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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치 Aug 23. 2017

음악은 유럽을 흔들고, 유럽은 나를 흔들고 #7

밴드 스위머스 유럽 투어 일지 #7. 런던 공연들

단기간 동안 매일같이 공연을 하니 이 투어에도 어떤 기의 흐름이 존재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자니 너무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이미지에 부역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다소 부끄럽지만 사실 나는 그런 것을 다 믿는 사람이 맞다. 기, 에너지, 풍수지리, 뭐 그런 것들. 투어가 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긴 했지만 오르락내리락하는 흐름이 분명히 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게 치른 첫 공연 이후 이어진 두번째 세번째 공연은 우리팀에게 일종의 내리막길이었다. 관객은 첫공연보다 훨씬 많았지만 에너지가 달랐다. 나는 카페1001에서의 공연에서 최저점을 찍었다. 힘든 공연들이었다.




뉴크로스 인 New Cross Inn

뉴크로스 인(New Cross Inn)에서의 공연 라인업은 우리와 제이제이 드레이퍼(JJ Draper), 스테파노(Stefano), 엉클 웰링턴(Uncle Wellington), 그리고 또 다른 한국팀인 더 모노톤즈(The Monotones)까지 다섯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공연 당일 오전까지도 전체 라인업을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네 팀이 공연한다고 들었는데 여러번 변경사항이 생겼던 것 같다. 뭔가 불안하더니 결국 전체 공연 역시 한 시간 넘게 지연되었다.


이렇게 외국에 나오면 현지 뮤지션들이나 다른 나라에서 온 뮤지션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에 가장 신나야 하는데 나는 모노톤즈와 함께 공연한다는 사실에 더 신났다. 내가 어릴 때부터 기타리스트 차차를 좋아했던 탓도 있지만 영국에 온 지 고작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낯선 땅에서 한국 팀을 만난다는 사실에 어떤 위로를 느꼈던 이유가 큰 것 같다. 게다가 모노톤즈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을 멋진 밴드니까.




일종의 여인숙이라고 볼 수 있는 뉴크로스 인이 있는 지역은 런던의 남쪽 외곽이다. 뉴크로스 역 가까운 곳에 대학교가 있어 학생들이 많이 돌아다닌다는 것이 장점이긴 한데, 동네 자체는 한국의 청량리 역 인근의 분위기를 닮아 있었다. 위험에 노출되기 다소 쉬운 동네 같은 느낌. 공연장은 뉴 크로스 인 1층에 있었다. 창문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무대가 들여다보인다는 것이, 그리고 나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연주한다는 것이 새로웠다.





우리가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다른 팀 멤버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없는 사람은 기획자와 엔지니어 뿐이었다. 기획자야 그렇다쳐도 엔지니어 없이는 무엇도 시작할 수 없다. 우리는 리허설 없이 간단한 사운드체크 뒤에 바로 공연을 시작해야 한다고 사전 안내를 받았었다. 하지만 엔지니어가 아예 나타나지 않으니 악기 셋업조차 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때 같이 공연하는 다른 팀 중 JJ Draper의 밴드에서 베이스 세션을 하고 있는 로버트가 다가와 엔지니어가 올 때까지 놀고 있으라고 조언해주었다.




로버트는 매우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엔지니어가 나타나지 않아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 우리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챙기기도 하고 술을 권하고 말을 걸기도 해서 처음에는 프로모터나 매니저인 줄 알았다. 그는 나중에 우리 공연이 끝난 뒤 베이시스트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면서 필요하다면 자기가 베이스를 쳐주겠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우리가 영국에 다시 올 때 연락하겠다고 했다.


예정된 시작 시간을 거의 1시간 가까이 넘기고 나서야 엔지니어가 나타났다. 어딜 다녀왔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가 오고 나서야 악기 셋업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정신없이 무대에 올라가 부랴부랴 모니터만 겨우 체크하고 공연을 시작해야 했다. 무명밴드들이 마음같지 않은 환경에서 충분한 준비시간 없이 공연해야 하는 것은 어느 나라를 가도 똑같은가 하는 생각을 이 때 했던 것 같다.




무대의상

나는 거창한 무대의상이 음악을 가리는 것이 싫었다. 뚜렷한 색깔과 목적이 있는 대형 행사가 아니고서야 우리 구역이나 마찬가지인 라이브 클럽들에서 공연할 때는 특히 더 그랬다. 음악만 좋으면 옷이야 어떻든 무슨 상관이냐는 마음, 어쩌면 순진한 치기였을까. 이번 투어를 준비하면서는 관점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스위머스는 한국에서도 그닥 유명한 밴드가 아니지만 그래도 홍대에서 공연을 하면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알고 왔다. 영국에서는 아마도 우리를 알고 보러오는 관객들은 없거나 소수일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음악 외적인 요소들까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상관있다고. 안 그래도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의 외모를 어리게 보는데 처음부터 어린애들의 스쿨밴드나 그저그런 동네 신인밴드처럼 보이긴 싫었다. 그래서 출국 전에 평소에는 안 입을 옷 쇼핑을 했다. 너무 요란하지는 않은, 하지만 준비된 모습을 위하여. 그리고 이 태도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쭉 가져갈 수 있을것 같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굉장히 간단한 사실을 너무 어렵게 인정한 것 같기도 하고.







공연 SHOWTIME

뉴 크로스 인에서 공연할 때 가장 낯설었던 것은 사실 관객들의 성격이었다. 영국은 밴드 공연이 한국보다 훨씬 일상에 퍼져있어 이런 무대가 갖춰진 펍들이 많은 거겠지. 문제는 이렇게 무대가 갖춰진 펍에서 공연이 열려도 펍은 똑같이 영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연을 보러 온 사람과 술을 마시러 온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우리같은 밴드가 연주하는 노래들은 술을 마시고 떠드는 데에 그닥 좋은 배경음악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과, 눈길도 주지 않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모두 앞에서 우리는 연주했다.  



망상(Shalla), 그리고 우드스탁(Woodstock)










공연 이후 After the Show

우리는 첫번째 순서로 공연을 끝내고 약간 홀가분해진 채로 남은 공연들을 보았다. 수리야에서 한 공연 때 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아 떠들썩하고 제법 금요일 밤 같은 느낌이 났다. 나와 멤버들은 뭔가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나는 벨기에 출신 밴드인 엉클 웰링턴의 첫번째 노래가 좋았다.

 


이어지는 다른 팀들 공연 중간중간 밖에서 팬들과 모노톤즈 일행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근처에 있는 골드스미스 대학에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관객들이 꽤 많이 보였고, 개중에는 스위머스 음악을 좋아해서 공연을 보러 왔다며 인사를 건네는 학생도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만난 한 여자분은 본인이 케이팝을 좋아하다가 케이인디(K-indie)로 넘어가 모노톤즈와 스위머스 음악을 들었다며 공연을 보게 되어 기쁘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모노톤즈 멤버들과 매니저님으로부터는 그 팀의 투어 얘기를 간단히 들었다. 우리와는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지난 공연은 어땠는지,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그리고 모노톤즈가 무대에 오른 뒤, 공연을 절반 정도 보다가 막차 시간이 되어 우리는 먼저 공연장을 떠났다. 우리는 리버풀에서 재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 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영국에 와서 짐을 끌다가 처음으로 넘어졌고 다음날부터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선웅이는 내가 발목이라도 부러뜨리면 투어가 엉망이 될텐데 몸조심하지 않는다며 내게 화를 냈다.

 


 





Ten Zero One 25.05.17

다음날 공연은 브릭레인의 CAFE 1001. 이 날 공연은 너무 나빴다. 이 공연은 하기까지에도 너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공연 수요가 많은 브릭레인의, 러프 트레이드와 같은 건물에 있는, 좋은 위치의 좋은 클럽이라 처음 공연이 잡혔을 때 팀장님과 멤버들 모두가 몹시 기뻐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드럼 키트를 준비할 수 없었고 기타 앰프와 베이스 앰프까지 전부 출연 밴드들이 알아서 공수해야 했다. 심지어 중간에 있는 공연 기획자는 거의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고 밴드들끼리 직접 소통해야 했다. 팀장님과 나는 번갈아가며 다른 팀들과 이메일로 어느 팀이 무슨 악기를 공유할 것인지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중간에 한 팀이 사정이 생겼다며 라인업에서 빠지게 되면서 또 그 팀이 가져오기로 했던 악기를 새로 공수해야 해서 더 일이 꼬였다.


가장 중요한 드럼 키트 공수는 공연 바로 전날이 되어서야 겨우 해결되었다. 어쨌든 해결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한시름 놨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공연장에 가보니 다른 팀들이 구해온 기타 앰프의 출력과 사운드가 모두 함량미달이었다. 더군다나 스위머스는 마지막 순서였고 우리 앞에는 남자 멤버 네 명이 모두 기타를 한 대씩 매고 일렬횡대로 서서 유일한 여자 멤버인 드러머를 온통 가린 채 비틀즈를 심하게 연상시키는 노래들을 떼로 부르며 무대를 휘젓고 관객들을 들썩이게 하는 밴드가 나왔다. 그렇게 격동적인 밴드 뒤에 공연을 하게 되면 보통 무대와 앰프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하지만 환경이 어땠다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모두 핑계에 불과하다. 내가 공연을 못했다. 신경이 곤두서고 화가 난 상태로 무대에  올랐고, 공연이 마음을 다스려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공연으로 마음을 다스릴 생각을 하는 것은 오만이었다. 공연은 그를 위해 내가 마음을 준비해야 하는 의식이다. 그걸 잊고 올랐던 이 날의 무대를 후회한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밴드는 더 프레이즐리 데이즈다. 헤어스타일도 존 레논 같은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영국인들에게 비틀즈와 오아시스란 뭘까.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 밴드 이름 철자를 참 못쓴다. 아무리 영어 못 하는 동양사람들이라고 해도 공식적인 이름으로 쓰는 스위머스의 i 두 개를 오타로 적어놓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좀 너무 얕보는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본인들이 무심코 실수를 한 건데 그건 그거대로 나쁘다. 아무리 헷갈릴 법 해도 그렇지. 우리 이름 스위머스 Swiimers는 의도적으로 i가 두개고 m이 하나다. 나는 이 철자를 틀리게 적는 클럽들은 인종차별을 하고 있거나 프로답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는 이 날에 대해 아직도 화가 나있는 것 같다. 



공연을 엉망으로 했는데도 끝까지 보고 박수쳐준 한 무리의 관객들이 고마웠다. 라벤더 힐스의 베이시스트 에이드리안은 자신들도 다음날 뉴크로스인에서 공연이 있다며 놀러오면 술을 사겠다고 했다. 같이 공연하는 다른 팀의 베이시스트들이 자꾸 우리 밴드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것을 보니 왜 한국에서는 베이시스트 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싶었다. 스위머스는 셋이 좋아서 셋이다. 그렇지만 베이시스트는 좀 신 포도 같다. 어차피 못 구할테니까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이제 곧 리버풀로 떠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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