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을 한결같이 한 달에 한 번 여자임을 확인시키던 ‘그날’이 홀연히 사라졌다. 나의 몸이 생식 임무를 다했다며 휴지기를 선포한 셈이다. 이런 돌발 폐경은 이례적이라며 호르몬이 1도 없음을 병원은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작년에 갑자기 발병한 심장병도 그렇고 이번 경우도 백신 부작용이라며 말하기 좋은 이들이 입방아를 찧는다.
이제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
꽃봉오리가 터지는 화창한 봄, 변화를 주고 싶어 머리를 다듬고 펌을 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디자이너의 물음에 "어려 보이게 해 주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런 세상에. 어떤 스타일을 해달라거나 예쁘게 해 주세요도 아닌 단지 나이 들어 보이지 않게라니.’
씁쓸하다.
미용실을 나와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꽤 짧아진 머리가 어색해 자꾸 신경이 쓰인다. 집안에 들어선 나를 본 아이들은 제일 먼저 저녁을 언제 먹는지 물었다. ‘나 머리 했어'라고 하자 빤히 보더니 염색이야 파마야 뭘 했어?라고 묻는다. 오 마이갓. 뾰로통한 나를 수습하려고 뒤늦게 어울린다며 설레발치는 수컷 아들들이 내심 서운하지만 곧 익숙하게 저녁을 준비한다.
현빈과 손예진의 결혼이 화제다. 순백의 선남선녀를 보는 것은 설레고 행복하다. 마스크가 얼굴을 감싸면서 화장이 소홀해진 요즘 탄력을 잃고 둥글둥글해진 몸은 편한 옷만 찾는다. 청년 시절, 꽃단장하고 나서면 호감 어린 시선과 관심을 받은 이유가 젊음만으로 충분히 화사하고 화려했기 때문임을 그때는 몰랐다. 이제 나는 여성보다는 완숙한 중년 혹은 어른 인간으로 취급받는 나이가 되었다.
갱년기가 묻다.
인생의 절반이 공제되고 잉여 시간이 남았다. 잉태와 양육의 의무가 끝나고 내 이름으로 오롯이 살아야 한다. 최소한 남들만큼 살거나 더 잘 살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젊은 날은 시간을 팔아 질주한 시기다. 전력을 다한 뒤 중간 반환점에 도착해서야 꿈꾸던 미래를 얼마나 이루었는지 멈춘다. 반 백 살은 인생의 이정표가 올바른 방향인가 고민하는 나이다. 생이 돌고 돌아 제 자리를 찾고 결핍과 충만이 지극히 사적일 수 있음을 알게 된 지금 어쩌면 삶의 진리를 조금 알았을지 모르겠다. 지난 생과 남은 생의 경계에서 계속 쫓기며 살지, 다스리며 살지 선택하라고 갱년기가 묻는다.
다시 화양연화
시선을 안으로 돌리면 내 안의 신세계가 있다. 여전히 세상과 어깨를 겨루며 애쓸 필요가 있을까.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남을 최근의 팬데믹을 통해 알았다. 좀 더 편하게 신과 자연을 대면하며 물욕보다 한 차원 높은 삶을 살고 싶다. 소유하지 않으면서 바라보고 느끼는 걸로 충만해지는 연금술을 배워야 할 타이밍이다. 스스로 버리기 전엔 잃을 수 없는 게 꿈이다. 발을 헛디디고 빠지는 게 인생이지만 서툴러도 괜찮다며 스스로 위로하는 지금이 바로 화양연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