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종 다섯 개를 제거했어요. 납작해서 자칫 그냥 지나칠 수 있겠더라고요.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 걸릴 거예요. 연락드릴게요.
내 2024년 4월 대장 내시경날 담당의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렇지 않았다. '괜찮은' 용종이겠거니 했다. 3년 전 '문제 되지 않는' 용종 제거 이후 의무적인 내시경이었으니까. 그래서 결과가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다섯 개 모두 선종이에요. 암이 될 수 있는 거죠. 그중 특히 두 개가 문제예요. 이걸 흔히 톱니바퀴형 선종이라고 하는데 증식이 빠르고 골치 아픈 유형이에요. 지금은 잘 제거했지만 이게 발견되지 않을 때까지 1년마다 내시경을 하는 게 좋겠어요. 나이에 비해 빠른 편이긴 하네요.
뭐라고요? 선종이요? 말로만 듣던 그 선종이 다섯 개나 내 대장에서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두 개는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으니 추적관찰이 필요하고.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전개에 정신이 멍해졌다.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니라더니, 그게 내 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첫 용종 제거로부터 3년.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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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통해 본 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장암 말기의 여성으로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다 말기 암 판정을 받자 남편도 자식도 아닌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백 프로까진 아니어도 일부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내 성격과 툭하면 나를 하대하는 남편, 우리에게 관심이 너무 많은 시부모님, 자녀 양육 등의 스트레스와 그러면서도 제대로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더해져 수시로 정신이 피폐해지길 반복해 왔다. 나보다 남편과 자식, 시부모님의 비위를 맞추고 먼저 챙겨야 하는 삶을 살아왔는데 내가 왜!!! 갑자기 내가 안 되게 느껴진 것이다.
물론 암 진단은 아니지만 모르고 방치했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것 아닌가.충격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유가 뭘까.일단 가족력은 없다.
살쪄서? 그럴 수 있지만 그래도 고도비만까지는 아닌데?
술? 요즘엔 잘 안 마시는데?
고기? 그것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니고.오히려 채소 섭취량이 늘었는데?
흡연은 안 하니까.
스트레스? 그 가능성이 없진 않지.
이유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그래야 다시 그것들에게 살 곳을 내주지 않을 테니까.최측근들은 스트레스 때문이지 않겠냐고 한다. 그것만의 이유는 아니겠지만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 스트레스의 이유도 안다. 알면서도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내가 최우선인 삶을 살기로 했다. 타인(가족 포함)에게 양보해야 했던 나의 안녕과 평안을 조금씩 되찾기로 했다. 나를 더 귀하고 중요하게 여기기로 했다. 비록 나를 향한 누군가의 시선이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차갑고 날카롭더라고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 자신이 안쓰럽거나 불쌍하지 않도록 나를 더 많이 돌보기로 했다.완전히는 어렵겠지만 차츰차츰 비중을 늘려가는 것이다.
살 빼고, 술도 줄여야지. 스트레스가 심해지지 않도록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지. 가벼운 취미도 가져야지. 누구의 시선에도 나로서 당당해야지. 타인의 비난에도 자신을 잃지 말아야지.
삶의 변화는 꼭 극단적인 혹은 유사한 상황을 경험해야만 가능한 걸까. 올해는 나를 변하게 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더 단단해질 것이다.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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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또 굴욕의 대장내시경이 예약돼 있다. 부디 내 대장도 내 마음처럼 강인해져 어떤 용종도 뿌리내리지 못했으면, 하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