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니슨 Oct 17. 2024

혼자가 아닌 조화를 이루는 삶

바이올린 합주의 마법

어린 날의 나를 돌아보면 나 잘난 맛에 시건방을 떨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 좀 잘한다는 평가 몇 번 받았다고 내가 회사를 먹여 살리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살던 시절. 그런 평가는 나만 받는 줄 알았던 멍청이 같던 시절.


사실, 회사라는 조직은 잘난 한 두 명으로 굴러가는 곳은 아니다. 자신에게 분담된 업무를 약속된 날까지 해낸 후에 같은 팀, 부서 등등과 하나로 모아졌을 때 완성된 결과물이 파생된다. 


그뿐인가. 자신에게 할당된 일이라고 독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팀과 끊임없이 소통을 해야 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지만 개선 방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다. 욕은 을 수 있을지언정 문제가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프로젝트 참가자 전원이 유기적으로 움직였을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다. 


Image by JL G from Pixabay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와 나라, 세계는 물론 학급과 가정, 작은 모임도 이렇게 돌아간다. 내가 속해있는 앙상블 팀 DEEP도 마친가지다. 연주 실력이 뛰어난 몇 명의 연주자가 이끄는 게 아니다.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피아노 각각의 악기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하나가 될 때 빛이 난다.


DEEP의 새싹 반에 들어가 누구보다 빨리 앙상블 팀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만큼 열심히 연습했다. 새싹 반 중 가장 열성적으로 연습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틈날 때마다 바이올린을 잡았으니 하루 중 너덧 시간은 연습을 했다. 그 노력은 '앙상블 팀 초고속 합류'라는 성과를 주었지만 '난 바이올린 쫌 하는 사람'이라며 자만하는 부작용도 가져왔다.


나는 여전히 음정이 정확하지 않고 활의 사용이 올바르지 않은 바이올린 새내기인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런 상태로는 혼자 연습을 해봤자 소득이 있을 리 없었다.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악보 자체를 이해할 수 없거나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 봉착했다. 정확한 음을 짚어내지 못했고 활의 움직임이 일정하지 못했다. 급기야 바이올린이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기까지 했다. 기본자세부터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돈 들여서 레슨을 받아야 하나, 싶던 차에 DEEP의 단체 연습 날이 됐다. 내 첫 공연을 앞둔 때였다. 합주에 앞서 개인 연습을 했다. 연습 많이 해왔다는 칭찬을 듣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을 거란 마음에 쉽사리 활을 움직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이상한 음을 낸다며 한 소리 듣지는 않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나 하나의 음 이탈이 전체 연주의 품격을 떨어뜨릴 것 같아 두려웠다.


한동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자신감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내 자만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아니나 다를까 삑삑 쁙쁙 어긋나는 소리에 스스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첫 번째 곡의 첫 번째 합주가 끝났다.


"아휴, 또 틀렸네."


"왜요~? 연습 많이 해온 것 같은데~."


"아니에요. 이 곡 너무 어려워서 잘 못 했어요. 계속 삑사리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 솔직함에 단원들은 자신도 똑같다며 공감했다. 그러면서 활 잡는 법부터 음정 짚는 법까지 봐주며 조언을 했다.


"틀려도 괜찮아요. 어차피 다른 잘하는 사람들 소리에 묻혀서 티도 안 나요. 걱정 말고 그냥 즐기면서 해요. 그러면서 느는 거지, 뭐~."


나를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응원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게 했다. 든든했다. 어차피 묻힐 거니까. 다른 단원이 있으니까. 나 하나 잠깐 틀려도 든든히 버텨줄 누군가가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나도 누군가의 실수를 덮어줄 실력을 쌓을 수 있을 테니까.


Image by Juergen Striewski from Pixabay

합주의 참의미를 깨달았다. 개인보다 유념해야 하는 건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라는 것. 때로는 자신의 소리를 줄이고 낮춰 다른 이를 돋보이게 높여주기도 하는 것. 그러다가 또 다른 이가 나를 높게 들어 올려주는 것. 그렇게 서로의 화음을 맞춰가는 것.


실제로 혼자 연습할 때보다 함께 연습할 때 내 악기 소리가 더 곱게 들리는 마법을 경험했다.


첫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연습을 했는데 여전히 잘 되지 않는 부분은 있었다. 팀에 누가 되지 않게 좀 더 집중해서 해야지,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단단히 받쳐 줄 단원들이 있으니까.


예상대로 군데군데 틀렸지만 녹화 영상을 보니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정말 내 음이탈이 감쪽같이 감춰졌다. 어쩌면 그마저도 조화를 이룬 것일 지도.


팀은 개인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다. 개인의 부족함을 채워주기도 하고 부족함이 풍족함이 될 수 있게 서로를 끌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의 실력보다 중요한 건 팀원을 믿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화음이다.


과거의 나를 다시 돌아본다. 나는 팀의 조화에 어떤 영향을 주던 사람이었을까. 부디 나만 잘났다며 다른 이를 질책하고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었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