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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Apr 06. 2024

어머님, 이번 주는 저희끼리 보낼게요

나쁜 인간이라 할지라도

따르르릉.

또다. 주말 아침, 또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어머님'.


"오늘 뭐 하니~?"

"저, 어머님. 오늘은 저희끼리 보낼게요."


내 말에 어머님은 혈압이 올라 쓰러지셨다.


다행히 이건, 끔찍한 꿈이었다.


Image by OpenClipart-Vectors from Pixabay


일 아침마다 시부모님의 연락을 받는 것은, 죄송하지만 너무 힘들었다. 평일에도 수시로 통화를 하는 사이인데 휴일에는 휴일이니 으레 전화가 오는 것이다. 때로는 나에게, 때로는 아이들에게, 또 때로는 남편에게.


시부모님의 연락은 주로 별일 없으면 '밥 먹자', '근처 공원에 가자'며 만나자는 것인데, 휴일에야 겨우 4인 완전체가 되는 우리 가족에겐 별다른 것 안 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롯이 우리끼리 보내는 날도 필요했다. 하지만 만나자는 연락을 거절할 구실, 그러니까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열 번 중 여덟아홉 번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짧든 길든.


물론 시부모님이 며느리를 부려먹지는 않으신다. 그렇대도 나로서는 마냥 편할 수만은 없는 관계지 않나. 우리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신 이후로는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편이다. 한 시간 거리에 사시던 그전에도 자주(평균 월 3회, 더 전에는 주 2~3회) 만남을 가졌다. 내 딴에는 부족하지 않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매주 아침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감당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이번 주말에는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나.. 주말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시부모님이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안다. 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감사해야 하는 게 마땅한데! 이런 내가 못된 인간인 것 같아 자책을 하기도 했다. 내가 자책을 해야 하는 상황도 싫었다.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친정 부모님과는 서로 '무소식이 희소식' 식의 마인드를 일정 부분 갖고 산다. 연락도 2주에 한 번 정도 하려나. 당연히 만나는 것도 뜨문뜨문이다. (내 생각에)'관심이 매우 많아서 자주 연락하고 보고 싶어' 하시는 시가와 '너네끼리 잘 지내되 한 번씩은 얼굴 보며 살자'는 친정. 너무 다른 분위기는 10년이 지나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만나고 헤어질 때 인사로 "다음 주에 보자"라고 하실 땐 "또?"와 "나쁜 인간" 사이를 오가느라 일주일 내내 마음이 소란하다.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게 꿈에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어머님이 혈압으로 쓰러지시기까지 하다니..  "이번 주말은 저희끼리 보낼게요." 결혼 초의 기억들 때문에 혹시라도 맘 상해하시거나 진짜 혈압이라도 오르실까 봐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다. 꿈이라는 것에 안도했지만 의사표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꿈에 반영된 것 같아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다.




시부모님에게 전화가 오지 않는 주말이 있다. 그럴 땐 무슨 일이 있으신가 먼저 전화해 "같이 저녁 드실까요~?" 한다. 이거, 가스라이팅 같은 건가(^^;;).


분명 내 마음은 또 오락가락하겠지만 주말 아침마다 전화를 받고 반강제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압박만 덜어도 숨통이 트인다.


외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로 산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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