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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Oct 11. 2019

'덕질' - 「생일 선물」

회사원은 그녀를 위해 펭귄의 뒤를 걸었다

  누구에게나 취미는 있다. 아니, 그렇지? 나는 변변찮은 취미 생활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자조하는 사람도 따지고 보면 뭔가 작은 취미 하나쯤은 있다. 카페 통 유리창에 붙어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반은 소심하고 반은 관음적인 눈빛으로 관찰하기. 좋아하는 연예인의 다시 들여다볼 짤 모으기. 영상 통화하다가 여자친구 얼굴 캡처해서 소장하기 등. 내 취미는 업무이고 특기는 야근이에요,라고 하는 분이 있다면 돌아가 주세요.

  

  아무튼 이 취미가 좀 더 집중적으로 심화되는 것을 업계 용어로 '덕질'이라고 한다. 덕질의 대상은 생업과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좋고 직무와 괴리될수록 좋다. 생산성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덕질을 할 때에는 시간이 좀 소비되는 느낌이어야 한다. 너무 빠져서도 곤란하겠지만 미적지근하게 발 담그는 것은 더욱 안된다. 생업을 포기할 만큼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적당히 매출에 악영향을 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내 회사가 없는 회사원은 출근에 지장이 생길 정도면 딱 좋다.

  

  일찍이 짱구를 애정 하였던 그녀는 이제 사시 눈을 한 황제펭귄에게 빠져들었다.




  생일 선물

  

  지금 나는 괘씸하고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니, 생각은 이미 어제 마쳤고 오늘은 행동으로 옮기는 날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걸리적거리는 요소가 많지만 뭐, 그럭저럭 어떻게든 될 것 같다. 흐뭇함에 볼을 씰룩이며 한 걸음을 옮긴다. 걸음 앞에는 2미터 10센티의 펭귄이 등을 보이며 걷고 있다. 때가 낀 노란색 헤드폰을 끼고 뭐가 그리 신나는지 어깨춤을 추며 걷는다. 머리 가슴 배가 구분되지 않는 실루엣은 회색 털로 만든 거대한 골무 같다. 나는 골무 뒤로 한걸음 더 다가갔다.

  

  나는 저 말하는 조류를 그녀에게 데려갈 생각이다. 납치라는 험한 말은 쓰지 말자. 그 단어는 당신이나 나나 피차 곤란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 허락을 받을 생각은 없지만 되도록 정중히 모실 것이다. 다치는 사람은 없다. 새도 물론이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고 저 펭귄은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요즘 그녀의 정신은 온통 저 사시 눈을 한 황제펭귄에게 쏠려 있었다. 유튜브를 구독하고 인스타 계정의 프로필도 저 녀석의 사진으로 바꾸었다. 목소리를 따라 하고 펭귄어까지 연습한다. 펭귄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 장난감을 사지 못해서 토라진 5살짜리가 마트에서 떼쓰는 소리와 같다. 그녀는 내 앞에서 펭귄어를 따라 하고 배를 잡고 웃었다. 나로선 감흥이 전혀 없지만 그녀가 웃으니 따라 웃는다. 펭귄어라니. 하, 유튜브식 조크인가.

  

  그녀 생각을 하며 한 걸음 더 다가가니 빨갛게 상기된 매니저의 옆얼굴이 보인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그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멍청한 표정으로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다. 아까부터 과하게 텐션이 올라간 펭귄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애써 시선을 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말하는 새라지만 펭귄의 매니저를 하다 보면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겠지. 그의 무방비한 경계 속으로 한걸음 성큼 내딛는다. 이제 바로 코앞이다.

  


  "자이언~트 펭 TV! 펭펭!"

  

  놈을 데려가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녀의 관심을 일부 공유해야 하는 것이 짜증 나지만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품 속에 숨긴 전기 충격기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부디 저 두꺼운 털에도 잘 들어야 할 텐데. 이제 나는 녀석의 뒤에 바짝 섰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 펭귄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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