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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기린 Feb 12. 2019

아이 없는 보통의 삶

책임감에 대한 불안


결혼을 했다면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고민이 있다. 바로 아이를 가질지 말지에 대한 것이다. 물론 특별한 고민 없이 자연스레 아이를 가지는 부부가 더 많은 것 같기는 하다. 그러고 보면 결혼 자체에 대해서는 이토록 오래,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남들보다 큰 편이라 항상 한 발 빼놓는 결정을 하곤 했다.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그 순간에도 ‘살아보고 영 아니면 관두는 거지’라는 마음속 보루를 만들어두었었다. 다행히도 아직 ‘영 아니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7년째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니, 사실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매우 좋아 행운이라 생각하면서.


미룰수 있는 숙제

신혼 초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 계획을 미루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모은 돈에 대출을 보태어 집 장만을 했는데, 1억 5천만 원에 이르는 대출금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특히 빚이라는 건 절대 만들지 않는다는 신조로 살아오신 부모님을 보며 자란 나는 빚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남편이 혼자 대출을 받아 집을 덜컥 사버렸을 때 너무 놀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우리 엄마가 ‘결혼하고 싶으면 집을 해와라’고 요구했을 때, 이렇게 엄청난 빚을 지라는 뜻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결혼 한 번 해보겠다고 자신의 신용을 담보 삼아 큰 모험을 한 남편을 나도, 우리 엄마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막상 결혼해서 살다 보니 너무 큰 액수의 빚에 대해 점점 현실감을 잃어갔다. 결혼을 하고서야 둘이 함께 여행하는 재미를 알게 된 우리는 매년 해외와 국내를 여행했다. 주변에서는 아이가 생기기 전에 둘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라는 조언이 이어졌고 우리는 충실히 그 조언을 따른 셈이었다.


그렇게 점점 둘만의 생활이 주는 자유로움에 익숙해졌다. 주말 중 하루는 함께 집안일을 하고 하루는 빈둥거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나중에는 이런 일상에 아이를 케어하는 과제까지 더해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도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데, 주말은 물론 퇴근 후 시간도 온전히 육아에 매달려야 하는 일상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보다 훨씬 늦게 결혼한 커플들이 어느새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유치원에 보내고 심지어 학교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뭘 하며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맞벌이 부부로 아이 없이 살면서 그들보다 돈을 더 모은 것도 아니었다. 여행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은 것 빼고는 특별히 사치를 한 적도 없는데 둘의 소비패턴은 벌이에 딱 맞춰져 있었다. 우리는 아직 자동차도 없다. 금방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할 거라며 인테리어 공사 없이 들어온 이 집은 벽지 빼고는 7년째 전주인이 살던 모습 그대로다. 이런 모습이 부모님들에게는 발전 없이 허송세월을 한 것처럼 비칠 만도 했다.


동상이몽

결혼하고 지금까지 양가 부모님은 우리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물론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나름의 이유를 대며 방어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럴 일은 없었다. 엄마는 누누이 나에게 얘기했었다. 너희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못된다. 아이 없이 둘이 뼈 빠지게 벌어도 남들만큼 살동말동할테니 애초에 아이는 포기해라. 요즘 아이 하나 키우려면 3억이 든다는데 어떻게 감당하겠냐.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대책 없다는 꾸중만 들을 것 같다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와는 달리 시어머니는 아이에 대해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 혼자 짐작하기에 딸 같은 아들인 막내가 아이들 때문에 시달리느니 지금처럼 즐기며(사는 것처럼 보이셨을 거다)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형님네가 아들 둘이 있으니 손주에 대한 여한도 없으시리라 믿으며 그야말로 속 편하게 생각하고 지냈다.


지난해 추석의 일이었다. 시어머니께서 좋은 와인을 선물 받았다며 꺼내놓으셨고, 그날따라 대화 포문이 터져 형님네 내외, 우리 부부, 어머님 이렇게 다섯 명이서 세 병의 와인을 비운 끝에 살짝 취기가 오른 어머님이 불쑥 진심을 터뜨리셨다.


“너희는 언제 아이를 가질 생각이니?”


당황스러웠다. 그 무렵 치열하게 고민하던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았다. 우리도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음에 조급함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어머니로부터 듣게 된 그 질문에 나는 묘한 반감이 일었다.


“어머님, 저희는 아이를 봐줄 사람도 없고, 외벌이로 아이를 키울 형편도 안돼요.”


따박따박 부정적인 대답으로 마치 아이를 낳지 않기로 확실히 마음먹은 듯 굴었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어쩌지. 어찌해야 하지. 대체 이 고민은 언제 끝낼 수 있는 거지. “국가를 위해서라도 아이는 낳아야지”라는 어머님의 마지막 발언이 남편의 심기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애매하게 입장표명을 회피하고만 있던 남편이 울컥하며 “엄마, 그건 아니지! 그게 무슨 구시대적인 발언이야?”라고 되받아쳤고, 마음이 상하신 어머님은 침실로 들어가 버리셨다. 다음날, 민망함에 그러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셨던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아침밥을 차려주시는 어머님을 보면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몰랐다. 어머님이 우리가 언젠가는 분명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의심 없이 믿고 계셨기에 채근하지 않으셨을 뿐이라는 것을. 정말 몰랐다.


딩크(DINK) 아닌 띵크(THINK)족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2018년이 끝나기 전에 아이 문제를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도 고민 중이다. 한 가지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이 문제는 더 이상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할수록 아이를 가져야할 이유보다 갖지 않아야 할 이유만 늘어났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하나가 그 많은 이유만큼이나 커져갔다. 그리고 새롭게 든 생각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이 문제가 사실은 우리의 소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정이다. 일부러 피임을 해오긴 했지만 막상 갖기로 하고 노력을 했을 때 뜻대로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예전보다 크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이제 서른아홉. 나는 서른여섯이다. 6년 동안 날짜 계산만으로 용캐도 지금까지 피임을 성공해왔다는 것도 슬슬 미심쩍기 시작했다.


‘토이’가 곁에 있을 땐 때로 그런 생각도 했다. 만약 내가 임신한 기간 중에 토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일이 생긴다면 너무 충격을 받아서 유산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 토이는 내가 열아홉 일 때 데려온 토이푸들로, 남편과 연애할 시절부터 이미 나이가 꽤 들어있었다. 2015년, 엄마 아빠가 동생에게 얼마간 가 있을 동안 우리 집에 데리고 있었는데 그때 동물병원에서 이미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 후, 토이가 죽었을 때 처음으로 심장이 깨지는 듯한 상실감을 느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슬퍼하는 엄마를 보는 게 나 자신의 슬픔보다 더 힘들었던 나인데. 동생처럼, 자식처럼 돌보던 존재를 잃고 나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만큼 펑펑 울었다. 아끼는 존재를 잃는 기분은 단순히 ‘슬프다’로는 형용되지 않음을 알았다. 그것은 다시 겪을까 봐 두려운 공포에 가깝다. 그런데,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그보다 몇 곱절은 더, 아니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할 어떤 존재를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 아닌가. 그 거대한 존재감이 나를 잠식하지는 않을까? 내 목숨을 내놓아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대상이 생긴다는 것은 나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이미 내 곁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정적으로 버겁다. 그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갚는 데에만 집중해도 모자란 삶인 것 같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오늘도 생각만 하염없는 띵크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생각을 멈출 수 있을 만큼 속수무책인 운명의 추월을 일말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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