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 '연민'이라는 감정이 생길 때
그날, 현관문을 열고 불만 켜진 채 비어있는 거실을 지나 안방에 들어섰을 때 남편의 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보통은 내가 몇 시에 오든 졸음을 버티며 기다리던 남편인데 이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나 역시 새벽 1시가 다 되는 시간에 집에 오니 바로 씻으러 갈 기운이 나지 않았다. 화장대 스툴을 당겨 침대를 바라보며 앉았다. 남편의 뒤통수가 참 예뻤다. 반질반질 잘 다듬어진 조약돌처럼 동그래한 굴곡 가운데에 가마가 사과 꼭지처럼 야무지게 틀어앉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남편의 뒤통수가 참 예쁘다고 생각한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곁에 누워 등을 감싸 안아주고 싶었지만 남편이 깰까 봐 혼자 숨죽여 한참을 울었다
뿌린 대로 거두지 않은 죄책감
12시까지 야근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기를 수개월째. 내가 맡은 일에 대해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성미 때문에 야근을 자처한 부분도 있었기에 견뎌야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어느 순간 남편의 일상에까지 피해를 끼치고 있었다. 나 때문에 잠을 미루고 설치기를 반복하던 남편은 회사에서 깜빡깜빡 졸기도 했고 자율 출퇴근제이지만 늘 남들 출근하던 시간에 맞춰 일어나던 사람이 늦잠을 자기 시작했다.
광고주의 변덕스러운 요구에 응대하느라 내 업무는 미뤄두고 하루 종일 자잘한 수정을 반복하고 집에 돌아온 날. 현관문을 열자 여느 때처럼 남편이 두 팔 벌리고 뛰어나오면서 “여보다! 여보가 왔다!”라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신발도 벗지 못한 채로 현관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팀원들에게도 광고주에게도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던 내가 남편의 환대에 마음속으로 ‘사실 너무 힘들다’고 외쳐버린 것이다. 이튿날 남편은 나에게 꽃 선물과 함께 엽서를 주었다. “울면서 현관문을 들어서는 아내를 다시 직장으로 보낼 수 있는 남편은 없어. 돌아와. 집으로 와.”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에게 나는 어떻게 했었던가.
2년 전, 남편은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하고 업무 전반이 영어로 진행되는 것에 무척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현관문을 들어서며 “피곤해” “힘들어”라고 며칠째 습관처럼 불평하는 남편에게 괜히 골이 나서 “난 그 회사로 이직하라고 등 떠민 적 없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회사에서 끝내고 와”라고 매정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나 역시 집에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남편이 “힘들지?”라고 물어와도 “아냐, 괜찮아” 하며 더 밝은 척했다. 하지만 부부가 남과 다른 점은 서로에게만큼은 마음껏 약한 모습, 힘든 내색을 내보일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을 내가 진짜 힘들 때가 돼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 남편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저 “힘들었지?”라는 그 한 마디면 되었을 텐데. 나는 가장이 힘들다고 말하면 내가 얼마나 불안 해할지에 대한 고려 없이 너무 쉽게 자신의 감정을 내뱉는 남편이 오히려 야속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그만두라고 말했어도 남편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남편의 ‘집으로 돌아오’라는 한 마디 때문에 퇴사를 결심한 것은 아니듯이. 그때 그렇게 새직장에 적응하기 위한 사투를 외롭게 혼자 버텨냈던 것처럼, 나 때문에 피로가 쌓여가는 이 상황도 너무도 조용히 혼자 버텨내고 있었던 남편. 불을 켜면 잘 못 자면서도 나를 위해 온 집안의 불을 켜놓고 잠들어 있던 남편의 뒷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가장의 배려를 느꼈다.
새로운 씨앗을 뿌릴 때
그제야 뭔가 분한 마음이 일어났다. 내가 버텨낼수록 더 가중되던 업무는 내 실력에 대한 인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 시키기 편한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일은 더 이상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비로소 진심으로 ‘퇴사’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품었다. 그동안 엄살처럼 생색처럼 내뱉던 퇴사하고 싶다는 말. 그 말이 실제로 힘을 가지게 된 순간이었다.
잠버릇이 얌전한 남편은 내가 씻고 돌아올 때까지 그 자세로 잠들어 있었고 나는 잠드는 순간까지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편과 나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뒤통수만 바라봐도 하염없이 사랑스러운 인생의 반려자가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감사하다고 되뇌며 동시에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렇게 될 리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에게 이제 가족은 ‘남편과 나’라는 개념이 확고해졌다. 결혼하고 줄곧 친정집을 ‘우리 집’이라 칭하고 친정집의 내 방이 나만의 케렌시아 같았던 그 비밀스러운 감정이 어느새 오롯이 남편과 나의 이 집안에, 그리고 남편이 누워있는 이 침대 안에 옮겨져 있었던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