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펼쳐진 스크롤과 화면들 사람들은 미디어가 조장하는 대로 움직이며 감정과 경험을 무한히 복제하고 있다. 복제 경험은 실제로 무한히 한들 휘발되어 버기 십상인 경험이다. 가슴 깊이 추억할 기억의 한 조각을 생성하지 못한다. 일회적 깜빡임으로 남을 그 순간으로 무한 저장할 뿐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반대로 경험이 부재한 채로 쌓아 올리는 지식들은 진정한 습득에 실패하고 말지만 대다수는 부정한다.
이제는 실제보다 디지털 세상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한다. 상업논리가 가미된 이미지와 영상, 끊임없이 복제된 그 영상과 정보를 통해서만 감정을 느끼고 있고 느끼게 되고 있다. 그리고 송출된 정보 안에서 사유 없이 생각한다. 결국 디지털 정보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인간 자체가 무한 복제되고 있다는 이면의 진실을 모르고 있다.
현실 경험과 가상 경험의 경계가 차차 흐릿해져 사실상 무한 복제된 디지털 경험만이 차고 넘쳐 버리는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피드 속 자신의 모습 그러니까 거울 속의 환상이 아닌 살아가는 현실, 살아있는 나를 선택할 수 있겠니?라는 내 안의 물음을 생성하지 못한다면 반복적으로 성공과 삶의 행복을 이미지에 의존하고 말게 될 거다.
가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로 구축하는 경험으로 가져가려면 온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인정과 긍정이 영양과 산소처럼 작용하기 위한 안전기지가 필요하다. 안전기지를 다 걷어차 버린 채로.. 살아있는 나를 가꾸도록 돕는 토대와 나눔은 삭제한 채로, 그저 가상세계에 내몰리고 있는데 이러한 모순을 발견하지 못해서 조율과 조종의 시간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마침내 균질화된 복제인간의 완성이다.
때가 되면 나로 존재하고 싶기에 힘들 거다. 복제성 안에서 아이러니컬하게 차별화되지 못한다는 아픔은 갖가지 것을 불러올 것이다. 여전히 복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취약성에 대한 자의식의 과도한 상승, 훌륭하고 멋지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감,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불안의 생성, 생에서 불가피한 두려움과 불안을 위협적으로 지각하는 해석만이.. 남아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