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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Apr 14. 2024

아빠의 첫 해외여행

인생은 칠십부터

1953년 생인 아빠는 한국전쟁으로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울 때 태어나 1960년 대 보릿고개를 거쳐 1970년 대 급격한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일꾼이자 한 집안의 아들로서 집안의 가계와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가정을 꾸린 후로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먹고사는 크나큰 책임을 짊어진 채 IMF의 직격타를 맞았으며 택시운전, 호텔 청소, 지하철 청소, 건물 경비 등 밤낮이 바뀌고 쉬는 날도 정확하지 않은 고된 일을 해 왔다. 여전히 '쉬어서 뭐 하냐. 불러주는 데 있으면 가는 거지.'라며 호텔 청소 용역으로 일하신다.


그런 아빠는 쉬는 날 어디라도 놀라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쉬는 것은 그냥 '쉬는 것'이었다. 집에서 이것저것 하면서 그저 쉬는 것. 몸 쓰는 일을 하니 쉬는 날에는 몸 자체를 쉬게 하고픈 아빠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근처 공원 산책이라도 다녀오자고 하면 '귀찮으니 다녀들 와~'라는 아빠가 답답한 것도 사실이었다.


당연히 아빠에게 여행은 사치였다. 여행은 몸을 쉴 수 없으니까. 평생을 '성실'의 표본처럼 살아온 것도 여행을 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청소 일의 특성상 보통의 휴일에도 일을 해야 하기에 가족과 시간을 맞춰 여행을 가려면 누군가의 쉬는 날과 자신의 쉬는 날을 바꾸거나 자신의 휴가를 위해 다른 이가 쉬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여행에 재미가 있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런 아빠가 달라졌다. 지난해 아빠와 엄마의 칠순 기념으로 가족들과 사이판 여행을 다녀온 이후 여행의 의미를 찾은 것이다.


Image by digital designer from Pixabay


여행 일정 중 오전에는 유명 관광지를 찾아 풍경을 살피고 그곳의 유래를 알아보곤 했는데 아빠가 가장 좋아했다. 각 명소를 소개하는 게시판을 시험 문제처럼 정독하고, 아름다운 경치에 한참을 빠져있곤 했다. 물놀이를 할 때는 젊은 나보다 좋은 체력으로 지치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런 아빠를 보며 가족 모두는 "이렇게 제일 좋아하는데 안 오면 어쩔 뻔했어~!"라며 웃었다.


사이판 여행에서 돌아온 후 부모님과 같이 사는 (미혼의)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아빠가 여행에 재미가 들렸다고. 며칠 지나지 않아 차가 없는 아빠가 대중교통으로 서울에서 천안 독립기념관까지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거기서 나오는데 차가 다 끊긴 거야. 한참을 걸어  나왔지..."


고생 고생 그런 고생이 없었을 텐데도 아빠는 웃으며 그날을 추억했다. 나이 칠십에서야 비로소 여행의 재미를 찾은 아빠를 보고 있자니 뿌듯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아빠. 진작에 이렇게 좀 다녔으면 좋았잖아~. 이제라도 엄마랑 둘이 좀 많이 다녀요~~"


몇 주 전, 아빠는 엄마와 둘이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패키지여행이긴 했지만 두 분이 해외는 처음이라 나와 오빠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기우였다.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잘 즐기고 온 것이다.


매일 밤 카톡으로 수십 장의 사진과 동영상이 도착했다. 뻣뻣하지만 웃고 있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들이 모두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셨을 텐데 더 늦기 전에 삶을 즐기면 좋겠다고. 이제라도 그렇게 돼서 다행이라고.


현 40대의 부모 세대는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건너왔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살게 된 건 그들의 노동력 덕분이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가족들을 위해 몸 바쳐 일해 온 부모 세대는 모두가 영웅 칭호를 받아 마땅하다. 그 영웅들이 이제라도 본인들의 삶을 즐기며 살면 좋겠다.

Image by digital designer from Pixabay


오빠와 매달 일정 금액을 모아 또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시부모님과의 해외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더 자주, 더 많이 함께 여행할 수 있길, 기도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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