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재밌어
"아, 숨차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죠죠는 진짜 잘 걷고 지치지도 않는 거 같아"
"그럼, 걸어서 등하원 4년 차인데. 아예 이름을 만보라고 지을 걸 그랬어."
"직관적이고 좋네. 근데 왜 계속 걸은 거야? 일이 년 하고 그만할 수도 있잖아."
"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인 거 같아서.
타국 생활, 이중언어, 엄마가 늘 바쁜 워킹맘인 것, 5년 동안 하루 열 시간씩 어린이집에 있어야 했던 것도… 다 내 멋대로 결정한 일인데, 나 편하자고 죠죠가 그렇게 좋아하고 신나 하는 등하원길까지 바꾸지 못하겠더라고.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죠죠 덕분이기도 하네. 대학도 4년제인데, 4년이나 걸었으면 수료증이라도 하나 줘야겠다."
"그러니까. 나중에 이력서에 적어줘야겠어. 어린이집 및 골목 유치원 출신이라고."
일본 드라마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각진 란도셀 가방, 1학년의 특권인 햇병아리색 모자.
아이가 드디어 '유아' 이름표를 떼고 '학생'이 되었다.
반년 전만 해도 아이의 학교를 결정하지 못해서 고민이었다. 혹여 외국인이라고 놀림이라도 받을까 미리 겁이 나서, 도쿄에 있는 국제학교와 한인학교를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 끄는 한 가지가 있었다. 결국 다른 곳이 대체할 수 없는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아이를 동네 구립초등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까우니까—
대외적인 명분은, '해외생활로 외로울 수 있는 아이에게 유년기 시절 동네 친구와 추억을 잔뜩 만들어 주고 싶어서'.
그리고, 나의 솔직한 마음은—아침저녁으로 한없이 걷는 생활을 이만 졸업하고 싶어서.
'10,200보, 9,998보, 10,897보…'
분명 아침 출근길부터 한 시간씩 걸을 일은 없어졌는데, 건강 어플이 알려주는 나의 주별, 월별 평균 걸음수는 여전히 만 보 언저리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고, 아이는 틈만 나면 걸을 핑계를 만들었다. 누가 목표치를 설정해 둔 것도 아닌데, 마치 평일에 채우지 못한 걸음수를 보충하듯 주말에 세 배 네 배 몰아서 걸었다.
"엄마, 오늘 영어학원은 마마차리 말고 걸어가자. 올 때 다가시야(駄菓子屋:저렴한 과자, 장난감 등을 파는 구멍가게)에도 가고, 백엔샵에도 들러야 해."
곧 졸업이라 생각했던 '걸어서 등하원'의 '원'은 유치원의 원(園)이 아니라 학원의 원(院)이었나 보다.
장차 외국인 손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 다녀야 한다던 영어학원. 제법 먼 거리임에도 아이는 불평불만 없이 잘도 다닌다. 그것이 영어가 재밌어서인지, 오가는 길에 들를 곳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걸으면 힘이라도 덜 들 텐데, 4년간의 습관 때문인지 우리는 빈틈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말로, 일본말로, 때로는 두 언어를 적절히 섞어가며.
"雨降ってる!(비 온다!) "
"本当だ。 ぱらぱら降ってるね。(진짜네. 빠라빠라 내리고 있었네)"
"엄마, 이렇게 아주 조금만 내리는 건 뽀츠뽀츠(ぽつぽつ:뚝뚝)라고 하는 거야."
"아, 그래? 정확한 차이도 모르고 그동안 대충 썼었네. 엄마가 미안."
"아니야, 괜찮아.
엄마는 이십오 살에 일본에 왔잖아. 어른이 되고 나서 일본어를 공부했으니까, 이런 거는 헷갈릴 수 있어. 나는 다 이해해. "
청산유수라고 해야 할까. 애어른 같달까.
구립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의 일본어 실력은 수직 상승했다. 타고난 오지랖에 유창함까지 더해져서, 이제는 엄마 아빠의 일본어를 지적하고 교정하는 것이 일상이다. 유독 일본어 발화가 늦어서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밤새 걱정했던 그 시절이 무색할 정도로.
"엄마, 일요일에 콤비 있는 데에 가자."
"또? "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우리는 종종 어린이집이 있던 동네로 향했다. 별다른 계획도 없이 가서는, 추억을 되짚듯 예전에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밟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할머니는 안 계세요?"
"네, 어머니가 허리를 삐끗하셔서 지난주부터 쉬고 계세요.
"엄마, 어떻게 해. 할머니랑 화과자 이름 맞추기 못 하잖아. "
"아쉽네. 할머니 나으실 즈음에 또 오자. 오늘은 뭐 사갈까?"
"나, 할머니를 못 봐서 기분이 안 좋아. 오늘은 많이 사 줘. 아지사이(紫陽花:수국) 죠나마가시랑 다이후쿠(大福:팥소를 넣은 찹쌀떡)랑 미타라시 당고(みたらし団子:간장소스를 발라서 구운 경단)랑..."
"어머, 이젠 말도 정말 잘하고, 화과자 이름도 다 아네요. 오늘 왔었다고 할머니한테 잘 전해둘게."
화과자점은 이사 온 집과 정반대 방향이라, 다시 되돌아오는 데에만 한참이 걸린다. 그래도 아이는 지치는 기색 하나 없이, 길가에 달라진 풍경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이야기하며 걸었다.
그런 아이와 함께 걷다 보면—
아이가 응, 아니라는 말조차 못 해서 나 혼자 목이 터져라 떠들며 걸었던 날들, 짤막한 단어 하나만 내뱉어도 그저 기뻐서 아무 전봇대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캔까지 찾아 묻고 답했던 날,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엉킨 문장에도 길 한복판에서 박수를 치며 칭찬하던 순간들… 그 모든 기억의 조각들이 필름처럼 펼쳐진다.
"죠죠야, 그렇게 걷는 게 좋아? 힘들지 않아? "
"응, 엄마랑 노니까 당연히 좋지! 그리고 다 다르잖아."
"달라? 뭐가 달라?"
"맨날맨날 그냥 다 달라. 재밌어. "
골목골목이 키운 아이.
코로나로 성장에도 발달에도 정지 버튼이 눌렸던 우리 아이를, 도쿄의 동네 골목에서 만난 꽃과 나무, 사물, 사람들… 그 모두가 함께 키웠다. 세상을 재밌어하는 아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