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우리는 정답이 정해진 문제에 대해서만 배웠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보니 정답은 없었다.
세상에는 정답이라는 단어로 치부되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그러나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제 각기 다르며 그 정답 또한 다르다는 것을 서른 무렵이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문제를 받았을 때 고심을 하고 이것이 맞는 것일까 수많은 시간을 고민과 걱정이라는 감정에 지배되어 정답을 찾아 헤매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미 정답은 마음속으로 정해졌다는 것을. 다만 그 길이 맞는지 확신을 얻고 싶어서 주변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은 걱정 안 했으면 좋겠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으니 그 길을 당차게 걸어갔으면 좋겠다. 설혹 그 길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정답이 아니면 또 어떻겠는가. 그렇게 또 하나 배우면 되는 것을. 아니면 자신이 가는 길을 정답을 만들어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퇴사한다고 말했을 무렵 주변사람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많았던 것은 "굳이 왜 나가려고 하나.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고 지금까지 한 것이 아깝지 않냐고 말했다. 가만히만 있어도 진급도 당연한 것이고 높은 자리까지 무던하게 갈 수 있을 텐데 왜 그런 안정된 길을 놔두고 험난한 길을 갈려고 하냐. 그 길은 지금 와 같은 명예와 직급 등을 고려했을 때 다운그레이드 되는 것인데."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다.
그때의 순간에는 그 말이 진정으로 나를 위한 말을 한 것임을 알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그 사람도 그 길을 말고 다른 길을 가보지 않았기에 마음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후회를 하더라도 스스로 하고 그리고 그 책임 또한 스스로가 진다. 나의 인생은 주체적으로 살아가자"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것이 정답일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보지 않은 사람의 조언에 휘둘리기는 보다는 직접 그 길을 걸어보고서는 경험하고 싶었다. 그러고 후회하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정형화된 커리큘럼에 따라 단조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대학을 잘 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서 자격증과 스펙을 쌓고 그렇고선 결혼이라는 종착점에 다다른 모습. 그런 획일화된 틀에서 벗어나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진취적이고 자발적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는 것이 많은 경험 후에 깨달았기에 때문이다.
비워진 인생의 빈칸을 스스로 완성하는 것이다. 자기의 인생에 점수를 메겨보며 답안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정답은 한자로 보면 바를 정, 답할 답을 표기한다. 그러니 본인의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가장 올바르게 선택하면 되지 않을까.
『나무는 살기 위해 가지에 달린 잎을 떨어트린다. 그렇게 뾰족하게 나뭇가지만 자리 잡는다.
나는 살기 위해 마음에 문을 닫는다. 그리고 가시 박힌 말들을 내뱉는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저 앙상히 나뭇가지만 남은 나무처럼 볼품이 없을지라도 이것은 명백히 삶에 대한 도전이다. 인생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지나가는 한 모퉁이며, 하나의 여정에 불과한 것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