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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Feb 17. 2024

마흔의 이상형

나 운동선수 좋아했네?

살면서 이렇다 할 이상형은 없었던 것 같다. 어차피 이상형은 '이상'일뿐 현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형이 생겼다. 운동선수!!


이상하다. 살면서 운동선수 좋아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대학농구에서 우지원 선수와 현주엽 선수가 인기일 때도, 2002 월드컵때도 좋아해본 적 없는데! 평소 운동경기 중계라고는 큰 경기 겨우 보는 정도인데! 뜬금없이 운동선수들이 멋있어 보인다. 나이 마흔에 벌써 노망인가.


Image by Anna from Pixabay


때는 카타르 아시안컵 경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큰 아이가 좋아해서 늦은 시간임에도 경기들을 챙겨봤는데 연장전까지 이어지는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 후반전 추가 시간에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골을 넣는 모습, 승부차기에서도 꿇리지 않고 모두 골을 넣는 모습.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특히 손흥민 선수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황희찬 선수가 자진해서 골인시키는 장면과 손흥민 선수의 프리킥은 유독 기억에 남는데 그 부담스러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대담함과 투지에 입이 떡 벌어졌다. 빛현우라 불리는 조현우 선수는 또 어떻고!! 물론 그들의 어마무시한 근육들도 멋의 일부를 차지했지만.


"어머. 쟤네 뭐야? 정말 멋있잖아~~!!"


옆의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진짜 너무너무 대단하고 멋지다~"


절로 감탄했다. 선수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웬만한 자신감 아니고서는 그렇게 하지 못할 텐데, 그 자신감을 가질 정도면 대체 얼만큼의 땀을 흘렸을까. 어떤 것들을 참고 견뎌냈을까. 내 아들이나 막냇동생 뻘의 선수들을 보며 대견하고 기특했다.


며칠 후 늦은 시간 동네 운동장에서 축구 클럽 유니폼을 입은 채 줄넘기를 하고 공을 차는 아이 몇을 보는데 그 모습도 굉장히 기특하고 멋있어 보였다. 또래의 어떤 아이들은 드러누워 TV를 보거나 게임을 할 시간이 아니던가.


그날부터 내 이상형은 운동선수가 됐다.


Image by Gordon Johnson from Pixabay


남편한테 뜬금없이 물었다.


"요즘 운동선수들 너무 멋지더라. 당신도 운동 열심히 하면 선수들처럼 근육 땅땅해지고 그렇게 될 수 있어~?"


"근육? 안 되지! 그냥 운동만 해서는 안 될걸~. 다 약 먹으면서 키우는 거야. 있던 근육도 빠지는 나이에 무슨 근육 타령이야."


"예~ 예~~(그러시겠지요~~)"


당연히, 내가 선수들을 찾아가 의남매를 맺을 확률이나 남편이 선수들처럼  확률이 일치하겠지.


아쉬운 대로 취미로 농구를 다니는 아들을 붙잡고 말했다.


"1호야. 엄마 요즘 손흥민이랑 황희찬이랑 또 누구누구가 되게 멋있더라. 아빠는 운동해도 그렇게는 안 된다는데 너는 어떠니?"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해볼까! 난 아직 어리니까."


아이는 거들먹거리며 실내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돌렸다. 10분도 넘기지 못한 1회성 투지였다.

 

역시 이상형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일뿐이구나.




사실 선수들의 모습은 타인이 아닌 나를 통해 이루고픈 이상적인 모습이다. 지금 내가 가장 갈구하는 이상형.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 노력과 실력에 대한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것. 내가 살아보지 못했지만 항상 추구하는 바로 그 방향이다. 그것들을 경험하고 이뤄낸 운동선수들을 보면 그래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사십 대의 나는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한 것도,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도 몹시 아쉽다. 그럼 뭐하나 '15년만 어렸어도 운동선수 좀 만나보는 건데~(누가 만나주지도 않겠지만).'라는 우스갯 소리나 늘어놓을 수밖에.


에잇.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설거지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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