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도 헤어지는 시간은 똑같아
결혼하기 전, 나는 신데렐라였다. 통금이 12시였는데, 그마저도 수지에 살 때는 광역버스를 기다리고 타고 가는 시간을 합치면 한 시간이 넘어서 11시가 되기 전에 일어서야 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시간이 빠르기만 한지 5분마다 시계를 확인하는 것 같은 기분인데 볼 때마다 한 시간씩 지나있었다.
12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한 번은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현관 앞에 도착하자 12시 10분 정도가 되었다. 문고리를 잡았는데 쌔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 철컥. 하고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번호키를 눌러도 열 수 없는 이중 잠금 상태가 된 것이다. 나는 간발의 차로 집 밖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만약 그때 서울에 살았다면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거나 자취하는 친구 집으로 찾아갔을지도 모른다(후환이 두려워서 실행할 수 없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이미 서울로 나가는 버스도 끊겼고 택시 탈 돈은 너무 아까웠다. 어쩔 수 없이 차가운 철문에 달라붙어 석고대죄를 했다.
“엄마.. 이제 안 늦을게. 문 좀 열어줘. 너무 추워.”
“약속을 안 지킨 건 너잖아. 난 10분이나 더 기다려줬어.”
“버스가 늦게 왔단 말이야.”
“그 시간까지 계산해서 더 일찍 나왔어야지”
“... 나 그럼 여기서 소리 지른다!”
앞집에서 흉볼까 봐 무서웠는지 엄마는 결국 문을 열었다. 그 후로 절대 다시는 늦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엄마가 말로만 겁을 주는 게 아니라 정말 행동으로 옮기는 분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술자리는 다음을 기약하면 되고, 클럽이야 원래 타고난 몸치라 애당초 취미에 없다 치지만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는 얘기가 달랐다. 이제 서로 약간 취기가 올라 취중진담이 무르익는 와중에 시계는 11시를 가리킨다. 조금만 더 있으면 우리 관계에 방점을 찍는 중요한 얘기나 다음에 만날 때까지 내내 달콤한 기분에 빠져있게 해 줄 로맨틱한 멘트가 나올 것 같은데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닥쳐온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면 그 순간의 텐션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다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며 대화에 몰입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내 생각에 통금이 사랑의 정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사랑의 진도에는 영향이 좀 있는 것 같다.
내 남자친구들 중에 나의 통금을 가장 존중해주었던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매번 약속시간에 늦는 나와는 달리 시간 개념이 철저했기 때문이라고 믿었지만 가끔은 섭섭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나랑 더 같이 있고 싶지 않은가?’
‘오늘 분위기는 살짝 늦어도 괜찮을 거 같다고 말했는데 왜 벌써 서두르는 거지?’
너의 주말은 소중하다
나의 주말이 그러하듯
나와 남편은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다. 남들은 연애할 때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난다던데, 우린 평일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정도가 평균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만나면 자주 만나는 편이었다. 남편은 특히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쉬길 원했다. 나 역시 엄마가 주말 중 하루는 가족과 보내길 원했기 때문에 서로 니즈가 맞았다. 하지만 하루를 가족과 보내고 나면 나머지 하루는 종종 딜레마에 빠졌다. 나는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친구들과의 시간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욕심내서 하루 안에 친구랑 남편 모두 만나기도 했지만 그건 대단한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주말 내내 남편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남편은 자기를 만나지 않더라도 내 주말은 꽉 찬다는 것을 깨닫고 그럴 바에는 그냥 주말 이틀 모두 만나자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주에는 평일 데이트가 한 번이 되기도 했고, 아예 없기도 했다. 어쩐지 남편에게는 데이트에 쓰는 시간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보고 싶어 급약속을 잡아 만나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었지만 보통은 나도 일주일 내내 약속이 있는 편이었기에 크게 아쉽진 않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보니, 남편이 나의 통금과 주말을 지켜준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야 집요정, 잠요정
일단 남편의 생체시계는 밤 12시면 서서히 멈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꺄르륵 거리며 텔레비전을 보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서 돌아보면 앉은 채로 까딱까딱 졸고 있다. 시계를 보면 여지없이 12시다. 내가 물리적인 신데렐라였다면, 남편은 생리적인 신데렐라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야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소화가 되지 않은 채로 잠들면 안 된다며 1시까지 버틴 적도 있는데 그마저도 거의 기면 상태다. 이런 남편을 알기에 내가 야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던 그 시절이 정말 눈물 나게 감동적인 것이다. (진심이다)
그리고 남편은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다. 책도 읽어야 하고, 영어공부도 해야겠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도 좀 하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일기도 쓰고, 가끔 홈트도 하(려고 한)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고 나면 그때부터 방에 들어가 3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최대한 많은 일들을 한다. 나는 그런 남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서 채널을 돌려가며 다양한 장르의 상식을 습득한다.
주말은 남편에게 이 모든 일을 하루에 다 할 수 있는 꿀맛 같은 시간이다. 하루는 나와 데이트를 하고, 하루는 청소 등 집안일을 한 뒤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연애할 때의 루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때는 내가 남편이 혼자 사는 집에서 외출도 하지 않고 뭘 하며 시간을 보내나 걱정했다는 점이 다를 뿐. 집 안에서 이렇게나 알찬 스케줄로 하루를 꽉 채울 수 있다는 게 옆에서 보면서도 신기할 따름이다.
남편은 보통 5시에 퇴근한다. 아무리 탄력근무제라지만 매일 일찍 퇴근하는 걸 보면, 근무시간에 한 눈 안 팔고 숨도 안 쉬고 일하는 게 분명하다.
“오빠, 커피도 좀 마시고 딴짓도 하면서 쉬엄쉬엄 해. 집에 와서 밥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데리러 갈 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죽어라 다섯 시에 퇴근해?”
“나는 내 할 일도 하고 싶은데 여보랑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뉴스 보는 것도 꼭 하고 싶어. 그러려면 하루가 모자라다고!”
이제는 통금 대신 지금
결혼 후, 우리 부부에게는 서로 통금이 없다. 남편은 약속을 잘 안 만들지만 종종 친구들과 만나면 밤늦게까지 놀기도 한다. 그럴 때 내 조건은 몇 시에 들어와도 좋으니 연락했을 때 꼭 받고, 행선지는 공유하고, 씻고 잘 정신은 남겨두고 들어오라는 것이다. 남편은 나에게 어디에서 누구와 있는지만 알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는데 좀 재수는 없었지만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는 없었다.
“늦게 들어오는 데 걱정 안 한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네가 생각해도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대에는 다니지 않는 게 맞아. 그런 상황에 본인을 스스로 방치하고 걱정은 왜 나보고 하라고 해?”
“(부들부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각자의 영역과 시간에 공존하는
재미를 알아갔다. 남편은 나와 함께 내 친구들을 만나고, 나는 남편과 나란히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쓴다. 남편은 식사 준비를 도우면서 이걸 대신해주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큰 휴식이 되는지 깨우쳐 종종 손수 요리를 만든다. 나는 늘 새로운 것을 배우길 즐기는 남편을 보면서 어느새 일기 쓰기와 불어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는 내가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떠올리고, 그중 함께하면 더 좋을 것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우리’의 하루는 대게는 밤 12시에 끝나므로 하루에 한 가지씩만 함께해도 금방 일주일이 채워진다.
통금이라는 시간 제약은 없지만 우리의 ‘지금’은 늘 매 순간 끝이 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서로의 지금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부부 사이의 ‘통금’이다. 하루 중 함께 있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을 구분하고 존중해주는 것.
쉿! 지금 남편은 부부로서 활동하는 시간인 12시를 넘겨 꿈나라로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