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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Oct 17. 2024

혼자가 아닌 조화를 이루는 삶

바이올린 합주의 마법

어린 날의 나를 돌아보면 나 잘난 맛에 시건방을 떨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 좀 잘한다는 평가 몇 번 받았다고 내가 회사를 먹여 살리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살던 시절. 그런 평가는 나만 받는 줄 알았던 멍청이 같던 시절.


사실, 회사라는 조직은 잘난 한 두 명으로 굴러가는 곳은 아니다. 자신에게 분담된 업무를 약속된 날까지 해낸 후에 같은 팀, 부서 등등과 하나로 모아졌을 때 완성된 결과물이 파생된다. 


그뿐인가. 자신에게 할당된 일이라고 독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팀과 끊임없이 소통을 해야 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지만 개선 방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다. 욕은 을 수 있을지언정 문제가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프로젝트 참가자 전원이 유기적으로 움직였을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다. 


Image by JL G from Pixabay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와 나라, 세계는 물론 학급과 가정, 작은 모임도 이렇게 돌아간다. 내가 속해있는 앙상블 팀 DEEP도 마친가지다. 연주 실력이 뛰어난 몇 명의 연주자가 이끄는 게 아니다.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피아노 각각의 악기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하나가 될 때 빛이 난다.


DEEP의 새싹 반에 들어가 누구보다 빨리 앙상블 팀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만큼 열심히 연습했다. 새싹 반 중 가장 열성적으로 연습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틈날 때마다 바이올린을 잡았으니 하루 중 너덧 시간은 연습을 했다. 그 노력은 '앙상블 팀 초고속 합류'라는 성과를 주었지만 '난 바이올린 쫌 하는 사람'이라며 자만하는 부작용도 가져왔다.


나는 여전히 음정이 정확하지 않고 활의 사용이 올바르지 않은 바이올린 새내기인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런 상태로는 혼자 연습을 해봤자 소득이 있을 리 없었다.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악보 자체를 이해할 수 없거나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 봉착했다. 정확한 음을 짚어내지 못했고 활의 움직임이 일정하지 못했다. 급기야 바이올린이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기까지 했다. 기본자세부터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돈 들여서 레슨을 받아야 하나, 싶던 차에 DEEP의 단체 연습 날이 됐다. 내 첫 공연을 앞둔 때였다. 합주에 앞서 개인 연습을 했다. 연습 많이 해왔다는 칭찬을 듣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을 거란 마음에 쉽사리 활을 움직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이상한 음을 낸다며 한 소리 듣지는 않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나 하나의 음 이탈이 전체 연주의 품격을 떨어뜨릴 것 같아 두려웠다.


한동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자신감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내 자만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아니나 다를까 삑삑 쁙쁙 어긋나는 소리에 스스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첫 번째 곡의 첫 번째 합주가 끝났다.


"아휴, 또 틀렸네."


"왜요~? 연습 많이 해온 것 같은데~."


"아니에요. 이 곡 너무 어려워서 잘 못 했어요. 계속 삑사리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 솔직함에 단원들은 자신도 똑같다며 공감했다. 그러면서 활 잡는 법부터 음정 짚는 법까지 봐주며 조언을 했다.


"틀려도 괜찮아요. 어차피 다른 잘하는 사람들 소리에 묻혀서 티도 안 나요. 걱정 말고 그냥 즐기면서 해요. 그러면서 느는 거지, 뭐~."


나를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응원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게 했다. 든든했다. 어차피 묻힐 거니까. 다른 단원이 있으니까. 나 하나 잠깐 틀려도 든든히 버텨줄 누군가가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나도 누군가의 실수를 덮어줄 실력을 쌓을 수 있을 테니까.


Image by Juergen Striewski from Pixabay

합주의 참의미를 깨달았다. 개인보다 유념해야 하는 건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라는 것. 때로는 자신의 소리를 줄이고 낮춰 다른 이를 돋보이게 높여주기도 하는 것. 그러다가 또 다른 이가 나를 높게 들어 올려주는 것. 그렇게 서로의 화음을 맞춰가는 것.


실제로 혼자 연습할 때보다 함께 연습할 때 내 악기 소리가 더 곱게 들리는 마법을 경험했다.


첫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연습을 했는데 여전히 잘 되지 않는 부분은 있었다. 팀에 누가 되지 않게 좀 더 집중해서 해야지,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단단히 받쳐 줄 단원들이 있으니까.


예상대로 군데군데 틀렸지만 녹화 영상을 보니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정말 내 음이탈이 감쪽같이 감춰졌다. 어쩌면 그마저도 조화를 이룬 것일 지도.


팀은 개인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다. 개인의 부족함을 채워주기도 하고 부족함이 풍족함이 될 수 있게 서로를 끌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의 실력보다 중요한 건 팀원을 믿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화음이다.


과거의 나를 다시 돌아본다. 나는 팀의 조화에 어떤 영향을 주던 사람이었을까. 부디 나만 잘났다며 다른 이를 질책하고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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