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스위머스 유럽 투어 일지 #15. 마지막 공연
지난 24시간 동안 겪은 온갖 일들이 아스라하게 느껴질 만큼 긴 하루가 저물어갈 때 즈음, 우리는 마지막 공연을 하기로 한 세인트 모리츠 클럽으로 향했다.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무대가 있는 오래된 클럽이었다. 1960년도에 문을 연 이 클럽은 저녁에는 밴드들의 라이브를, 밤부터 새벽까지는 클럽 음악을 트는 펍이기도 했다. 런던 시내의 한 복판인 소호의 지하에 있는 세인트 모리츠 클럽에서, 우리는 클럽의 엔지니어이자 프로모터인 마크를 만났다.
세인트 모리츠 클럽 St. Moritz Club
우리는 리허설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앞 팀의 리허설이 지연되고 있었다. 베이시스트와 드러머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베이시스트는 전화도 안 받는다고. 마크는 어느 밴드건 베이시스트들이 문제라며, 스위머스는 인간 베이시스트 대신 맥북을 선택했으니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위 사진에서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검은 옷, 흰머리의 남자가 마크다.
그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에는 그에 대한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자기가 먼저 연락해서 섭외했으면서 연락 회신도 늦고 우리에게 관객 동원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고 묻는 등 건조하고 사무적인 태도와 무례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막상 만나보니 그는 시니컬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영국식 유머를 쏟아내는, 나름의 방식으로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관객 동원에 대해 묻는 것을 보고 우리에 대해 알아보거나 우리 음악을 제대로 듣지 않고 아무렇게나 연락을 한 것 같다고 느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본래 4팀이 서기로 했던 공연 리허설을 우리까지 두 팀 밖에 참여하지 않길래 물었더니 나머지 두 팀은 음악과 연주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고 다른 클럽들에서 일주일에 몇 번씩 공연을 하는 팀이길래 공연의 퀄리티 컨트롤을 위해 뺐다고 했다. 밴드 입장에서 공연을 자주 하는 것이 좋기야 하겠지만 당장 어제도 지척에 있는 클럽에서 공연한 팀을 여기에 또 세우고 싶지는 않았다고. 자기가 만드는 공연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스위머스와 로젠 두 팀만 공연을 했다.
사실 내가 가장 감명을 받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어느 뮤지션을 좋아하느냐는 마크의 물음에 이런저런 이름들을 대다가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을 말했더니, 그는 이언 커티스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세인트 모리츠 인근에서 이언이 디제잉을 하곤 했다고. 그때 뭔가 둔탁한 걸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쉽게 우상을 만들지 않는 타입인데도 내가 수도 없이 듣고 사랑한 밴드와 동시대를 같은 공간에서 보낸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좀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조이 디비전이 맨체스터 씬의 영웅이다 보니 그들의 흔적을 런던에서 마주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이렇게 불시에, 무방비상태로 이언을 알고 지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곧 무척 설렜다. 런던을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이제야 비로소 내가 락의 본고장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무대 The Last Stage
이번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딱 마지막 공연다웠다. 베를린에서 엄청난 긴장상태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고 묵직한 기분으로 끝냈다면 이번에는 한결 힘을 뺀 채 작고 아담한 무대에서 우리끼리 여태까지 지나온 공연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느낌이었다. 공연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데,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니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던 사람들도 잔을 들고 무대 앞으로 비척비척 다가왔다.
우리 뒤에 공연할 로젠이 팬덤이 좀 있다고 들었다. 그 팀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노래들 중에서도 강하고 빠른 곡이 나오면 관객들이 더 좋아하는 느낌이었다. 로젠은 랩과 락이 섞인, 린킨 파크와 림프 비즈킷이 혼재하는 듯한 음악을 하는 팀이었다.
세인트 모리츠가 유서 깊은 클럽임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것은 공연환경이었다. 그렇게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무대 모니터와 하우스 소리가 둘 다 최적화되어 나오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마크는 자기가 운영하는 클럽의 사운드 시스템을 완벽하게 꿰고 있는 엔지니어였다. 근사했다.
Woodstock으로 영국에서의 마지막 연주가 끝났다. 기분이 조금 묘했던가. 후련한 마음도 있었던가. 아쉬움이 진했던가. 3주 간의 여정이 끝났다는 사실이 사실은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 마크는 스위머스의 음악에 대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플라시보(Placebo), 뮤즈(Muse)가 느껴지는 음악이라고 했다. MBV나 플라시보는 내가 많이 좋아하니까 그럴 수 있다 쳐도 뮤즈는 상당히 의외였다. 그래도 기뻤다. 신기하게도 마크는 MBV는 잘 알았지만 슬로 다이브는 모른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는 끝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하기로 했다.
차이나타운 뒤풀이
켄 코바야시는 팀장님의 지인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음악을 하는 일본계 뮤지션이다. 신기하게도 활동 씬은 런던인데 음악 스타일은 일본의 인디음악 씬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스위머스의 지난번 브릭 레인 공연 때에 와주어서 서로 인사하고 통성명했는데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라는 얘기를 듣고 한 번 더 공연을 보러 왔다. 우리는 켄과 켄의 친구, 그리고 민지와 함께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켄이 우리를 차이나타운으로 안내했다.
신기해하며 차이나타운을 걷는 우리에게 켄은 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의했다. 팀장님을 비롯해 우리 모두가 뜬금없이 차이나타운에서 기념사진이라니 너무 관광객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우리는 사진을 찍게 되었다. 게다가 사진 장비를 잔뜩 들고 지나가던 관광객 한 분이 촬영을 해주겠다며 선뜻 나서 주어서 우리 모두가 한 프레임에 담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중식 레스토랑에서 배가 부를 때까지 음식을 먹었다. 나중에는 켄의 영국인 친구 두 명이 더 와서 합류했고 우리는 켄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 살사 클럽에 가서 살사댄스를 약간 배우고 숙소로 돌아갔다. 좋은 마무리, 색다른 경험이 있던 뒤풀이였다. 그래도 역시 낯선 사람들과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소진시키는 일이었다. 나와 멤버들은 공통적으로 낯가림이 심하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켄이 이 사진을 SNS에 올린 다음날 저녁 우리 팀에는 어떤 불화가 생겼다. 쉽게 말해 또 싸웠다. 발단은 사진 속 내가 선웅이와 팔짱을 낀 모습에 선웅이의 예비신부가 화를 낸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나는 당황했지만 선웅이의 여자친구가 내게 직접 연락했을 때 군말없이 사과했다. 내게는 별 일 아닌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별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사과하는 것으로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선웅이와 나 사이에서 여태 쌓여온 묵은 감정들이 크게 번졌다. 나는 애인 사이 다툼에 내 탓을 하는 선웅이에게 말을 쏘아붙였고 선웅이는 화가 난 채 불쑥 숙소를 나가버렸다. 런던 시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테러가 났다는 속보가 뜬 밤이었다. 그렇게 나가버린 선웅이는 몇 시간 동안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아 한국에 있는 애인까지 모두가 걱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히 무사히 돌아오긴 했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 꽤 크게 벌어진 상처였고 오래 갈 흉터로 남았다.
늘 함께 있다가 멀리 떨어지게 된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예민해질 때가, 느닷없이 가깝게 붙어 지내게 된 사람들은 서로의 단점들이 크게 보일 때가 되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가까이 지내는 것 역시 서로에 대한 오해를 커지게 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나도 한국에 남겨두고 온 사람들이 많이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