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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늬 Jul 22. 2023

이제 강아지와 셋이 삽니다.

episode 14. 가족이 된다는 것

#1. 저 사실 강아지 키워요..


난 이제 앞으로 강아지와 둘이 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한 지 몇 개월이 채 흐르지 않았는데 결혼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역시 인생이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강아지와 둘이 사는게 아니라 강아지와 남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산다.


사실 동오를 키우기 시작한 순간주터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내가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커밍아웃(?)하곤 했다.

사실 뭐 여자친구나 남자친구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다만, 결혼할 사람이 혼자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 게다가 강아지를 데리고 결혼을 할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구남친이자 현남편에게 처음 동오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커밍아웃했을 때

본인은 원래 시바견이나 웰시코기 같은 종류를 좋아한다며 긍정적인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과 강아지와 함께 사는 것은 그냥 커피와 T.O.P의 차이랄까?

게다가 내가 키우겠다고 선택한 강아지도 아닌 누군가가 키우던 강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혼을 약속한 후에 걱정을 많이 했다.


결혼해도 동오는 무조건 내가 키우겠다는 나의 단호한 신념 덕분인지 아니면 뭐든지 닥치면 고민하는 나와 다른 걱정없는 남편 성격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결혼하면 동오와 함께사는 것을 전제로 결혼 준비를 시작했고 결혼 준비는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동오로 인한 문제(?)는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했다. 아무도 나랑 동오에게 뭐라고 한 사람은 없지만 혼자서 마음에 캥기는 무언가가 있는 느낌이랄까


마치 아이가 있는 이혼녀가 총각과 결혼할 때의 죄책감이나 걱정같은거라고 표현하면 정확할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괜히 내 새끼 눈칫밥 먹지는 않을까?, 결혼하는게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은 아닐까?, 동오와 남편이 과연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들이 우리를 예민하게 만들었고 그런 예민함들이 소소한 싸움들을 만들어 냈던 것 같다.




#2. 재혼할때 데리고 온 애 같은 느낌인 거지


가장 기억에 남는 싸움이 있다. 시간이 흘러서 디테일한 대화나 장면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남편의 말은 " 나한테 시간을 좀 줘 동오가 약간 재혼할때 데리고 온 애 같은 느낌인 거지 그니까 나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하잖아" 라는 말이었다. 틀린거 하나 없는 이 말이 그때는 왜이렇게 서러웠던지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결혼하기 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걱정하던 이야기를 남편의 입으로 직접 듣는 상황이 되니까 더 서럽고 불안하고 죄책감이 들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남편은 반려견을 키우겠다고 직접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오로 인한 이런저런 부담을 지게 됐으니 그렇게 느끼는게 당연했을 거다.


그러나 내 이기적인 마음에 처음부터 남편이 동오를 나만큼이나 사랑해주고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랬기 때문에 속상함이 더 컸다. 내가 데려온거니까 무슨 일이든 내가 책임지가고 굳게 결심했을 때는 언제고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나의 힘듦과 어려움을 나누기를 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그냥 순식간에 나는 애딸린 재혼녀, 동오는 눈칫밥먹는 재혼녀의 아이가 된 것 같아서 서러움과 동오에 대한 미안함이 폭발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남편의 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아직도 나는 남편의 그 말이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도 여전히 혼자 울컥하다가 되새김질하게 되는 그런 기억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된다는 것


혼자 살때는 아니 동오와 둘이 살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셋이 되면서 생기기도 하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기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된다는 것은 떠올리기만 하면 미소지어지는 추억들이 많이 생겨난 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동오가 남편과 내 사이로 꼬물꼬물 기어 올라와서 안기며 애교부리는 모습, 회사를 다녀온 남편을 동오와 내가 함께 맞아주는 장면 그리고 날씨 좋은 날 반려견 놀이터에서 남편과 동오가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 이 모든 기억들은 매일 지루하고 따분하고 때로는 힘에 부치는 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너무 감사하게도 꽤 짧은 시간 동안 동오와 남편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안방에는 안 들어왔으면 하던 남편이 이제 자연스럽게 동오를 안고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생각지도 못하게 동오 옷이나 동오의 장난감과 간식들을 주문하는 남편에게 고맙고,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을 나보다 더 반기는 동오의 모습, 전화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에 반응해서 남편이 나오는 지하철 역으로 달려가는 동오의 모습을 볼 때면 살짝 질투가 나면서도 행복하다.


물론 강아지를 키움으로 인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들은 더 늘어났지만 그저 나는 남편도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동오가 주는 순수한 사랑으로 빈틈없이 충만해지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게 남편을 더 용기있고 충만한 사람으로 만들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결국 가족이 된다는 건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에게서 사랑과 용기를 얻으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니까.




수민

강아지 동오와 이제 셋이 살고 있습니다.

본업은 기획자, 부캐는 동오 언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instagram : sumsumi_n


동오

진도 믹스 시 고르자브종 스트릿 출신 강아지

동네에 모르는 사람과 강아지가 없는 핵인싸견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개너자이저

유전자 구성이 다른데 왜 언니랑 성격이 같은지 미지수

@instagram : dogdong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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