부는 아들을 외출시키기 위해 병원에 가는 중이었다. 외출이라니, 아들은 대체 그곳에 얼마나 더 있으려는 것일까. 처음에 아들은 한 달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 생활을 정리하고 제 병원을 차리기 전 잠깐 휴식이 필요하다며 한 달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 기선은 너무나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잠시 시야가 어두워졌다.
-> 남편과 아들을 보러가는 기선은 간만에 드라이브는 좋았지만 아들을 생각한다. 아들의 정신병원 입원의 충격으로 시작하는동안, 기선이 생각하는 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3.
한때는 남편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수의사였고, 기선과 결혼할 무렵에는 시골 동네에서 소나 돼지 같은 커다란 가축을 진료했다. 그녀는 가끔 남편의 일터에 따라가서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피범벅이 된 채로 암소의 엉덩이에서 송아지를 빼내던 남편의 모습을 그녀는 또렷이 기억했다. 양팔로 송아지를 잡아당기던 자세, 탄탄한 팔 근육과 긴장으로 찌푸려진 미간을 눈꺼풀 안쪽에 그려볼 수 있었다. 그때 그는 젊었고, 건강했고, 똑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방금 전에 그는 앉아서 오줌을 눴다. 지금은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을 다룰 줄 몰라 끙끙대고 있다.
-> 한때는 남편도 그런 사람이었다.는 단편소설에서 효과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젊었을 때 유능한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4.
“그냥 가볼까.”
남편이 말했다.
“갈 수 있겠어?”
“그럼 어째?”
-> 짧은 대사가 주는 자연스러운 노부부의 장면연출이 효과적이었다. 아들의 외출을 위해 평소 몰았던 남편의 차가 아닌 아들의 차로 가고 있기 때문에 남편 역시 차가 낯설기 때문이다.
5.
“저기로 가서 길을 한번 물어보자. 커피도 마시고.”
->남편의 대사가 이어지면서, 기선뿐만 아니라 남편 역시 이 소설의 중요한 캐릭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전까지 길을 몰라 헤메고 있었는데 이제는 남편의 방향대로 소설이 이어질 것과 카페에서 일어날 일을 암시하고 있다.
6.
정신병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 단어를 빼고 거기까지 가는 길을 묻는 것은 불가능할 터였다.
“길을 좀 여쭤봤으면 하는데요.”
남편은 말했다.
“어느 쪽으로 가시는데요?”
여자는 여전히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기선은 남편의 오른팔을 잠시 잡았다가 풀었다. 남편의 팔은 마르고 탄력이라고는 없어서 공중에 매달린 막대기 같았다.
“이 근처 정신병원에요.”
-> 여전히 기선은 정신병원이라는 단어를 거부한다. 이것은 독자에게도 중요한 지점일 듯 하다.
7.
“우리 아들은 의사예요.”
->이 말로 인해, 기선의 방어기제를 잘 보여주었다.
8.
그러나 그날, 그녀가 환자복을 입은 아들의 옆에 앉아서 떠올렸던 것은 아들의 그런 믿음직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때 기선은 아들에게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사주었던 날을 회상했다. 그날도 아들은 같은 말을 했다.
-> 기선이 생각하는 아들의 모습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이지만, 환자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장면으로 소설은 계속해서 기선의 시선으로 아들을 그려나간다.
9.
“아까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
병원 이야기가 나오자 기선은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방문하기로 미리 정해둔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왜? 뭐래?”
“우리 돌아가야 해.”
남편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정이 있다고 오지 말라는군.”
->아들은 방문을 거부한다. 남편은 담담히 받아들이겠지만, 이 순간 기선은 어떤 마음이 들지, 독자에게 상상을 맡겼다. 소설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10.
기선은 차창을 반쯤 내린 채 공중에서 반짝이는 빛을 유심히 봤다. 빛의 가루 같은 것이 흩날리고 있었다. 물고기의 비늘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잠시 뒤 기선은 그것이 불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주 잠깐 동안 빛의 부스러기가 공중에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며 회색 연기가 감돌았다. 누군가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낮에 불꽃놀이를 하는구먼.”
남편이 눈을 가늘게 뜬 채 해변 쪽을 흘끗거리며 중얼거렸다. 차는 금세 그곳을 지나쳐 갔지만, 기선은 그 이상한 풍경에 대해 골똘해졌다.
‘어째서?’
->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대낮에 불꽃놀이를 함으로써, 보이지도 않을 불꽃놀이에 기선은 어째서? 라는 생각을 한다.
이 부분에서 제목인 해가 지기 전에를 생각하게 만든다.
해가 지기 전에, 보이지도 않는 불꽃놀이를 한다.
기선은 보이지 않는 아들을 떠올린다.
볼 수 없는 불꽃놀이와
볼 수 없는 아들
11.
기선은 일몰을 기다리지 못하고 폭죽에 불을 붙이는 누군가를 잠시 동안 상상해 봤다. 심지의 끝에 불붙은 성냥을 가져다 대는 손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뒷모습을. 그리고 빛보다 더 오래 허공을 차지하고 있는 연기를. 차가 어느새 해변 도로를 완전히 지나쳐, 더 이상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 불꽃은 보이지 않더라도 연기는 오래 남을 것이다. 이제는 보이지 않을 바다가 기선이 생각하는 정신병원, 그리고 아들을 오래도록 남길 것 같았다.
*
전체적으로 안정적이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부부간의 대사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고, 기선이 느낄 현재의 당혹스러움, 과거의 자랑스러움과 미래의 불안함을 가벼운 커피맛, 정신병원을 묻는 일, 한 낮의 불꽃놀이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신춘문예 작품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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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리틀프라이드 작품을 소설보다와 이효석문학상에 발표했다. 이 작품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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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