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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Aug 19. 2019

'아버지' - 「아버지와 된장국」

회사원이 퇴근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문자를 보내셨다

  우리 아버지도 아들처럼 회사원이셨다. 키가 크고 어깨가 쓰기 싫은 기획안 자간만큼 넓으신 아버지는 정장이 아주 맵시 있게 어울리는 영업맨이었다. 그가 회사를 다니던 시절은 상상도 하기 싫은 주 6일제의 시대였으며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회식 때마다 폭탄주를 물처럼 들이켜야 하는 원시의 우림이었다. 지옥의 열탕과도 같았던 그 시간을 아버진 목을 꽉 옮아매는 넥타이와 파리도 미끄러질 만큼 잘 닦은 구두를 신고 의연하게 지나오셨다. 아버지들이 아들딸들을 보며 나약하다고 혀를 차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빠 왔다."라는 말에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나가면서 나는 회사원을 동경했다 그러면서 회사원은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동경은 가족을 양 어깨에 짊어매고도 힘든 내색 하나 않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동시에 그 등에 가려진 조직에 속한 자의 고단함, 조직이 기대한 바를 충족해야 하는 부담감을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이제는 회사원이라는 멍에를 벗으신 아버지는 그 길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는 회사원 2세가 항상 안쓰럽다. 회사원 아들은 어깨에 고작 자기 몸 하나 얹어놓은 것이면서도 세상 무거운 것을 짊어진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가 보기에 2세는 여전히 부족하고 또 어리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1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는 법이니까.

  

  퇴근이 가까울 때마다 아버지가 밥 먹었냐는 문자를 보내는 것은 그래서였다.




  아버지와 된장국


  1.

  "오늘 늦나 저녁 안 먹고 오제"

  

  미치도록 더디게 가는 시계에 대한 원망이 커지고 있을 때쯤 카톡이 울렸다. 책상 위에 엎어놓은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진동에는 색깔이 없지만 핸드폰이 몸을 떠는 순간 누가 보낸 것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버지였다.

  

  장성한 아들이 퇴근을 할 때쯤이면 아버지는 항상 한 통의 카톡을 보내온다. 글자도 띄어쓰기도, 담백한 문장에 담긴 경상도 사내의 쑥스러운 애정까지도 한결같이 똑같은 문자. 사내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의 답변 역시 한결같다. "어."

  

  당신이 차리는 저녁상도 아니건만 아버지는 항상 묻는다. 사실 이 담백한 카톡엔 저녁을 차리느라 고생하는 아내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다. 오늘 늦나, 저녁 안 먹고 오제 는 바꿔 말하면 늦으면 말해라, 저녁 안 차리고로 인 것이다. 아버지는 11자 짧은 카톡으로 아들에 대한 염려를 드러냄과 동시에 사랑하는 마누라가 행여나 필요 없는 수고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목적을 동시에 달성했다.

  

  한편으론 가장의 자리를 이제는 물려주어야 하는 아버지의 안쓰러움을 나는 카톡에서 읽는다.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도열한 현관문을 개선장군처럼 통과하던 사내는 이제 반대로 지친 표정으로 현관문을 들어서는 아들을 맞이하는 자리로 내려왔다. 가족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했던 그의 어깨에는 사실 얼마나 무거운 가장의 책임감이 짊어져 있었을까.

  

  아버지는 오늘도 "오늘 늦나, 저녁 안 먹고 오제"라며 당신의 자리를 물려받을 아들에게 가장의 짐을 승계하는 미안함을 넌지시 건넨다. 이제는 당신과 똑같은 표정으로 웃는 아들과 30년 넘게 같은 이불을 덮는 색시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이 짧은 문자가 그래서 나는 좋다.

  


  2.

  "니는 안 먹어봐서 모린다."

  

  여기서 니는 나다. 내가 먹어보지 못한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음식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할머니의 전성기 때 음식 솜씨를 말한다. 어릴 때 우리 집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니 그분의 음식을 왜 먹어보지 못했겠냐마는 '할머니의 전성기'로 내가 닿을 수 없는 시간을 전제함으로써 반론을 원천 차단한다. 아버지 말이다.

  

  아버지에게 음식의 이상향은 할머니의 (전성기 때) 음식이다. 음식이 요리로서 도달할 수 있는 절대적 지향점에 할머니의 음식이 있다. 각종 식재료는 할머니의 도마 위에서 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각자의 본질을 깨우칠 수 있다.

  

  "기가 멕히지. 동네 사람들이 다 놀랠 정도였다니까? 오죽하면 인물 댁, 인물 댁 했겠나."

  

  미와 지성, 음식 솜씨까지 모두 갖춘 할머니를 동네 사람들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인물 댁'이라 불렀다. 걸출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얼큰하게 술이 들어가는 날이면 아버지는 으레 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추억을 우리에게 풀어놓는다. 이때 아버지의 눈빛은 아련함으로 가득하다. 술안주로 내온 엄마의 음식이 맛있으면 맛있을수록 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고 찬양은) 더욱 커진다. 이제는 먹어볼 수 없는 음식이기에 아버지는 회상하고 회자했다.

  

  2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유서 깊은 양반 댁의 장남과 큰 며느리의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부모 자식 간의 잔정을 받은 적이 없다고 종종 서운함을 토로했다. 받지 못했던 애정을 갈구하듯 아버지는 자주 추억 속에서 희미하게 남은 사랑의 기억을 길어내려 했다. 할머니의 음식이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혀와 기억에 각인된 할머니의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가슴에 응어리진 결핍을 메워보려 하시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니네 엄마 음식 솜씨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추억담의 끝엔 마누라에 대한 칭찬을 넌지시 끼워 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럴 때 보면 우리 아버지는 아주 능글맞으시다.

  


  3.

  아버지도 몸소 음식을 하신 적이 있다. 모처럼 동창들을 만나러 나가신 엄마가 예상 귀가 시간보다 늦겠다고 전했다. 예상치 못한 통보에 잠시 당황한 형제는 황급히 중국집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때 아버지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한마디 하셨다.

  

  "댔다, 놔둬라. 된장국이나 끓여 묵지 뭐."

  

  나는 침착하게 집에는 끓여진 된장국이 없다는 사실을 알렸으나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니 내 음식 잘하는 거 모르제?"

  

  모른다. 정말 몰랐다. 믿을 수도 없으니 관두시라고 말리는 아들의 말에도 아버지는 개의치 않는다.

  

  "음식은 말이지. 달면 안 되는 기다."

  

  음식에 대한 지론까지 설파하실 정도로 흥이 나신 아버지. 그날 아버지가 완성한 된장국은 날 것 그대로의 음식이었다. 달지 않았지만 매웠고 감칠맛까진 도달하지 못했어도 칼칼한 매력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날 된장국에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면 과장일 것이다. 모처럼 가사를 손에서 놓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담았다면 애틋하긴 할지언정 간지러운 해석일 테다. 하지만 그날 숟가락에 미처 다 올라가지도 않을만큼 커다랗게 두부를 썰어 넣은 된장국엔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경상도 사내의 애정이 담겨 있었다.

  

  "봐라, 맛있제?" 된장국에 김치, 밥으로 허기진 배를 허겁지겁 채워 넣는 형제를 보고 아버지가 씩 웃으며 물었다.

  

  "좀 짜다. 그래도 맛있다." 사내의 아들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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