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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늬 Aug 15. 2023

I형 강아지와 사는 i형 인간

episode13. 내향형 인간과 내향형 강아지는 어떻게 사는가

내향형 인간과 내향형 강아지

요새 mbti가 대세다. 처음 만난 사람과 mbti를 공유하는 게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었고, mbti를 넘어 dbti(강아지 mbti)까지 나왔으니까 말이다. 나는 mbti가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mbti가 사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도구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가 i형 인간(내향형 인간)이라는말을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뭐 니가 i라고? 완전 e 같은데” 같은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왜 그렇게 보이는지는 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그런데 난 진짜 i형 인간이 맞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e형 인간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교적임을 연기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진 것 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에어컨을 틀고 거실 쇼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파워 집순이에 좁디 좁은 인간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사실 넓은 인간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겠다.)

사람 많은 곳에 가거나, 텐션이 높은 사람들과 함께 오래 있으면 기가 쪽 빨리고

무대 공포증이 심해서 회사에서 회의를 할때도 미리 대본까지 다 써두는 그런 i형 인간의 정석 되시겠다.


그런데 주인과 강아지가 닮는다더니

우리 동오는 나보다 심한 대문자 I형, 파워 내향형 강아지로 자랐다.

어렸을 적 동오는 강아지 친구들을 꽤나 좋아하고, 만나면 신나게 놀았기 때문에 나와 다르게 소문자 e 정도는 되는지 알았는데, 성견이 된 요새는 길거리에서 만나거나 강아지 운동장에 가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꼬리만 몇번살랑 살랑 흔들며 인사하고는 벤치나 구석으로 가 앉아 바람 냄새를 맡거나 다른 강아지들이 뛰노는 광경을 구경하고만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적극적인 친구가 와 치대기 시작하면은 귀찮음을 가득 담은 얼굴을 하고는 기가 빨려 내빼기 일쑤다. 사람에 대한 낯가림도 있는 편이라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겁을 먹고 짖거나 도망친다.

조금 친해졌다 생각해서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을라치면 머리를 쓱 빼거나, 뒷걸음칠을 치며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다. 강아지라기에는 고양이 같은 아이인 것이다.


동오가 제일 좋아하는 건 쇼파에 누워 자기, 동네 산책하기, 산책하고 얻어 먹는 간식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예상하고 또 사랑하는 강아지의 모습은
낯선 사람에게도 애교를 부리며 배를 까는 그런 E형 강아지이겠지만 아쉽게도 동오는 그런 강아지가 아니다.


등을 맞대고 또 살아갑니다.


i형 인간이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루 종일 불편한 관계의 사람과 불필요한 말들을 의무적으로 나누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I형 진도 믹스 강아지가 한국에서 살아 간다는 것은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i형 인간과 I형 강아지가 함께 사는 집에서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우선, I형 강아지와 i형 인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커넥션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대화를 할 필요 없이 눈짓이나 손짓만으로도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어색할 때 꺼내게 되는 스몰 토크도, 불필요한 미사여구 가득한 말도,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논리적인 근거들도 필요 없다.

퇴근한 i형 인간은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I형 강아지가 꼬순내를 풀풀 풍기며 자고 있는 침대나 쇼파에 뛰어들어가서 I형 강아지의 발바닥 냄새를 맡거나, 귀냄새를 맡거나, 입냄새를 맡으며 뒹굴거리며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I형 강아지는 본인이 예쁨받고 싶은 순간에만 i형 인간으로부터 쓰다듬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간식을 먹고 싶을 때 i형 인간에게 촉촉한 눈빛을 보내며 원하는 만큼의 간식을 얻어낼 수 있다.


이렇게 i형 인간과 I형 강아지는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i형 인간은 사랑 받기 위해 e형 인간인 척 할 필요 없고

I형 강아지는 사랑 받기 위해 E형 강아지인 척 할 필요 없다.


살아가다 보면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인 척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아니다 있다기 보다도 거의 매순간 그렇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다. 그럴때마다 오롯이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마치 히말라야 같은 고산을 정복하는 탐험대에게 언제든 돌아가 치료를 받고 쉴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필수적인 것 처럼, 우리 또한 세상으로의 탐험을 떠날 때 언제든 돌아갈 피난처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피난처를 “안전 지대“라고 한다. 안전 지대는 특히나 예민한 i형 인간들에게 중요한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외부의 자극에 민감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i형 인간의 안전 지대는 I형 강아지

I형 강아지의 안전 지대는 i형 인간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등을 맞대고 오늘도 세상으로 탐험을 떠난다.



수민

강아지 동오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본업은 기획자, 부캐는 동오 언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instagram : sumsumi_n


동오

진도 믹스 시고르자브종 스트릿 출신 강아지

동네에 모르는 사람과 강아지가 없는 핵인싸견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개너자이저

유전자 구성이 다른데 왜 언니랑 성격이 같은지 미지수

@instagram : dogdong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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