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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Oct 24. 2024

'비브라토'보다 중요한 것

화려한 기술보다 탄탄한 기초

더 아름답고 풍성한 소리를 내고 싶다. 비브라토를 해야겠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런데 세상은 어쩜 이리도 생각처럼 되지 않는지...


비브라토는 음높이의 규칙적인 진동의 변화로 이루어진 음악 효과라고 정의돼 있다. 소리를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또는 음악적 표현을 위해서 이용하는 '음이 미세하게 떨리도록 만드는 기법'이라고 한다. 성악의 바이브레이션 같은 것이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곡 중간중간 혹은 마지막 부분에 줄을 짚은 손을 추위에 떨 듯 빠르게 움직이는데 이것이 바로 비브라토를 구현하는 모습이다.

  

'그냥 손 좀 떨어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독학으로 해왔으니 비브라토도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비브라토의 기본은 손가락에 있다. 손가락으로 줄을 짚고 펴고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수시로 손가락 연습을 했다. 줄을 짚는 왼손의 엄지를 중심으로 검지부터 새끼까지 차례로 첫 번째 마디를 접었다 폈다 접었다 폈다... 자연스럽게, 빠르게 될 때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제 자신 있어! 할 수 있을 때 바이올린을 쥐고 연습했던 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맙소사!!!!


보기엔 별 것 아니었는데! 손가락 연습도 충분히 했는데! 막상 하려고 하니 몸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내 손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바이올린은 손에서 미끄러지고, 활은 힘을 잔뜩 받은 채 제 경로를 잃고 쁙쁙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한 글자, 헐!!!!!


쉬워 보였다. 분명 그랬는데... 비브라토를 얕본 내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비브라토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주는 게 포인트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기본기, 바로 그것이었다.



바이올린을 속성으로 배웠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대로 배운 것은 아니다. 유튜브를 보며 혼자 연습하다 모르는 것은 아이나 DEEP 담당 선생님께 물어보는 식이었으니까. 계이름과 해당 위치만 알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본을 놓치고 말았다.


바이올린을 쥐는 자세, 손의 힘, 팔의 각도 등 가장 기본으로 챙겼어야 하는 부분은 무시하고 소리만 내려고 했다. 더 정확한 음을 짚는 데만 집중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소리를 내고 박자를 맞추며 연주가 가능했지만 더 좋은 소리를 내려니 기본기 없이 낸 욕심이 발목을 잡았다. 기초공사 없이 올린 건물처럼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급박한 상황이 돼 버렸다.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전에 보수 공사를 해야만 한다.




학창 시절에도 부족한 기초에 애를 먹었었다.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수학과 영어를 포기해야 하나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것이다. 다른 과목도 어려웠지만 그 두 과목은 특히나 해도 해도 모르겠는 분야였다.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모르는 것을 질문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설명을 들을 땐 '아~ 그런 거구나.' 했던  문제를 혼자 풀려고 하면 '뭐였지?' 싶다. 나는 돌머리인가, 매일 고민했던 날들이었다. 결론적으로 포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포기한 것과 다름없는 점수에 허탈했던 기억이 난다.


기초가 부족했던 탓이다. 초중등 시절에 기초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수업을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걸 알았다.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었으니 아무리 노력을 해봤자 소용이 없지..


"기본을 무시하지 마라. 성공의 토대는 기본이다."라고 말한 짐 론(Jim Rohn)을 비롯한 여러 자기 계발 전문가들이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초를 쌓는 시간과 노력이 찮거나 필요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빨리 눈에 띄는 결과를 내고 싶으니까. 하지만 기초 없이는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 겉은 그럴싸해 보여도 속은 비어있어 더 높이 올라가야 하는 순간에 폭삭 내려앉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바이올린 연주자로서의 내 실력이 딱 그 꼴이다.


비브라토는 제쳐놓고 기본기부터 다지기로 했다. 자세를 바로 하고, 활 잡는 방법을 새로 익혔다. 바이올린을 쥘 때나 활을 움직일 때 힘을 빼야 한다기에 그러려고 하는데 아직은 쉽지 않다. 화려한 연주를 하기에 앞서 기본음의 소리부터 제대로 낼 수 있도록 손 끝의 정확도도 높이려고 노력 중이다.


가장 완벽하고 완전한 성과는 기본이 잘 돼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영광이다. 지금 나는 급하지 않게, 느리더라도 탄탄하게 그 영광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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