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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Apr 28. 2024

'일하는 여자'라는 꿈

돈 벌어서 당당하고 싶다

"얘들아~ 엄마 내일 면접 보기로 했어~~!! 너무너무 신나~~."


내 호들갑에 아이들도 축하한다며 환호성으로 답했다.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식당으로, 화수목금 10시 반부터 16시까지 홀서빙을 하는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하교 후 학원 한 군데 다녀오면 되는 시간대였으니까.


일을 하고 싶어서 알바X, 알바XX을 수시로 들여다보다 찾은, 딱 나를 위한 조건의 일이었다. 게다가 시급도 높았고, 주급으로 지급되는 것도 좋았다.


이제 나 일하는 여자 할 거야~~!!

나도 돈 벌어서 당당히 쓸 거야~~!!


절로 엉덩이가 씰룩거렸다.


"근데 얘들아. 꼭 지켜야 할 게 있어. 이건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알지~~?"


"당연하지.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게."


다음 주면 출근할 수 있겠지.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일장춘몽처럼 사르르 사라져 버렸다.




내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편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는 매번 "집 청소나 제대로 해.", "애나 잘 봐."라며 내 사기를 꺾어놓는다. 돈을 벌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을 해도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히려 화를 낼 뿐.


Image by Moondance from Pixabay


그래, 돈벌이를 혼자 감당한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때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굳이 외벌이를 하겠다는 그를 원망만 할 수는 없다. 일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그가 겪은 서러움도 모르지 않는다. 여기에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라 유사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아르바이트 식의 일을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일을 하겠다는 뜻을 끝까지 고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 애들도 좀 컸고, 다시 일을 시작해 학원비라도 벌어야 할 때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어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성과를 내는 일을 하고 싶기도 하고. 특히 그와 다툼이라도 생기면 일을 하지 않는 게 약점이 될 때가 많아 돈을 벌어야 남편 앞에서 더 떳떳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요구하는 대로 가정을 챙기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서는 '재택'을, 지역 맘카페에서는 '부업'을 키워드로 검색했다. 겨우겨우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 이력서를 보내놓고 결과를 기다리며 몹시도 설렜다. 이제 나도 할 수 있는 걸 찾을 거야!!


기회는 나의 편이 아니었다. 마흔에, 애 엄마. 그들에게 나는 적합한 일꾼이 아니겠지. 종이봉투 하나 접어서 50~100원 받기.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결국, 또 내 한계만 확인하고 말았다.


일을 하고 싶다. 돈을 벌고 싶고, 집에만 있기 싫고, 어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당당하고 싶다. 전업주부에게도 돈이 곧 능력일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간절하게 일을 하고 싶다. 사무직 정직원이 아니어도 좋다. 하루 대여섯 시간 일하는 아르바이트면 어떤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집사람이 아닌 내가 나로 불릴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뿐지.


하지만 모두가 혼자만의 바람서 그친다.




'죄송하지만 내일 면접은 불가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메시지를 전송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전송 버튼을 누른 후에는 눈물이 날 것처럼 아쉬웠다. 이유는 '휴일'이었다. 주말에는 출근을 하지 않지만 화수목금 중에 있는 휴일에는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남편이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 다시 일하는 여자가 되고 싶었는데, 돈 버는 여자가 되고 싶었는데 무산되고 말았다.


Image by Mykhailo Kolisnyk from Pixabay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집에서 노는 여자'로 보이는 '청소나 제대로 해야 하는 여자', '애나 잘 봐야 하는 여자'로 남았을 뿐이다. 이 삶에 만족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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