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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Feb 10. 2024

제사를 물려주신다고요?

정중히 거절합니다

"아이고, 애미야. 너 나 없으면 (제사) 혼자 힘들어서 어쩌니?"

부쩍 기력이 달리는 시엄니는 외며느리인 나를 보며 또 걱정이 한가득이시다. 매 제사 때마다 혼자 할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데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난 심드렁하게 답한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이렇게 같이 할 것 같아요."

"나 죽어도 네가 혼자 할 수 있겠지?"


"제가 혼자 어떻게 해요!! 전 못해요. 어머님 계셔야 하죠~."

그러고선 같이 너털웃음을 웃어넘긴다.



시어머니는 몸이 편치 않으시다. 당뇨에 허리도 편찮으시고 혈압까지. 그래서 제사 음식 준비를 하면서도 쉽게 기운이 빠져 수시로 쉬어야 한다. 그런 몸으로 미리 장을 보고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니 내 맘도 편치 않다. 그렇다고 내가 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라고 힘들지 않은 게 아니니까.

돌아가신 분들이 와서 음식을 직접 드시는지 어쩌는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인데 불편한 몸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제사고 차례고, 대체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 걸까. 어차피 결국 내 마음 편하자고 지내는 것 아니던가.


시부모님은 '조상덕'을 강조하시는데 진짜 조상덕 보는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 다닌다고 하지 않나. 매해 기제사 4번에 명절 2번까지 상다리 부러지게 정성 들여 차리는데 그 덕은 대체 언제 볼 수 있단 말인가.


조상님의 마음이 부모와 같을 텐데 후손들이 그렇게 고생해서 차리는 상을 받아야만 '그래. 너희가 아직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구나. 기특하니 내가 잘 돌봐주겠다.'라거나 '이번엔 전이 빠졌으니 30% 빼고 돌봐주겠다'며 조건을 내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마음 써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않겠는가. 게다가 명절 이후에 높아지는 이혼율과 가족 간 불화를 생각해 보면, 조상님들이 원하는 것이 진정 이런 것은 아닐 텐데,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서 비롯되지 않을 것이다. 조상을 잊지 않고 추억하는 것이 제사나 명절을 맞이하는 진정한 마음이라고 믿는다.  '아이고아이고' 앓는 소리를 하고, 허리를 두드려 가며 가득 채우는 상이 대체 뭣이 그리 중한지, 결혼 전과 그 이후 지금까지 평생에 걸쳐 제사를 지내며 고민한다.

평소 잘 만나지 못하는 가족이 모여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며 맛있는 식사 한 끼 하는 것, 그것이 제사나 명절의 참의미이지 않을까.




다행히 작년부터 전의 일부를 사고 있다. 두어 달 전 제사 때는 전 부치기를 원하셔서 그리 했더니 손가락이 퉁퉁 부어서 한동안 약을 먹어야 했다. 이번 설에는 다른 전은 사고 녹두 부침만 하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엄청 손이 많이 갔다.

'와. 녹두부침개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그전에 전 다 어떻게 했었지?'

명절 전 날 하루 종일 음식을 하고 마무리하는 저녁, "아이고 애미야. 나 다리가 너무 후달려서 좀 앉아야겠다. 너도 좀 쉬었다 하자."시는 시어머니를 보며 '어머님은 30~40년 동안 얼마나 고되셨을까' 싶은 것이 순간 시어머니의 일생이 몹시도 애틋해졌다. 같은 여자로서 그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아니까.


"아버님은 진짜 어머님한테 잘하셔야 해!!"


남편을 붙잡고 제사든 명절이든 여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뻔한 이야기를 또 줄줄이 늘어놨다.



이번 명절에도

"나 죽으면 네가 혼자 할 수 있지?"라고 물으시는 시어머니께 단호히 말씀드렸다.


"못하죠, 어머님~~!!"


죄송하지만 나도 살아야겠다. 내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할 순 없다. 



흔히 제사를 '물려준다'라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물려주다'의 사전적 의미는 '재물이나 지위 또는 기예나 학술 따위를 전하여 주다'인데 제사가 그에 해당되는 것인지 의문인 것이다. 제사를 지내는 게 무슨 부귀영화도 아니고, 엄청난 지위는 아니지 않나. 오히려 돈 쓰고 몸 쓰고 마음까지... 쓰는 것만 많을 뿐인데 이게 뭐 대단하다고 굳이 물려받기까지 해야 하냔 말이다. 오히려 '부탁하다'나 '건네다'라는 표현이  더 알맞은 게 아닐까.


시부모님과 남편은 어쩌면 우리가 제사를 물려받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연스레 '물려'주시려 하겠지만 간곡히 '부탁'을 하셔도 난, 확답할 수 없다. 혹시라도 언젠가 내가 제사를 건네받거나 부탁을 수용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같이는 안 될 것 같다. 성균관에서 새로 발표한 그 정도라면 또 몰라도. 조상님들도 살아있는 자손들의 건강을 더 바라시지 않을까.


당장 이번 달 말에 또 제사가 있다. 벌써부터 소화가 안 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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