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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꽃쌤 Nov 26. 2018

동산동 풍경화1

동산동 풍경화 - 밤을 느끼는 선생님


나는 밤에 자란 아이이다. 어린 것이 어찌 그리 밤과 새벽을 좋아했던지, 어두움은 무서워했지만, 밤이 주는 그 고요와 평화, 집중력을 즐거워했고, 즐겼다. 나는 술 취한 어느 가장의 주정과 노상방뇨 소리를 들으며, 길고양이의 크르릉 소리를 들으며, 심야 라디오 DJ의 마지막 인사를 들으며, 새벽 쓰레기차 종소리를 들으며, 조간 신문이 대문 앞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많은 소리를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소리는 밤새 울려퍼지는 부부싸움 소리이다. 밤공기를 찢는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뒤이어 울려퍼지는 남자의 고함소리와 욕지거리, 어김없이 따라나오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부부싸움 소리는 내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배경음악이다. 몇 분 후 울려퍼지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땐 다들 암묵적으로 이 뒤에 ‘경찰차 소리’ 효과음 따위는 없는 것으로 합의를 봤었나보다.   


 

바로 옆집에 친한 친구가 있었다. 나와 동갑내기 친구였고, 나는 그 친구의 집이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그 애가 좋았다.

“엄마, 경미네 집은 왜 지붕이 둥글어?”

“엄마, 경미네 집은 방바닥이 울퉁불퉁해.”

“엄마, 경미네 집 화장실 똥통에 뭐가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어.”


경미네 집은 아버지가 여기저기서 주워온 건축 재료로 움막처럼 만든 비닐 하우스였다. 방바닥은 전문 미장이가 바른 것이 아니라, 나뭇잎 깔린 매트리스 위에서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공주님이 아니어도 누구든 자갈과 돌멩이, 모래 알갱이를 생생히 느낄 수 있을 만큼 거칠었다. 재래식 화장실은 널빤지로 얼기설기 세 벽을 둘렀기에 햇살 밝은 낮에 볼일을 보면 그 안의 구더기들이 기어나와 흙바닥 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경미네 집에는 개도 여러 마리 있었고 토끼도 많이 있었다. 내 눈에 그 집은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난 경미네 집에 놀러가는 걸 정말 좋아했었다.


경미 부모님의 얼굴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요즘 봤다면 중국인이라 해도 의심 없이 믿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생겼다. 옛날 중국 영화에 나오는 소수민족 중 그 누군가처럼. 경미의 아버지는 유리 자르는 일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닥치는대로 이일 저일 했던 것 같다. 경미가 아빠 일하는 곳, 이라 말했던 공간을 지금 떠올려보면 목재와 톱밥들이 많았고, 나중에야 알게 된 ‘대패’와 망치, 못들이 참 많았다. 내 생을 통틀어 엄마는 ‘누구랑 놀아라, 놀지 말아라’ 는 말을 거의 한 적이 없는데 가끔 한 번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경미네 집에 너무 자주 놀러가지마.”

라고 말하곤 했다.




어느 날 경미네 집에 불이 났다. 우리 집과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둔 건너편 집이라 그 불은 우리 집에 옮겨 붙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경미네 걱정을 하면서도 우리 집에 불이 옮길 걱정도 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저건 뭐지? 불이라고 한다고? 아주 뜨겁고 빨간색이군.’

경미가 발을 동동 구르며 불타오르는 자기네 집을 보며 울고 있을 때도 나는 경미가 왜 우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유를 묻진 않았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위로도 해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 불은 경미네 아버지가 지른 것이었다. 부부싸움 끝에 지른 불이라고 했다. 나는 부부싸움이 뭔지 몰랐고, ‘불을 지른다’는 게 뭔지도 몰랐다.


그 불 이후로 경미 네는 생활이 바뀌었다. 집안의 세간들이 싹 다 없어졌다. 군데군데 검게 그을린 이불만 몇 채 방바닥에 깔려있을 뿐이었다. 난 종종 경미네 집에 가서 밥을 얻어 먹었는데 어느 날부터 반찬이 하얀 무만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통닭을 시켜 먹으면 나오는 무였다. 그 때 나는

‘세상에 하얀 깍두기도 있나? 역시 경미네 집엔 신기한 게 많아!’

하고 그 깍두기를 뚫어져라 쳐다봤었다. 이 때부터 엄마는 내가 경미네 집에 가서 밥 얻어 먹는 걸 말렸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하는 말엔 항상 뒷받침 문장 없이 중심 문장만 있었고, 나는 이해도 공감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경미네 가족은 감쪽같이 동네에서 사라졌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 눈 뜨고 보니 경미네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후 그 타다만 비닐 거적 하우스는 모조리 철거 되었다.




내가 경미 네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의 일이다. 우리 동네의 밤샌 부부싸움 소리, 출동한 경찰의 사이렌 소리, 뉴스에서 종종 보고 듣는 부부싸움 끝의 살인과 방화가 나를 학습시켜 주었다.     


20대 중반 삼천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던 시절, 4학년 아이들과 장래 희망을 그리고 발표하는 수업을 하다가 어느 한 아이의 그림과 글씨에 눈길이 머물렀다. 축 처진 눈은 늘 슬퍼보였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했으며 항상 얼굴이 어두운 아이였다.

‘장래희망: 아빠’

이유를 물으니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아빠가 대체 얼마나 힘든 건지 한번 해보고 싶어서요.”

스치듯 지나간 짧은 인연이라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으나 이 아이의 말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2013년 서른 한살의 나이에 집 앞의 모교로 발령을 받았을 때, 나의 머리 속에는 6년 간 기간제 교사를 하며 만난 수많은 결손가정과 그 안의 아이들, 그들의 문제 행동이 데이터화 되어 구축되어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어둡고 거친 곳임을 아이들을 가르치기 전까진 잘 몰랐다는 게 놀라웠고 새삼 내 삶에 감사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살아온 세상도 충분히 거칠고 어두운데 이보다 더한 곳도 있더란 말인가, 하는 암울한 절망감도 있었다.   

 

23년 만에 다시 등교한 모교에서 나는 재미있는 걸 느꼈다. 내가 살지 않았던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나는 이른바 ‘문제아’들을 보며 어렸을 때 동네 오락실 앞에서 보았던 두더지 잡기 게임기를 떠올렸다. 갑자기 내 삶에 툭 튀어올라온 그 두더지들은 도저히 때려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망치를 내려쳐도 그 두더지들은 이미 구멍 안으로 숨은 뒤였다.


허나 3주 이상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평생 살아온 동네의 모교에서 만난 문제아들은 달랐다. 그들은 나에게 풍경화였다. 유화 물감으로 그린 그 풍경화는 이미 완성작이긴 했지만 어딘가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다짜고짜 함부로 손댈 수는 없는 그 그림을 보며 나는 알았다. 이 하늘에 이 새가 왜 그려져 있고, 이 배경에 이 나무가 왜 서 있으며, 이 나무에 이 잎이 왜 달려있는지를. 나는 그 풍경이 이해되고 공감 되었다. 이 나뭇가지가 잘못 그려져 그림 전체를 망치고 있다면 그게 어디서부터 왜 잘못 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할 때 하얗게 텅 빈 캔버스부터 지켜본 사람이었으니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건 굉장히 중요한 느낌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수정의 덧칠이나 파냄을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엄청난 자신감과 용기, 애정, 계획을 가지고 신중하면서도 거침없이 해야 했다. 완성된 유화를 수정해나가는 느낌, 새로 그리다시피 수정한 기억, 이것이 모교에서의 나의 첫 정교사 생활이다.


하지만 나는 또 안다. 내가 그 그림을 수정한 것 같지만 사실 나 역시 그 그림 안의 풍경이었다는 것을. 나는 밤하늘의 작은 별 중 하나이기도 했고, 흐린 날의 잿빛 먼지이기도 했으며, 비 오는 날의 고개 떨군 풀잎이기도 했다. 맑은 날의 기분 좋은 풍뎅이였을지도 모른다. 그 5년간의 동산동 풍경화에 그렇게 나를 넣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곳을 떠나왔다. 나는 5년 만기가 차, 학교를 옮겼고, 오래도록 벼르던 독립을 하며 평생 살아온 동산동을 떠나 새로운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또다른 누군가가 이 그림을 수정하기 위해 붓을 들었을 것이다. 내 그림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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