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복의 실체
"남편복 있네요."
사주를 보거나 타로점을 보면 꼭 듣는 얘기다. 남편복.
남편복이라.. 돈 잘 벌고, 나를 아껴주고, 가정적이며... 그러니까 남편의 덕을 본다는 것 아닌가. 남편이 깔아준 꽃길을 사뿐사뿐 걷기만 하면 된다는 거, 맞지?
"이야~ 남편복이래. 좋겠다~~"
지인들의 말에
"그런 게 어딨어. 믿거나 말거나지~"
라고 대수롭지 않아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어차피 한 결혼이니 남편복 있다는 게 없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그런데 참 이상하다. 10여 년을 넘게 결혼생활을 하면서 '나 진짜 남편복 있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편의 책임감이 강한 건 좋은데 가부장적인 면 때문인지 나는 종종 삼시세끼 미슐랭 3 스타급의 음식을 상다리 휘게 차리고, 먼지 한 톨 없이 쓸고 닦는 가정부가 돼야 할 것만 같았다. 반면 감정은 수용받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남편들이 말하는 '돈 버는 기계가 된 기분'과 같은 결일 터다.
때로는 그가 '평범'이라고 얘기하는 삶을 위한 도구 정도로 느껴지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는.. 사실 잘 모르겠다. 사업하는 사람이기에 정확한 수입을 판단하기 어렵고, 생활비로 카드를 받아 생활했기에 체감 현금보유량은 많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어느 날부터는 '진짜 나랑 안 맞는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며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남편복 있다며!!
설마, 이 남편이 아닌 거야??
그러다 알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남편복과 명리학자나 타로점술가가 말하는 남편복은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돈 잘 벌어오고,
나에게 다 맞춰주는 게
남편복이라고 생각했지만,
결혼을 하고,
남편과의 인연이 쉽게 끊어지지 않고,
삶에서 남편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게
남편복이라는 것이다.
아내복도 같은 맥락이고.
OMG!!!
그러니까
남편의 덕을 보며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인연이 강하게 연결돼 있을 뿐이라는 거잖아! 그 인연이 좋은 상태든 그렇지 않은 상태든 끈질기게!
게다가 그로 인해 내 삶이 좌지우지되고?
그제야 이해했다.
남편복이 있다는 말이
내가 기대했던 ‘편안한 삶’의 보증서는 아니라는 걸.
그 말은 오히려 한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나 자신을 계속 재정의해야 한다는 뜻에 가까웠다.
물론 사주나 점은 재미의 영역일 뿐이다. 그런데 막연한 희망 같았다. 붙잡고 싶은 구원의 끈 같은 것이었다. 남편복의 해석을 알고 나니 허망해졌다. '언젠간 덕 좀 보겠지' 싶었던 기대가 무너져 내렸다.
텅 빈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데 갑자기 나 자신이 한심해졌다.
"왜 누구 덕을 볼 생각부터 해? 내 삶은 내가 만드는 건데!!"
사주 그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 허탈해한단 말인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인지하지 못할 뿐 지금도 남편복이 있는 상태일 수 있지 않나. 아니면 이전에 그랬거나.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남편복이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다. 내 삶은 내가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게 팩트다.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
깨닫고 나니 더 열심히, 더 자신 있게, 더 당당하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른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루틴을 깰 수 있도록 남편과 나를 각자의 인격체로 분리해서 생각할 것이다.
집안일을 열심히 하겠지만 그건 누구 한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편안한 생활을 위한 것이다.
피곤해도 열심히 일해서 경제력을 갖춰야지. 투잡도 추진할 생각이다.
또,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으며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것이다.
취미활동을 통해 나 자신을 잃지 않을 것이며, (내 사주에 강하게 있다는)글쓰기도 더 착실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남편복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관계를 어떻게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더 중요하게 본다.
이 글은 남편을 비난하려는 글도, 결혼을 부정하려는 글도 아니다. 다만 나처럼 막연한 말 하나에 기대어 관계를 버텨온 사람들에게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두고 봐라. 내 꽃길은 내가 만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