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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Sep 25. 2024

3/4 크기의 연습용 바이올린

반복하면 된다는 교훈의 의인화

의지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해낼 수 있다. 그걸 내 몸으로 방증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DEEP 모임에서는 바이올린을 대여해 사용하지만 그 악기를 반출하는 것은 불가하다. 연습을 해야 하는데 어쩌지. 발을 동동거리다 머리에 번쩍 불이 커졌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된다지? 그럼 나는 애 걸로 연습한다!!


어찌 되든 연습만 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악기의 크기인데...


바이올린을 크기로 분류하면 1/8, 1/4, 2/4, 3/4, 4/4로 나뉜다. 키와 팔 길이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크기의 바이올린을 선택하면 된다. 그중 4/4는 풀 사이즈로 보통 초등 고학년부터 성인까지 사용한다. 내가 DEEP에서 사용하는 것도 이 크기인데 아이의 바이올린은 한 단계 작은 3/4이다.


아주 큰 차이는 아니라는 생각에 집에서는 아이의 악기로 연습을 하기로 했다. DEEP 모임에서 손가락 위치나 간격만 맞춰보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은 크기 때문인지 목을 받치는 각도가 커져 목이 뻣뻣해지고 어깨에까지 통증이 있었지만 견딜만했다. 그렇게라도 연습할 수 있다 게 어둠 속에서 플래시를 발견한 것처럼 좋았다.


바이올린 하나 사면 되지 뭘 그래!


말은 쉽다. 악기 값이 천차만별이라지만 아무리 저렴해도 껌 값 수준은 아닌 데다 내가 언제까지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에 선뜻 구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유독 자신의 것에 돈 쓰는 게 편하지 않은 주부이지 않은가.


다음 모임에서 4/4 악기로 연습했던 것을 맞춰보니 다행히 어렵지 않게 음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아이의 바이올린으로 목이 꺾이도록, 그래서 어깨까지 담이 올 정도로 연습한 결실을 맺을 차례였다.


"대체 연습을 얼마나 한 거예요?"

"누가 개인 레슨이라도 해 줘요?"


눈이 휘둥그레해진 DEEP 새싹 팀 회원들이 나를 쳐다봤다. 세상에. 다른 회원들은 각 현의 음을 짚는 연습에 한창이었는데 나는 그 과정을 끝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피아노로 치면 다른 회원들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습하고 있는데 나는 소곡집 정도의 연주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의 악기로 연습했다는 말에 회원들은 다시 한 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기대했던 맑고 고운 소리지는 아니었다. 삑삑 쁙쁙 깩깩 이상한 소리가 귀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모두가 나를 우등생이라며 추켜 세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나는 신명 나게 춤추는 고래가 됐다. 깊은 물속을 유영하다 힘차게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그렇게 한 달 여의 시간을 보내다 결국 내 악기를 구입하기로 했다. DEEP을 운영하시는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악기상점에 가서 부탁했다.


"사장님~. 제일 싼 걸로 주세요~!!"


저렴하지만 품질이 좋은 제품이라고 추천받은 악기를 메고 돌아오는데 세상을 얻은 듯 행복했다.17만 원이었다. 인터넷 최저가로 구입한 아이의 것보다 싼 값이다. 비록 내 개인적인 목적으로 돈을 쓴 게 맘은 불편하지만 이 정도면 가성비 좋은 세상이지 않은가.


오자마자 마트폰에 바이올린 튜닝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주요 음을 스티커로 표시했다. 이제 남은 건 연습, 연습 또 연습!!! 소리를 줄여주는 도구인 약음기까지 동원해 습 벌레가 됐다. 학창 시절에 공부에 이렇게 열을 올렸으면 정말이지 서울의 내로라하는 대학에 들어갔을 것이다. 내 악보, 아이의 악보, 아이의 교본 등 있는 대로 다 해봤다. 흰 바탕에 콩나물들이 제 멋대로 춤 추듯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반복하면 할 수 있었다.


뭐야, 나 진짜 천재야?

모차르트가 나로 환생한 거 아니야?


혼자 설레발을 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DEEP 모임이 없던 아이들의 여름방학 기간에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개학 후 첫 모임에서 다시 모두의 놀라움을 샀다.


"또 연습 많이 했나 보네요."

"네. 진짜 엄청 했어요."


DEEP을 운영하시는 선생님은 2주 뒤에 있을  연주회 악보를 슬쩍 내 악보집에 끼워 주셨다.


이렇게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새싹 팀을 졸업하고 당당히 앙상블 팀에 합류하게 됐다!!


"하루에 연습을 얼마나 해요?"라고 묻는다면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시간 날 때마다 해요. 그냥 틈이 생기는대로 해요.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 해요."


사실, 연습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많이 보여주려 노력했다. 바이올린의 '바'자도 모른 채 시작했지만 새싹 팀 중 가장 잘 하려고 노력하는 나를 보며 복잡한 수학 문제, 잘 풀리지 않는 친구 관계 등 처음에는 어렵고 힘든 일이라 생각되는 것도 될 때까지 반복하면 결국 된다는 것을, 잔소리가 아닌 나로서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있는 딸아이도 인정하는 나의 일취월장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그런 자극이 될 거라 믿는다.


이런 내가, 쑥스럽지만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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