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DEEP에서는 11월에 있을 공연 준비에 한창이다. 그중 내가 특히 애정을 갖고 연습하는 곡은 <산골소년의 슬픈 사랑이야기>다. 멜로디가 아름다운 것도 이유겠지만 개인연습을 열심히 해서 다른 4곡보다 자신 있다는 게 더 큰 이유다.
매끄러운 연주를 위해 써드 포지션까지 공부했다. 써드 포지션은 보통의 연주를 할 때 3번 손가락으로 짚는 음을 1번 손가락으로 짚으며 손 전체를 바이올린 본체 쪽으로 이동해서 연주하는 방법이다. 3옥타브(혹은 그 이상의 옥타브도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의 높은 음을 연주할 때 용이하다. 이론상으로는 어려울 게 없는데 막상 하려니 이론과 실전은 서울과 부산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특히 나는 독학이기에 물어볼 데가 없어 수십 개의 동영상을 찾아보며 계이름별 위치를 파악하고 손가락 끝이 갈라질 때까지 연습했다.
"써드를 했네요? 대단한데요~"
월 1회 DEEP에 오시는 바이올린 선생님의 칭찬에 또 고래처럼 신나게 춤을 췄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다른 곡들보다 공들여 연습한 곡이기에 애착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연습하는 것을 놀라워하는데 사실 그럴 것도 없다. 단지 바이올린이 내겐 어떻게 해서든 꽉 쥐고 싶은 동아줄일 뿐이다. 더 열심히, 아름답게 연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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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생활을 청산하고 엄마와 아내로만 남기로 한 이후 내가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남편의 내조를 하는 것만으로는 어떤 만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그냥 나인 존재, 누군가의 아내이지만 그냥 나인 존재. 그래서 전업주부로서의 삶은, 우울한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작은 신문사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잡지사, 온라인 미디어를 거치며 나를 증명하는 것은 신문 1면 탑 기사의 수, 온라인 기사의 조회 수, 네이버 다음 등 포털로의 노출 수 등 가시적인 것들이었다. 눈에 정확히 보였고 모두의 판단 기준이 같았다. 그건 내 자존감이자 자신감이었다.
그래서다. 전업주부로 사는 게 뼈가 아릴 정도로 힘든 이유. 집안일도, 살림도, 육아도, 교육도 어느 것 하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없다. 게다가 평가 기준이 주관적인데 그걸 판단하는 내 주관과 남편의 주관은 대한민국과 미국만큼이나 멀고 다르다. 여기서 문제는 남편의 주관이 곧 우리 집의 기준이라는 것.내 나름의 '열심'과 '잘'은 그의 것들과는 다르다.
뿐만 아니다. 아이들 문제는 내가 어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당연히 '보호'의 효과는 크겠지만 학업이나 친구 관계 등 백날천날 "열심히 해라.", "사이좋게 지내라." 가르쳐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노력하는 만큼의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결국 나는 곧잘 청소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 음식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 애들도 잘 못 보는 사람으로 곤두박질친다.
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내가 이렇게 자존감 낮은 사람이었나.
언제부터 이렇게 주눅이 들기 시작했던가.
내가 버티고 있는 땅만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남편은 불같이 화를 냈다. 나의 그 말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 같다는데 돈타령을 한 것도 아니고, 대체 어떤 감정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꼭 덧붙여지는 말.
"청소나 잘해."
혹은
"애나 잘봐."
휴. 결국 나는 지구 반대편까지 뚫고 나갈 듯 깊숙이 떨어지고 만다.
어떤 것에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날들만 이어졌다. 내가 나일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이따금씩 가슴 저린 느낌이 있었고, 멍하니 있기도 했지만 꾸역꾸역 살아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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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에 DEEP 모임을 통해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됐다.
바이올린은 내가 하는 만큼 소리가 난다. 연습하는 만큼 풍부한 음을 내고, 어긋나는 소리도 줄일 수 있다. 악보만 봤을 때 어려워 보이던 것들도 계속 연습하면 할 수 있다. 어떤 악보는 보기만 해도 '아~ 이 곡이구나' 싶을 정도의 연주는 할 수 있다. 게다가 연습을 많이 해가면 선생님을 포함 회원들이 "대체 연습을 얼마나 하길래 이렇게 잘해요?"라며 놀라고 다른 새싹 팀 회원들보다 빠르게 고난도의 악보를 받는다.
물론 흔히 생각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급의 연주는 아니고 속된 말로 삑사리도 나지만 노력하는 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고, 온몸으로도 느낀다.
4주 전 주민 음악회를 위한 연습 때의 일이다. 곡 중간에 손가락을 다른 부분보다 2배 정도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곳이 있었다.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 백 번은 넘게 연습해 갔다. 그 노력은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냈고, 파트 연습 중 지휘 선생님이 나를 향해 엄지를 높게 세웠다.
이거지!! 이거야!!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
나도 잘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짓눌렸던 나를 숨 쉬게 한다.
하면 할수록 잘해지는 것. 나 스스로도 자신할 수 있는 것. 타인의 인정도 받을 수 있는 것. 그래서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것. 오랜만에 찾은 그게 바로 바이올린이다.
지금의 내게 바이올린은 곧 자존감이고 자신감이다. 이것만으로도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지구 깊숙한 곳에서 나를 끌어 올려주는 동아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