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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 et Moi Oct 27. 2024

최고의 인간

“누구나 최고의 내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최고가 된다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최고가 되어 무얼 하죠?”     

“하. 무슨 소리입니까? 최고의 인간. 인류의 오늘날이고 인류의 미래죠.”     

"사회, 문화적으로 정형화된 열망과 결함이 가득 넘치는 시대이자 욕망의 시대, 대관종의 시대, 소비의 시대로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자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동참하자는 겁니까? "

  

  욕망으로 움직이는 게 인간이고, 욕망으로 일궈낸 세상이라고 하지만, 건강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은 마치 하나의 질병이 되어, 갖가지 병폐와 퇴행을 일으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욕망 덕택에 간절함을 가미한 불확실성은 언제나 장사가 되는 법이고, 듣기 원하는 답안을 대신 말해주는 건 식은 죽 먹기로 돈이 되는 법인데, 그래서 이걸 더욱 교묘하게 이용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최상의 인간, 인간의 조건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아요. 말해 뭐 하겠습니까? 분노가 치밉니다. 닿을 수 없는 건 결국 괴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러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정해놓고, 이대로 따르라고 종용 아닌 종용이자 세뇌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고의 훌륭한 인간이 되겠다는 맹목적인 적응이 낳은 건 바로 만연한 스트레스로 인한 부정적 감정들의 증폭이었다. 그럴수록 존재와 건강한 연결과 멀어지고, 건강한 확장에 실패한 이들은 삶이 덧없이 팽창하거나 위축되는 형태로 이어졌다. 끊임없이 온갖 타자를 의식하거나, 끊임없이 가혹하고 잔인한 주관적 자기 평가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을 진정 돌보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자신을 터지도록 부풀리거나 쪼그라뜨리거나 두 가지 선택지만이 남아 버렸다.      


  두 가지 선택지에서 대다수는 내면 혹은 외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내면성이 없는 자들은 외형성에 집착하게 되었고, 내면성이 있어도 외형성이 없다고 여긴 자들은 단절 고립되어 갔다. 내면성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자들은 또 다르게 시들어갔다. 어쨌든 현실과 거리를 낳는 맹목적인 적응의 실패는 심각하게는 자처하는 은둔생활과 은폐였고, 불행을 자처하는 삶의 길목에서 가지 말아야 할 길로 자신도 모르게 걸어 들어갔다. 이를 어렴풋이 감지한 영혼이 상한 자들은 더 이상 정신과 삶을 부패시킬 수 없었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시야를 가로막도록 꽉 찬 고층 아파트와 건물 사이로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욱 고층 건물을 올리고자 열의는 한풀도 꺾이지 않고 들어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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