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 개 3년이면, 용기가 생긴다
"오늘은 좀 늦었으니까, 오랜만에 마마차리로 가자."
"안돼! 쬬끼쬬끼*를 못 보잖아. 오늘도 보자고 약속했는데! 엄청 슬퍼할 거야. 걸어가야 돼!"
*チョキチョキ:싹둑싹둑. 털이 삐죽한 길고양이에게 아이가 붙여 준 이름
휴, 말이나 못 하면.
아니다, 아무리 부산스럽고 시답잖아도 좋으니, 아이가 말할 수 있게만 해 달라고 빌었던 때를 잊어서는 안 되지.
그 간절한 바람과 함께 걸어서 등하원한 지 3년.
아이는 인생의 반 이상을 매일 걸으며, 별의별 루틴을 다 만들었다.
-남의 집 자전거가 잘 있나 확인하기
-자판기마다 달라진 점 찾아내기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의 오늘의 코디 체크하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나에게 쉴 새 없이 중계하기.
저걸 왜 하나…싶은 루틴을 이어 오는 동안, 아이는 제 생각을 말로 옮길 만큼은 유창해졌다. 또래에 비하면 여전히 틀린 표현이 섞이고, 말을 시작하기 전에 버퍼링이 걸릴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아이와 걸으면서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아이의 말이 나날이 더 다양해지고, 더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 언어는 정상 범위내예요. 엄마가 노력을 많이 하셨네요."
오랜만에 들른 소아과에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 매일 아침 신발 끈을 묶으며,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
같이 걷고 떠들기만 해서 모든 게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언어 퇴행에 이중언어까지 겹치면서,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도 많았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뒤엉켜 아이가 입을 다물어 버리는 시기도 있었고, 또 한동안은 한국어는 눈에 띄게 느는데 일본어만 몇 달째 제자리걸음이라,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놀림 아닌 놀림을 받기도 했다.
"죠죠야, 저기 한글도 있고 영어도 있지? 세상에는 다양한 말과 글자가 있어..."
나는 아이와 걸으며 발견한 간판, 국기, 광고지… 모든 것들을 활용해서, 나라와 언어의 의미에 대해 열심히 열심히 떠들었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를 붙잡고 뭐해요?'라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매일 아침 같은 주파수의 라디오 방송을 틀어 두듯 반복 또 반복한 덕분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그럼 이건 일본말로 뭔데?", "이건 왜 한국말이랑 다르게 말해?" 같은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 주었다.
아이가 나라와 언어의 개념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다섯 살 중반 무렵부터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수준도 나란히 걸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매일 들르는 화과자점 할머니와는 종종, 아침저녁으로 동네를 누비다 보면 아이가 차기 동네 반장쯤은 되지 않겠냐며 웃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은 현실로 이어질 수 없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이 동네를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이사는 수년 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일이었다.
전세 제도가 없는 일본, 특히 도쿄는 월세와 대출로 집을 구매했을 때의 상환액에 큰 차이가 없는 편이다. 어차피 같은 돈을 써야 한다면 30년 후에 집 한 채라도 남기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틈틈이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코로나와 아이의 언어 문제로 잠시 접어 두었던 답사를 다시 시작했고, 마침내 우리의 이상에 딱 맞는 집을 만났다.
일본 생활 15년 만에 이룬 내 집 마련! 무일푼 유학생으로 시작해서 직장을 얻고, 가정을 이루고, 드디어 찾아낸 세 식구의 새로운 보금자리…
기쁨도 잠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린이집이었다. 이사 갈 곳은 살던 곳과 같은 구 안에 있긴 하지만,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까지는 무려 3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열이면 열 마음에 드는 집에 홀려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사를 마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린이집 문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마음 한편에는 다섯, 여섯 살 반은 비교적 공석이 있으니까 이 기회에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옮기면 되겠다는 느슨한 계산이 있었을 뿐이다.
"죠죠야, 우리 이사 가면 1년 동안 다른 어린이집에 다녀야 해. 괜찮지?"
"안돼! 다른 곳 절대 싫어! 콤비(コンビ: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이름) 친구들이랑 같이 졸업해야 돼."
"새 집은 콤비까지 3킬로나 돼. 너무 멀어."
"3킬로가 뭔데? 지금은 뭔데?"
"여기 지도 봐봐. 지금까지는 1.3킬로미터였고, 3킬로미터는 이 거리를 거의 두 번씩 가게 되는 거야. 바로 가는 전철도 버스도 없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다리도 아프겠지."
"음... 두 번이면 갈 수 있어. 더 일찍 나가면 되겠다! "
"지금 진짜로 하는 얘기야? 더 일찍이면 하늘이 깜깜할 때 일어나서 나가야 해."
"응! 할 수 있어. 나 아침에 잘 일어날게! 약속!"
그때 잘 회유하고 설득시켰어야 했는데. 아이의 확신에 찬 눈빛에, 나는 결국 전원(転園) 신청서를 내지 않기로 했다.