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지칠 때가 많다. 잇속을 감춘 채 만나는 관계가 많은 탓이다. 그럴 때마다 큰 에너지를 뺏기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려 한다. 그 관계가 일방적인 목적 없이 사람대 사람으로 이어지면 성공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길가다가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이로 종료되고 마니까.만약 전자의 사람을 사귀게 된다면 서로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된다.
A언니는 같은 아파트에 살아 오가며 목례만 가볍게 하다가 올해 아이들이 한 반이 되고 교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친근하게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게다가 그녀는 DEEP 새싹팀에 같이 합류한, 말하자면 입단 동기이기도 하다.
"연습 되게 많이 했나 봐요? 집에서 연습 어떻게 해요?"
"바이올린 알아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어머~. 새싹팀의우등생이에요~~"
A언니는 내게 관심을 갖고 호의를 베풀었다. 사람에게 유독 선을 긋는 경계심은 성급하지 않고 잇속을 챙기지 않으며 조심스러운 호의 앞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말랑해졌다.
A언니는 한동안 DEEP 연습에 나오지 않았다. 개인 사정으로 몇 번 연습에 빠지니 실력이 늘지 않아 자꾸만 빠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다들 그래요~. 그래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내 심정은 그랬다. A언니의 고민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다시 연습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나 A언니는 실력을 늘려 아이와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바로 전 주 지역 축제에서 나와 다른 한 연주자가 자녀와 함께 무대에 올라 곡을 연주했었는데 A언니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 아이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래서 더 A언니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면 분명 금방 잘하게 될 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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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DEEP의 마지막 발표회를 앞두고 드디어 A언니가 연습에 참석했다. 이 발표회는 DEEP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참여해야 하는 정기 행사였기에 A언니도 새싹팀끼리의 곡을 연습해야만 했다.
동기부여가 확실히 된 A언니는 연습 전에 미리 바이올린 책에서 연주해야 할 곡의 악보를 준비하고훑어보기까지 했다.
A언니가 오랜만에 참여한 날은 마침 바이올린 선생님이 레슨해 주시는 날이었다. 보통은 앙상블팀의 연주법을 잡아주시곤 하는데 이 날은 A언니의 자세도 세심하게 지도해 주셨다. 이제 선생님이 새싹팀도 봐주시나 보다 했다. 알고 보니 A언니가 선생님께 요청한 것이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집중해서 자세를 잡고 바이올린을 켜는 A언니에게서 강력한 의지가 보였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자극이 되는 모습이기도 했다.
연습이 끝난 후 A언니는 이제야 바이올린의 재미를 알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자세부터 다 새로 지도해 주시니 어떻게 하는지 감이 좀 오고 할 맛이 난다고.
"언니 정말 멋져요~. 이제 내년부터는 앙상블팀에서 같이 공연해요~~."
A언니는 수줍게 못 한다고 손을 저었지만 같이 앙상블팀으로 활동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날 저녁 A언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함께 연습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며, 응원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바이올린의 재미를 찾게 돼서 다행이고, 앞으로 같이 공연 많이 하자고 메시지를 보낸 후 한참 생각해 보니 나도 A언니에게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는 게 느껴졌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없다는 것. 길은 분명 있다는 것.
DEEP에서 A언니 같은 사람을 여럿 만났다. 아이가 연결되지도, 잇속을 따지지도 않는 사이. 같이 곡을 연주하고 공연을 하며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응원하는 사이. 경쟁사회에만 익숙해있다가 협동하며 같이 나아가는 DEEP은 협동과 조화를 온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한다. 누구를 이기고, 누구보다 먼저 위로 올라가겠다는 마음 대신 함께 아름다운 곡을 더 아름답게 연주하겠다는 마음이 모인다. 그 자체로도 지친 마음에 휴식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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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언니와 DEEP은 이미 내게 유의미한 존재다. 나도 그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더 연습하고 더 발전하자고 마음을 다진다. 우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