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지키기 위해서
"합격입니다."
한동안 내 어깨를 짓눌렀던 아이의 언어 문제. 그 짐의 무게가 조금씩 덜어지면서, 딱딱하게 굳어 있던 나의 일본 생활도 윤활유가 뿌려진 듯 매끄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체되었던 나의 일도 본연의 페이스를 찾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진도 했다.
"타국에서 육아도 하면서 승진까지, 정말 대단하세요.
축하해요, 선배님."
그때는 다시 한번 '반짝반짝 워킹맘'에 한 발짝 다가갔다고 생각했다. 내 삶에 대한 합격 통지도 아닌데, 마치 할 일을 다 끝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수록 마주할 문제도, 고민도 많아진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
폭풍 같은 이사가 끝났다.
정말이지, 일과 육아를 오가며 준비하는 이사란, 두 번 다시 못할 짓이다. 그럼에도 끝내고 나니 조금은 뿌듯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외국인 임차인이 아니라 집주인이다. 새로운 집, 새로운 동네에서 다시 시작.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설렘은 거기까지다. 우리는 새집이 생겼지만, 새 어린이집은 얻지 못했다. 아이의 확신에 찬 눈빛에 홀려서 전원 신청을 주저하다, 결국 학기가 바뀌는 시기를 놓쳐 버렸다.
다니던 어린이집까지는 지름길로 2.7킬로미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걸으면 38분이 걸린다. 지난 3년 동안 지도상 15분이라는 길도 한 시간을 걸어서 다녔는데, 38분 거리는 대체 얼마나 걸릴까?
어차피 오래 걸리는 등하원길,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아이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루트를 찾아야 한다.
새 집에서 맞는 등원 첫날, 전날 늦게까지 이삿짐 박스를 뜯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택시를 불렀다. 매일 편도 천오백 엔을 태워가며 어린이집에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방법은 비상용으로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이튿날은 마음을 다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걸었다.
2.7킬로미터, 약 3킬로미터는 미니 마라톤으로 뛰기도 하는, 간단치 않은 거리다.
갈길이 멀다고 생각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말수는 줄고 걸음은 빨라졌다. 도중에는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구간까지 있어서 이게 아이와 등원을 하는 건지, 등산을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필 그날은 꽤 걸어야 하는 외근까지 겹치는 바람에, 집에 도착할 즈음엔 근육통으로 온 삭신이 쑤셨다.
계속하다가는 나부터 몸살에 걸릴 것 같아서, 이 방법도 보류.
사흘째 날, 걷기의 효과고 뭐고 잠시 접어두고, 마마차리를 타고 등원했다.
전동 자전거니까 괜찮겠지 싶었지만, 20분 가까이 언덕과 경사로를 내달리고 나니 허벅다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건 오늘의 근육통인가, 어제의 근육통인가.
숨을 몰아쉬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서둘러서 반대 방향에 있는 유료 주륜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다시 걸어서 전철역으로... 결국 걸어서 갔던 날보다도 하나 늦은 전철에 몸을 실어야 했다.
몸은 힘든데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이와 지그시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어서, 이 방법도 패스.
나흘째 날, 어린이집까지 바로 가는 버스나 전철은 없지만, 일부 구간만이라도 대중교통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12분
->중간지점까지 버스를 타고 15분
->다시 어린이집까지 걸어서 9분.
번거로운 코스라 아이가 징징거릴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일단 해 보기로 했다.
아이는 새로운 동네가 흥미로운 듯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걸었다. 집, 가게, 꽃과 나무… 물론 동네의 각종 소식을 알려주는 게시판도.
"죠죠야, 게시판 하나하나 다 보면 버스 못 타.
정류장 가는 길에 예쁜 다리랑 개천도 있다는데, 가 볼까?"
"응! 가 보자!"
"예쁘다. 날씨가 풀리면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아."
"저기 오리도 있어! 오리야, 안녕!
엄마, 저건 카루가모(カルガモ:검둥오리의 일종) 야. 자유놀이 시간에 친구랑 책에서 봤어. 카루가모는 저렇게 검은색이랑 흰색이..."
"우와, 그런 것도 알아?
어, 저기 버스 보인다! 서두르자!"
버스 좌석에 몸을 붙이고 보니, 마치 철인삼종경기 중 '새로운 동네 걷기' 구간 하나를 통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다음 미션의 숨겨진 힌트라도 찾는 듯이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는 동네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엄마, 저기 봐 봐! 방금 떡집(화과자점) 있는 거 봤지? 다음에 저기 가 보자. "
"저 작은 걸 어떻게 찾았어? 그래, 꼭 가 보자."
"저기 공원도 있어! 미끄럼틀이 이상하게 생겼다. 토요일에 가 볼까?"
"정말이네. 그래, 가 보자."
내가 모르는 새에 아이는 많이 자라 있었다. 아기 때처럼 만원 버스에서 버둥거리지도 않고, 내가 굳이 떠들지 않아도 스스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오늘 갔던 방법은 어땠어? 좀 길었지? "
"멀지만 엄청 재밌었어! 버스도 또 탈래!"
우리 회사는 한때 일본에서 유행처럼 번진 탄력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다. 덕분에 아이와 걷느라 등원 시간이 들쑥날쑥하던 시기에는 그 제도의 혜택을 톡톡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승진하기 전의 이야기다. 정작 중간 관리직이 되고 나니, 9시부터 18시까지 각종 회의로 가득 차는 건 물론이고, 미처 끼어들지 못한 회의가 근무 외 시간에까지 침투해 댄다.
"관리직 이상은 내일 8시 30분 긴급회의에 참석해 주세요."
"저… 제가 8시 반은 등원 때문에… "
"아이 맡기고 재택근무로 참석하셔도 돼요."
"저희가 어린이집이 많이 멀어서, 아이를 맡기고 집으로 가든 회사로 가든 8시 반은 맞추기가... "
"아… 알겠어요. 그럼 나중에 회의록 확인하세요."
역시 이사하는 김에 가까운 어린이집으로 옮길걸 그랬다. 이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라도 구청에 전화해서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집으로 바꿔 달라고 애원해 볼까. 아니, 직속 상사에게 안일하게 승진 시험을 치러서 죄송하다고, 나에게는 과분한 자리인 것 같으니 강등해 달라고 이야기할까.
좀처럼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가슴에 안고,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탔다.
"죠죠야, 오늘 하루는 어땠어?"
"친구들이랑 머리 땋고 놀았어. 졸업식 때 다 같이 예쁜 머리를 하기로 약속했어. 나도 묶일 때까지 기를 거야. 히나짱도 계속 기른다고 했고, 유키짱도..."
"5년을 함께 한 친구들이라서 정말 친하구나.
우리… 남은 1년만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기면 안 되겠지?"
"왜? 콤비 너무 재밌는데?"
"응, 가는 길이 멀고 오래 걸려서…."
"그런 게 어딨어. 오늘도, 어제도 가는 거 재밌었는데? 걷는 것도 재밌고, 버스도 재밌어.
나 일찍 일어났잖아. 다리 아프다고 안 했잖아."
맞다. 아이도 지금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는데.
3년 전, 아이의 말문이 막 트이려는 중요한 순간에, 나는 내 일이 먼저라며 미디어를 틀어놓은 거실에 아이를 방치했었다. 그리고 그때 놓친 것들을 되찾는 데에는 너무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어린이집에서 즐겁게 잘 지내는 것, 먼 길도 기분 좋게 걷는 것—이것들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또 어떤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될지 모른다.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돼.
딱 1년만 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