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의 정도가 심각합니다

독박육아에세이

by 이니슨

요즘 부쩍 짜증이 늘었다. 쉽게 화가 치밀었다.

친구는 내게 우울증 같은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런데 난 우울함을 느끼진 않았다.


혹시나 싶어 우울증 자가진단을 검색했다. 그리곤 재미삼아 해봤다.



첫 번째 자가진단에서 28점이 나왔다. 내 생각에 100점 기준에서 28점이면 낮은 수치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다양한 우울증상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


한 번의 테스트로는 신뢰가 가지 않아 다른 사이트에서 다시 자가진단을 했다.


이번엔 65점이었다. 중증 이상의 조울증 증세를 보인다고.


그래도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난 직업상 의심이 많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60점 만점에 25점이었다.


우울증의 정도가 심합니다. 우울증 센터 방문을 권합니다.


세 번의 테스트가 모두 내가 우울함을 심하게 느끼는 상태라고 말한다. 이상하다? 난 우울함을 느끼지 않았는데?


딱히 우울하다기보단 쉽게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었다.
아침을 시작하는 게 즐겁지가 않았다.
무기력해서 툭하면 멍하니 있는데 그러느라 제대로 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짜증이 났다.
뭘 하든 머리가 복잡하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얼마 전 운전 중 기둥을 대차게 긁은 것도 그 영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별 일 아닌 것에도 크게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내며 혼을 냈다.

그게 속이 상해서 또 짜증이 났다. 한 번 짜증이 나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내가 요즘 이렇다고 얘기할 사람도 없고,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굳이 얘기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이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전에 수시로 우울함을 느낄 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아주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난 참 우울했던 모양이다.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슬퍼졌다. 내가 이렇게 우울함을 느끼는데 내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게 슬펐다.


출처 = <로맨스는 별책부록> 공식 웹사이트

예전에 봤던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회사 입사시험에서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내용이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동안 많이 애썼다며, 함부로 취급해서 미안하고, 너무 부려먹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이 힘들었고 울고 싶었을 텐데 웃으면서 잘 견뎠다고, 정말 고생했다고 했다. 자신을 향한 칭찬이었고, 공감이었고, 위로였고, 응원이었다.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솟구친다.


나 역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 나를 함부로 취급했던가. 또 얼마나 부려먹었던가.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내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내 자신을 칭찬하고 응원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내 심신은 나도 모르게 이만큼 지쳐버린 모양이다.


비록 프로그래밍된 결과일 뿐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뭔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겨우 자가진단 하나로 누군가 알아주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혼자 한참을 울었다.


그제야 내 안에서 뭔가가 울컥 내려가는 듯했다. 어딘가 막혀있던 곳이 시원하게 뚫리기라도 한 듯 개운해졌다. 참 묘하게도. 재미삼아 해 본 우울증 자가진단이었지만 이거라도 하길 잘했다 싶다.



나, 참 고생했다. 참 잘 견뎠다.

이젠 괜찮아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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