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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May 18. 2024

우리에겐 저마다 업고 튈 선재가 필요하다

일상에서 다시 설렘을 찾을 수 있다면

"선재야~~!!!"

친구 A가 나를 보자마자 팔을 잡으며 선재를 찾았다. 드라마 남자 주인공 이름이다.


"뭐? 선재?ㅋㅋㅋ"

동네가 떠나갈 듯 웃었다. 배꼽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SNS를 통해 요즘 30~40대 아줌마들이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 과몰입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 역시 해당 연령의 아줌마이고 그 드라마를 보고 있지만 '그 정도라고~?', '그냥 로코인데~?' 의아했다. 때문에 '제작사 마케팅 한 번 잘하네~'라며 이런 흐름을 만들어낸 제작사와 방송사, 마케터의 업무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랬는데, 단순 마케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A는 평소 냉철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문자 T 성향의 친구인데 드라마와 주인공 배우에게 이렇게까지 몰입하는 것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선재 진짜 정말 멋있어!" A의 목소리가 격됐다. A는 <선재 업고 튀어>의 OST '소나기'를 부르며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같이 만난 친구 B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드라마를 보면서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가 글을 잘 쓰네~.'라며 원작을 읽고 싶기도 했고 이런 드라마 대본은 어떻게 쓰여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또 '주연 배우들이 드라마를 잘 만났네.' 싶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열광할 정도인가 생각해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궁금했다. 왜들 그렇게 열정적으로 '선재'를 찾게 되는지.


그냥 평범한 로코가 아니냐는 내게 A는


"야야. 선재 키가 189래. 여주랑 키 차이 정말 설레어~. 몸은 또 얼마나 좋! 비주얼이 최고야! 나이도 30대여서 우리랑 별로 차이도 안 나~!! 게다가 과거 기사들 찾아 봤는데 애가 인성도 좋은 것 같더라~."


A는 선재, 아니 선재 역을 맡은 배우 변우석의 찐 팬이 되어 그의 장점을 줄줄이 읊었다. 우리는 변우석 배우가 과거에 학폭에 가담한 이력이 없고, 이성 관계에 문제없으며, 앞으로 사고를 치거나 사건에 휘말리지 않으면 쭉 대성할 배우라고 결론지었다.



출처 - tvN


지금까지 이런 류의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는 흔히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신드롬은 아니었다. 과거의 향수를 불어 일으킨 '응답하라' 시리즈의 여주 남편 찾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으나 그 조차 지금과 같은 과몰입을 가져오진 않았다.


선재, 변우석은 대체 무엇으로 아줌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됐을까.


비주얼 좋은 배우? 극 중 순애보적인 캐릭터? 여주와의 키 차이? 웃는 상의 얼굴? 어떤 이들은 10대의 귀여움, 20대의 순수함, 30대의 짐승미를 한 인물, 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매력 포인트로 꼽기도 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렘'이라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잊혔던 설렘 감정이 드라마와 선재를 통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늘 연인 같을 것만 같던 남편이 가족 혹은 '남의 편'이 돼 버리면서 느끼는 상실감, 일과 집일과 육아가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 되돌리고 싶은 나이에 대한 서글픔, 세월 정면에서 맞은 듯 변해버린 모습에 대한 회한 등에 치여 이제 내겐 없다고 생각했던 소녀 감성이 깨어나는 것이다. 


주연 배우들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며 여자 주인공 임솔에 빙의돼 연애세포가 살아나고 대리 설렘 . 드라마 속 멋진 배우를 보며 '내 아들이면 좋겠다', '사위 삼고 싶다'던 생각이 이번에는 '연인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선재 업고 튀어> 발 선재 열풍은 월요일(본방 하는 날)을 기다리게 하는 효과까지 가져왔다고 한다. 월요병의 훌륭한 치료제인 셈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설레는 것. 자꾸만 기다려지는 것. 보고 또 봐도 좋은 것. 이렇게 선재는 설렘의 대상에서 더 나아가 일상의 활기 같은 '힐링의 상징'으로 발전된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와 선재를 향한 과몰입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설렘과 활기라는 포인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것 같다. 그게 상상과 망상의 어디쯤이라고 하더라도.


어쩌면 우리겐 각자가 열과 성을 다해 업고 튈 선재와 그 명분이 필요던 게 아닐까.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어린이든 저마다의 선재 하나씩은 안고 살아으면 좋겠다.


출처 - tvN




"남편이 짜증 나게 해도 선재 보면서 참아. 남편 얼굴에 선재 얼굴을 자체 필터링 한다고 생각해 봐. "


뭐라고?


친구들과의 대화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어대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나도 오늘부터 좀 더 진심으로 선재에 몰입해 볼 생각이다. 여느 아줌마들과 같은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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