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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Jan 18. 2022

예술인으로 먹고 살기 1

컴퓨터가 어려운 50대 예술인의 고군분투 생존기

정확히 내가 스물한 살 때, 엄마 나이 마흔넷.

엄마는 나와 같은 대학교 미술대학에 '만학도'로 편입학하면서 예술가의 길에 합류했다. 편입학 전부터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던 취미 미술가이지만, 현실에 치여 이루지 못한 미대 졸업장의 꿈을 향해 늦게나마 학업을 시작했던 때였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마흔넷의 나이가 참 젊었다. 그런데도 우리 가족 모두 엄마의 때늦은 대학 생활을 참 많이 염려하고 걱정했었다. 그렇게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 속에 엄마는 무사히 졸업을 했고, 자기만의 영역을 점차 넓히며 그림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2019년,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고비를 맞았다. 

모두가 힘든 코로나 보릿고개이지만, 예술인에 대한 정부 지원이 따로 구분되어 발표되면서 나는 엄마가 예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신청하는 '예술활동증명'이라는 것이 예술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신분증 or 여권 or 훈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이게 증명이 안되어 있으면 예술인으로서의 혜택은 전무했다.

코로나가 터진 첫 해에 우리가 거주하는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예술인에 대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라는 공고가 올라왔다. 지역별로 예산을 편성해 예술인 지원금을 주던 때였다. 그때 엄마는 예술활동증명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고, 부랴부랴 작품 판매 내역 증빙 자료들을 준비해 신청서를 넣었다.

하지만, '예술활동증명'이라는 게 면허증 신청하듯이 바로 넣으면 증명이 되는 게 아니다. 일단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다. '작품 판매 내역' 또는 '전시 이력' 증빙. 둘 중 한 가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에 대한 각종 공문과 사진, 입금 내역이나 전시 활동 내역서 등 모든 서류들을 마련해 내가 '예술인'으로서 활동했다는 것을 증명해내야 한다. 그리고 자료가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모든 예술인들의 자료들을 일일이 검토해야 하는 수작업이 필요해 적게는 3달, 길게는 6개월까지 기다려야만 '증명 완료'라는 한 장의 종이를 받을 수 있었다.

엄마는 이미 첫 번째 재난지원금은 놓친 상태였고, 이후에 예술활동증명이 완료되어 유효기간 1년을 받아놓고 기다렸다. 기간 동안에 전주시에서 또 다른 예술인 지원금 공고를 발표했고, 간단한 서류와 예술활동증명서를 제출하여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증명 기간 1년은 생각보다 짧았다. 만료기간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번엔 '전시 이력' 증빙으로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했다. 모든 행정적인 과정과 서류 작업은 내가 도맡아 했다. 엄마는 컴퓨터에 특히 약했고, 정부나 지자체 정책들은 내가 먼저 찾아서 알려주고 진행 상황에 대해 함께 공유했다. 서민으로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었달까. 그렇게 두 번째로 예술활동 증명을 신청해서 걸린 기간은 대략 4개월이었다. 증명 완료 문자를 받자마자 엄마와 난 함께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만료기간 전에 증명이 된 것도 좋았지만, 이번 증명서는 5년의 유효기간이 있어서 당분간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게 특히 좋았다.

이게 참, 예술활동증명 만료기간이 다가오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미리미리 신청해놔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었다. 단체전이든 개인전이든 무얼 할 때마다 증빙자료도 차근차근 usb에 다 담아놓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코로나19 이후 재난지원금 신청 때문에 엄마의 예술활동 전반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게 됐다. 평소엔 잘하지도 않던 사진, 서류들을 차곡차곡 카테고리별로 보관하게 되었고, 그게 묶어놓고 보니 포트폴리오로 남아 다른 사업 신청 시에도 꽤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리고 1년쯤 지났을까. 올해 1월 초 전라북도에서는 '예술인 민생안정 지원금 신청'이라는 공고를 띄웠다. 우린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예술활동증명도 되어 있었고, 서류 준비하는 것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 능숙하게 마무리했다. 신청해놓고 한숨 돌리며 생각해보니 예술인으로 사는 게 겉으론 멋지지만, 먹고 살기는 참 어렵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예술인으로 사는 것, 예술인으로서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아니 받아야 하는 혜택들도 몰라서 못 받고 있는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처럼 엄마의 비서 역할을 자처하며 모든 신청들을 알아서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물론 걱정 없겠지만, 대부분의 중장년층 예술인들은 혼자 해결하거나 문화재단 측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예술활동증명' 과정부터 증명서를 스캔받아 파일로 보관해두고 신청 때마다 꺼내 쓰는 일. 정부24에서 초본, 등본 떼는 일. 한글 파일에 사인이나 서명을 넣는 일 등등 50대 이상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은 일부 세대들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렵게 예술활동 증명을 했어도 지원금에 대한 정보나 행정 절차를 진행할 수 없어서 흐지부지 넘어가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관심만 갖고 있다면, 주변 동료들과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신청이 가능하니 절대 포기하지 말고 예술인으로서의 권리와 혜택을 모두 누렸으면 좋겠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모두 예술인인데, '예술활동증명서' 서류 한 장으로 '지원금 받는 예술인', '지원금 못 받는 예술인' 나눠진다는 게 냉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된다. 증명하지 않은 사람들도 적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간 작업을 이어온 '예술인'이다. 그들도 똑같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민생 안정 타이틀의 지원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 지자체나 정부에서 예술인 or 특별 계층의 지원금을 주기로 마음먹었다면 꼭 한번 사각지대를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정보 사각지대, 컴퓨터가 어려운 분들. 서류적으로 증명받지 못하고 어렵게 예술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들도 한 번쯤 바라봐주길. 그리고 기회와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공정한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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