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니슨 Mar 02. 2024

여보, 오늘 밤에 좀 나갔다 올게요

밤마실 나가는 발걸음

갑작스레, 밤에, 혼자, 잠깐, 집을 나서는 날이면 낯선 밤의 냄새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밤에도 세상은 돌고 있구나. 돌고 있었구나, 싶어서.

두 아이와 씨름하며 성을 내다가 다 잠든 후에 혼자 소주를 들이켜며 후회하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그 순간에도 세상은 화려하고 활기차게 돌고 있구나, 싶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뒷걸음질 치는 동안에도 그것들은 자유로이 흐르고 있구나, 싶어서.


Image by Keneeko from Pixabay


쿰쿰한 밤의 향기를 좋아했다. 화려한 밤의 색을 좋아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웃으며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 세상을 향한 소속감도 그 안에 있었다.


두 아이의 주양육자로 살며, 전업주부가 된 이후로 이전의 밤은 불가침의 세계 같다. 남편이 매일  늦으니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주말에는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니 혼자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꺼내기도 미안하다. 남편과 아이들 모두에게. 그러니 결국 창문밖으로 멀찌감치 밤의 안부만을 물을 수밖에.


어떤 날엔가 밤에 급하게 집 앞 슈퍼에 나가는 길이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여전히 환히 불을 밝힌 상점들에도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고. 분명 밤을 좋아했던 나인데 그날의 밤은 낯설었다. 마치 밤의 불청객이라도 되는 양 섞이지 못하는 나를 느끼며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지나치는 영화나 드라마의 어떤 장면처럼 홀로 우뚝 서있었다. 그러다 터덜터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


나가고 싶다!

나가고 싶다!

밤에 혼자 나가고 싶다!



Image by Juuud28 from Pixabay


"여보~ 나 밤에 너무너무 나가고 싶어. 술집에도 가고 싶고 노래방에도 가고 싶어. 어른끼리만 갈 수 있는 곳이 가고 싶어~!!"


어쩌다 남편의 협조로 밤에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 있다. 누구의 손도 붙잡지 않은 채 홀로 집을 나서며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다시 세상에 소속되는 기분,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내가 되는 기분, 열심히 잘 해내고 있고 또 인정받는 기분. 전업주부에게 해방감이란 그런 것이다. 온 마음이 설레서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사뿐린다.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와~!"라며 남편이 오만 원짜리 지폐를 쥐여줄 때는 어찌나 감동을 하는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덕분에 다시 만난 밤의 향기는 더 달콤하고, 그 밤의 색은 유난히 반짝인다. 어차피 체력이 달려서 늦게까지 놀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서너 시간. 그것만으로도  또 한 시절 엄마와 아내로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두 달의 겨울방학을 잘 버텨냈으니 다시 또 밤마실을 해야 할 것 같은 시기다.





이전 04화 연봉 1억 원의 여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