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의 가을은 제주에 있었다
완성의 계절, 성숙의 계절, 과일이 익고 벼는 추수를 기다리며 익어 떨어진 은행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방학 내내 게으름과 태만으로 노릇노릇하게 익은 채 돌아온 학생들이 단체로 고통받는 계절. 회사원도 가을을 맞는다.
너, 가을아. 아주 짧게 머물다가 툇간 늙은 주인처럼 눈치 보며 물러갈 환절기야. 높고 공활한 가을 하늘 아래를 걸으며 출근하기란 다른 3계절보다 특히 어려운 일이다. 붉게 물든 단풍이 하늘께 깔린 양탄자처럼 회사원에게 일탈을 권유하지만 우리는 이를 꽉 깨문 채 기어이 회사에 당도한다. 자꾸만 옆길로 새는 마음을 재우쳐 출근하는 일이란 어찌나 힘든지. 가슴속에 품은 사직서가 우물 속의 돌처럼 웅웅거리며 진동한다. 품에서 꺼내 던지기만 해. 저 하늘과 불타는 산과 숲이 모두 네 것이 될 테니. 돌아오는 카드 값은 잠깐만 잊자. 모이를 기다리며 입 벌린 자식들도 오늘만은 마음속에서 죽이자.
그러나 될 말인가. 우리는 오늘도 그저 묵묵히 회사로 돌아간다.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내일을 맞기 위해서. 존재감을 남기며 산화한 은행 파편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회사원은 회사가 아닌 곳에서 가을을 맞았고 이에 감사했다. 이 날 우리의 가을은 제주에 있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제주에서 돌아오고 난 뒤, 나는 얼마간, 그리고 분명하게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왕복 16차선이나 되는 도로도, 그 위를 빽빽하게 채운 차들도, 그 차들이 동시에 빚어내는 혼돈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눈에 익은 건물들도 유독 잿빛으로 보였고 가로수 이파리도 어딘가 탁하게 느껴졌다. 30여 년을 살았는데 겨우 며칠의 외유로 이토록 어색해지다니. 이상하고 허세스러운 이야기다.
그러나 정말이었다. 지금 내리는 비만큼이나 리얼하게 와닿는 실제였다.
눈을 감으면 제주의 정적이 다가오는 듯하다. 이곳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까만 정적이 제주에는 있었다. 리조트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길에도, 눈이 시리도록 하얀 안개가 내려앉은 마방목지에도 정적이 가득했다. 고막을 터트릴 듯 세찬 바람이 불던 섭지코지의 언덕 위에도 바람이 빚는 정적이 있었다. 부드럽게 서로 몸을 비벼대는 억새의 정적에 나는 자연스레 눈을 감지 않았던가.
그러나 감았던 눈을 뜨면 이곳 여기저기에서 의미 없는 소음이 귀를 찌르듯 치고 들어온다. 이 소음이 일상이고 정적이 비일상이어서 나는 다시 익숙해질 수가 없다.
지금 내리는 이 비에 정적 깃들길.
제주 여행이 끝이 났다. 다시 일상으로 내던져진 이 지점에서 나는 여행의 처음을 회상하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좀 더 유예한다. 비는 아직 그칠 기미가 없다.
가을에 사람들은 조금 허둥대는 것 같았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가볍게 벗지도 두텁게 걸치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높다란 하늘에 선선한 바람을 기대하며 밖으로 나선 사람들은 살갗에 닿는 한기에 움츠러들었다. 겨울은 길 위 곳곳에 잠복한 채 기세를 세울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 오래 보지는 않을 것이다. 겨울은 연약한 - 자신의 영역조차 지키지 못하는 - 가을을 침범하고 유린하고 정복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가을은 저 강대하고 오만한 여름을 점령하는 중간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물러간 여름이 다시 득세하여 이 몸이 물러가야 할 때 나타나는 연약한 봄과 같이. 가을도 하나 다를 것 없었다.
그러니 겨울이 코앞이었다. 이것을 가장 민감하게 포착한 이는 상인들이었다. 이미 쇼윈도에는 거위와 오리 털로 채운 패딩 제품들이 마네킹 위에 걸리고 있었다. 가을이 되자마자 백화점과 쇼핑몰에는 '시즌 오프 세일'이 내걸리고 깃발처럼 나부꼈는데 그들이 끝을 얘기하는 시즌은 여름이 아니라 가을, 추락(Fall)의 계절이었다. 가을 동안 입을 만한 적당한 수준의 울로 짜인 카디건과 조금 부족한 양의 모직이 쓰인 재킷은 이미 매장 한구석으로 내몰린 채 비참한 심정으로 모여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의류 기업의 가장 대목은 겨울이었다.
하지만 제주의 가을은 달랐다.
오랜 시간 득세했던 여름이 서서히 자리를 내어줄 때 가을은 성큼 다가와서 진득하게 오래 머물렀다. 가을은 그녀와 함께 다니는 내내 제주에 있었고, 우리와 있었다.
제주 여행을 계획하면서 내 관심은 모조리 제주의 도로를 향해 있었다. 제주에 와서 반드시 즐겨봐야 한다고 얘기된 도로들을 나는 기억해 두었다. 빛이 바래가는 초보 운전 딱지와 3,000킬로미터를 향해가고 있는 미터기가 자신감을 북돋아주었다. 제주의 길은 아마 서울보다 쉬우리라.
렌터카 업체는 당연하게도 똑같은 위치에 발전하지도 퇴보하지도 않은 서비스 정신을 가지고 그대로 있었다. 노란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생초보 병아리 운전자는 석 달 만에 제법 엑셀 좀 밟을 줄 아는 - 안다고 자신하는 - 장닭이 되었다. 붉은 벼슬을 제주 바람에 휘날리며 윤기가 자르르한 부리를 날개깃에 슥슥 문질러 닦고 엑셀을 가볍게 밟았다.
'부아앙-'
살짝만 밟아도 휙 튀어나가서 식겁했던 쏘울을 다시 탔지만 그때만큼의 가속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꾹 눌러주어도 좀처럼 속도가 안 붙어서 여행 내내 불평했다. 사실 차는 그대로인데 병아리에 벼슬이 달렸을 뿐. 석 달의 운전 경험 후 건방이 하늘을 찌르게 된 드라이버. 쿨하게 초보 스티커도 붙이지 않았다.
제주의 길 위엔 가을이 가득했다. 바닷가에 난 해안 도로는 수평선을 향해 쭉 뻗어 있었다. 반쯤 의심하며 언덕을 달려올라 가면 길은 바다에 미치지 못하고 홱 틀어져 다음 수평선으로 향했다. 오른발은 어느덧 쏘울의 액셀러레이터를 밀어붙이는 감각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좀 더 밟으면 에메랄드빛 해안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그때마다 길은 다음 바다로 조바심 난 마음을 이어주었다.
제주의 오름은 아주 완만한 경사로 다소곳하게 솟아있었다. 흙먼지 이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발을 옮겼다. '용눈이 오름'의 입구는 나무 기둥을 땅에 나란히 박아 넣고 좌우로 왕복해야 들어갈 수 있는 형태였다. 아마 말이나 소가 문이 열린 틈을 타 빠져나가는 일이 없도록 한 모양인데 회전문과 자동문에 길들여진 서울 사람은 이 투박한 입구가 신기했다. 아무런 의미도 상징도 없이 '용눈이 오름'의 문은 그저 목적성만을 가진 채 담담하게 서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을 잠시 오르자 말들이 나타났다. 도시 사람은 말이 신기하다. 이토록 큰 네발 동물은 절대 도시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입마개를 단단히 씌운 대형견이나 시각장애인의 곁을 의젓하게 지키는 갈색의 레트리버도 말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말은 채이기만 해도 죽음을 마주하게 될 막강한 뒷다리를 땅 위에 박고 서서 늘어진 꼬리를 게으르게 저으며 까만 눈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름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시종일관 완만했다. 수줍은 처녀의 가슴처럼 오름은 그 높이로 교만하지 않았고 넓이로 웅장함을 자랑하는 법도 없었다. 그저 제주의 가을 하늘 아래에서 가만가만 조용히 숨을 쉬었다 뱉을 뿐이었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에는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 표정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상에 오르자 공항에서 한차례 우리를 맞았던 바람이 훨씬 거센 모습으로 찾아들었다. 귓전을 세차게 지나는 바람이 바깥과 오름 사이를, 풍경과 인지 사이를, 세계와 나를 단절시켰다. 오름 가까이 차가 지나고 거대한 풍차가 돌고 곳곳의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어도 들리는 것은 오직 바람뿐. 제주의 오름은 곧 바람이었다.
기어이 한 해가 가고 있었다. 연말 도래. 한 장 남은 달력이 히터 바람에 팔랑거리며 가냘픈 속살을 내비쳤다. 그 뒤로 슬그머니 보이는 2020년이 너무 낯설어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2020년이라니.
가을도 완전히 끝이 났다. 몇 개 안 남은 단풍잎만이 건조하게 말라붙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가을이 지나간 자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방향은 남쪽이거나 북쪽,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지만 어느 쪽이든 지구가 태양을 도는 방향에 부합할 것이었다. 그 큰 길을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그저 마른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한 나뭇가지만 올려다보았다.
제주에서는 아직 나무들이 싱싱한 생명력을 겉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윤기가 도는 나무껍질은 나무 주위에 단단히 달라붙은 채 연한 갈색의 진액을 흘렸다. 입은 댈 수 없지만 분명 단 맛일 것이다. 곶자왈 숲길에서 만난 나무줄기에는 개미들이 줄지어 오르며 진액을 옮기고 있었다. 흥겨워 보이는 그 일사불란한 행렬 어디에도 가을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연말의 도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눈을 감자 가벼운 부유감과 함께 현기증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어느 시간대에 서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 그저 이해를 이렇게 놓아주어야 하는 아쉬움 만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모래처럼 스르륵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의 아쉬움은 아랑곳 없이 연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다. 달 된 표정의 사람들은 집단적인 망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점이 그들이 기대하는 연말의 가장 즐거운 점이었다. 무엇이 올해를 잊고 싶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코트 자락에 묻은 모래를 털듯 시간을 털어내고 싶어 했다. 여러 가지 즐거운 궁리와 망각의 준비로 길 위는 분주했다.
나는 올해를 모래처럼 털어낼 수 없었다. 모래라도 이호 태우 해변의 기억이 담긴 모래라서 쉽게 털어버릴 수 없었다. 곱게 긁어모아 책상 위에 두고두고 기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흔치않은 해였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이보다 좋은 해를 떠올리기 힘들었다. 그녀가 내게 왔다는 것과 그녀가 내 곁에 머물렀다는 것과 그녀 옆자리를 허락받았다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사소하게 좋은 일이 많았다. 정신 못 차릴 만큼 빠르게 지난 시간도 기억에 남은 한 해였음의 반증이었다.
우리의 가을에는 제주가, 그곳을 함께 다녀온 그녀가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